(<행복의 형이상학>, 알랭 바디우, 민음사)

행복을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 단순한 기쁨이나 즐거움, 한순간의 행복한 경험이 아닌 지속적이며 꾸준한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만 하나. 행복하기 위해서 보다 복잡한 생각과 계산과 조건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 오히려 행복은 보잘것없었던 옛일을 추억하면서 떠오르기 쉽다. ‘그땐, 참 행복했는데...’ 하지만 우리는 지금 행복하고 싶다. 행복해야만 한다. 사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보시기에 좋았더라’에 입각한 피조물의 올바른 삶의 태도다. 우리는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산다.  
 
‘행복’이라는 단어의 가벼움은 ‘행복’의 무거움에 대한 반동이다. 우리는 ‘좋다’로 일관하는 저
층적 표현이나 불행을 간신히 소거하거나 압박(스트레스)을 해결해 줄 만한 행위로서의 행복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 책의 서론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체계와 민주주의에 입각한 우리 세계는 너무나 취약하다. 행복하기에, 행복을 존속시키기에 한없이 취약하다. ‘의사소통은 유통의 통제를 정립하는 방식’(23p)으로 이뤄져 기억 없는 풍경을 만들고 ‘자잘한 단편으로밖에 익힐 수 없는 지식들의 백과사전으로 조직(24p)’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도 자기 실존을 우연에 맡길 수단이 
없는 세계’, ‘안전을 계산할 필요성이 지배하는 세계’(23p)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철학이 가진 특수성, 혁명과 봉기하는 것, 그리고 정립시키는 것의 성질을 이 세계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행복에 다가서기를 권한다. 휘발하기 쉬운 행복의 감정을 충분히 사유하고 철학함으로서 추상일 따름인 행복의 형이상학으로 오래 씹고 향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행복은 진리들에 이르는 모든 통로를 가리키는 틀림없는 표지이며 따라서 그 이름에 걸맞은 삶의 실재적 목적이기에, 진리로 향하는 도정과 그 도정에 관한 완전한 성찰이 행복의 형이상
학을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0p) 세계는 이 죽어가는 자에게 말한다. “일어나 걸으라!” 참된 이념의 명령 아래 걸어갈 때 우리는 행복이라는 목적지로 향한다.(56p)

철학은 진리를 사유한다. 신앙도 진리를 사유한다. 진리를 전제로 한다. 우리의 영혼이 밝아지고 기뻐 뛰노는 것은 진리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도는, 크리스천은 행복해야 한다. 하지만 실재적으로 행복한 삶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세상,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시
련과 시험들은 매일 부딪히고 싸우는 현실에서 행복은, 한편으로 쟁취해야 하고 붙들어야 한다. 저자는 아무래도 지금 세계에서 철학도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킬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진실로 유쾌한 것이다. 행복해짐으로써.(94p)

이 책의 제3장 ’행복해지기 위해서 세계를 변화시켜야 하는가?“의 마지막 문단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대철학 서적을 읽으면서 벅찬 감정이 들었던 것은 이 책이 처음인 듯하다. 저자인 바디우는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이 세계의 취약점과 철학의 특징들을 말해준다. 이 두 가지의 사실은 세계를 바꾸려는 철학의 욕망이 지금의 세계에도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해석학, 분석학, 포스트근대의 세 가지의 관점에서 조밀하게 따져 묻는 1장을 인내심을 가지고 읽다 보면 2장과 3장을 넘어가며 분명 철학이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가 말하는 다층적인, 세세하고 꼼꼼한 세계를 변화시키는 행복에 대한 성찰은 존재를 실재하게 만드는 과정을 통해 주체성을 획득하고 창조적 주체화를 통해 참된 삶으로 나아가며 행복을 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견지하는 다양한 철학적 근거와 논증들은 읽는 과정도 행복하게 만들 만큼 단단하고 활기차며 적극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삶의 에피소드는 아무리 하찮거나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절대성을 경험할 계기가 될 수 있
고, 따라서 실재적 행복을 경험할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중략) 이를테면 평범한 실존, 곧 익
명의 개별자는 엄숙한 철학자보다 나은 방식으로 절대성의 기회를 도래시킨다는 것이다.(63p)
행복, 그것은 세계의 관점에서 불가능했던 무언가의 강력하고 창조적인 실존을 향유하는 것이
다.(94p)

‘참된 삶’의 행복. 참된 삶을 내재적으로 경험하는 방법으로 철학하기를 제시하며 행복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권유는 일면 성경을 읽는 것과 닮았다. 성경 속 인물들은 모두 행복, 은혜와 은총으로 나아가기 위한 각양각색의 경험을 남겨 놓고 있다. 그들이 추구하던 참된 삶은 그 때에도 취약한 세계 위에 흔들리는 노정을 겪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 속 인물들을 이야기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진리를 탐구하는 고전적인 목적에 따른)철학하고 내재적으로 경험하며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순간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보다 깊이 사유하는 방법과 행복의 형이상학 구조를 경험하고 그 경험이 우리의 내재성을 풍부하게 만들기를 바란다.

박창수 목사 (인천 성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