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저는 어느 해 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격주로 평창에서 초등학생 친구들과 함께 노래하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수능을 마치자마자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무작정 목포까지 간 이후로 기차를 탄다는 것은 제게 설렘과 일탈과 모험을 의미합니다. 그래서인지 청량리에서 평창까지 기차를 타는 것 만으로도 매번 새로운 여행을 떠나는 기분입니다. 그 시간은 저의 일상에 생기를 불어 넣어줌으로 어느새 월급쟁이 삯꾼 목사가 되어가던 저에게 사역 현장을 소중히 여기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라는 하나님의 선물이 되어 주었습니다. 초청해 주신 교회에도 감사하고 허락해 주신 우리 교회에도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지도하는 평창 아이 중에는 재솔이라는 3학년 친구가 있습니다. 재솔이는 이것저것 관심이 많습니다. 방과후에는 태권도와 피아노뿐만 아니라 클라리넷과 리코더도 배우고 있습니다.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재솔이는 노래를 시키거나 질문을 하면 언제나 가장 먼저 손을 듭니다. 재솔이 덕분에 매시간 활기가 넘칩니다.
다만 문제가 있는데, 재솔이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들고 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오답인 경우가 상당히 많지요. 또한 재솔이는 제가 요청할 때마다 제일 먼저 자원해서 노래를 부르는데 대부분의 음을 틀리게 부릅니다. 그럼에도 재솔이는 주눅들지 않고 또다시 도전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최대한 당황스러움과 웃음기를 숨기고 자연스럽게 반응했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음치’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평생 그 아이를 규정하고 괴롭힐 단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쉬울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재솔이가 몇 주 안에 음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음을 틀리게 부를 때마다 피아노 건반과 제 목소리로 올바른 음을 들려주었습니다. 변성기 전이기 때문에 일부러 옥타브를 올려서 음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조금 따라오는 것 같더니 이내 틀린 음을 냅니다.
음악 전문가로서, 그리고 치유 전문가가 되어야 할 목사로서 여전히 음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재솔이의 모습을 보면서 무력함을 느꼈습니다. 제 안에 조금씩 포기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재솔이가 무슨 시도를 할 때마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 화요일이었습니다. ‘He's Changing me/주님은 나를 변화시켜주세요’라는 노래를 배우는 날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늦고 재솔이 혼자 시간에 맞춰 노래하러 왔습니다. 너무 기특해서 피아노 옆으로 불러서 다시 노래를 시켰습니다.
He's Changing me 사랑의 주님
아니에요 옛날 알던 그 사람
때론 느리지만 난 알고 있죠
언젠가 완전해 져요
아쉽게도 노래 가사와 달리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전히 음이 맞지 않습니다. 아이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말았습니다. 그 한숨에 섞인 저의 마음을 읽힐까 심호흡을 한 후 갑자기 떠오른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결국 성공했습니다! 우리 재솔이가 드디어 몇 달 만에 갑자기 음을 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너무 놀랐고 감격했습니다. 재솔이에게는 그날(8월 27일)을 기념일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영적, 목회적, 교육학적 경험이었습니다. 그 비밀을 알고 싶으신가요?
그동안 저는 재솔이가 잘못된 음을 낼 때마다 계속해서 올바른 음을 들려주고 그 음을 따라 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재솔이도 나름 노력을 했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계이름으로 부르게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도 실패했었지요. 그런데 그날 저는 재솔이가 잘못 내어 부르는 그 음을 그대로 따라 불러 주었습니다. “네가 부르는 음이 바로 이 음이란다” 아이가 틀리게 내는 그 음에 제 목소리를 맞추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올바른 음을 불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재솔이가 드디어 올바른 음을 따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음감을 찾게 되자 늦게 온 친구들과 함께 우리 모두는 그날 마음껏 노래를 불렀습니다. 재솔이도 저도 트위스트 춤을 춰 가며 그날 만큼은 신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매일 매일 조금씩
매일 매일 변하지요
Jesus is Changing me
주님께로 돌아선 후
걷고 있죠 은혜 속에
Jesus is Changing me!
우리는 무언가를 가르칠 때 정답만을 따르도록 가르칩니다. 물론 따라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따라오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는 평생 오답의 꼬리표가 따라다니지요. 반면 예수님은 우리들의 수준으로 먼저 낮아지셨습니다. 우리의 수준에 자신을 맞춰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매일 매일 조금씩, 주님과 함께하면 우리는 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