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 자비의 힘>, 메튜 폭스, 다산글방, 2002)

  야곱의 사다리와 사라의 원무(圓舞)에 마음이 사로잡힌다. 야곱의 사다리는 위계질서인 것에 반하여, 사라의 원무는 원(圓) 페라다임이다. 자비의 힘은 존재의 사슬(the chain of being)정신을 ‘존재의 원’(the circle of being)의식으로 대처한다. 자비는 연민이 아니라 축제다. 자비는 감상이 아니라 정의를 구현하고 긍휼을 실천하는 것이다. 자비는 이기적이지 않고 공적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자비라고도 한다. 자비는 곧 우주적이고 신적이다. 자비는 기도를 능가하는 영성이다. 영적인 완전은 자비를 의미할 뿐이다.(90) 자비의 영성은 사라의 원무다. 자비는 사라의 원을 돌며 춤춘다. 

  자비가 예수의 영성에서 큰 역할을 했음에도, 정작 기독교 영성에서는 별다른 역할을 못한다. 그 이유는 야곱의 사다리가 너무 강력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94) 이것이 영성의 역사에서 “영적 사다리”를 강조한 배경이다. 기독교 신비가들의 영적 여정은 다분히 시각적이다. 그런데 사다리와 같은 ‘상승’의 동기는 성서에게서 아니라 헬레니즘에서 유래한다.(100) 반면에 사라의 원무는 성서적이다. 사라가 낳은 경이로운 아들에게 붙여진 이름 이삭은 “하나님이 웃었다. 하나님이 친절을 베푸셨다”는 의미다. 곧 사라의 원무로 대표되는 영성은 사다리 영성과 대조되는 웃음과 기쁨이다.(106) 사다리 오르기는 언제나 힘겨운 일이나, 사라의 원무는 웃음과 창조성을 상징한다.(107) 마치 이 둘은 오르기 대 춤추기, 경쟁 대 환희, 소수 대 다수, 하이라키(위계적) 대 홀라키(통전적)의 형태를 갖춘다.(112) 크게는 직선 대 곡선, 사다리꼴 대 동그라미꼴이다.(116) 예수는 사라의 원 관점에서 활동하신다. 이것이 자비(compassion)다.

  자비의 영성은 그대로 두고, 버리고, 변증법이 일어나게 하여 축제로 나아간다. 이것은 경쟁과 강박증과 이원론이 부추기는 통제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여기서 새로운 질서, 정의 형식과 사랑의 새 질서가 나타날 것이다.(201) 새로운 질서는 곧 창조성이다. 창조성이 없으면 자비도 없다.(202) 창조성은 낳음을 거룩하게 여기며, 통제보다는 자유를, 객관화보다는 환희를, 신봉보다는 함께 벌이는 축제를 높이 평가하는 생활방식이다.(213) 히브리어에 ‘자비’와 ‘자궁’은 어원이 같다. 이것은 예수님의 빈 무덤이 마치 자궁 같아서 텅 빈 충만을 시사한다. 자궁-무덤 이미지의 상징은 나선형이다. 나선은 부활의 오랜 상징이었다.(220) 달걀동자를 소환한다. 

  우주 알, 지구촌은 달걀동자의 이야기다. 벽에서 떨어질 때 달걀동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벽 위에 있음은 ‘사다리 꼭대기’에 있다는 의미다. 영성은 애당초 벽의 꼭대기에 있지도 않았다. 자비 역시 벽과 사다리를 올라가라고 시키지 않을 것이다. 땅에 가까울수록 알맞은 안식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432) 

  달걀동자는 벽의 높은 곳에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예수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달걀동자는 땅에 있지 않았다. 그는 추락해서 깨어졌다. 본래 달걀동자는 알-사람(卵人)이다. 이것은 세계의 통일성, 상호의존성을 상징한다. 그는 이 세계를 하나의 알, 하나의 전체로 여기라고 요청한다.(438) 즉 대우주(the Egg)에 속한 소우주이고, 큰 알에 속한 작을 알(the egg)이다. egg(to egg on, 꼬드김)는 고대영어 edge(to edge on, 부추김)에서 유래한다. 

  알의 고유특성은 가장자리가 없다는 것이다.(447) 영성은 가장자리에서 사는 것이다. 깨어있는 상태를 요구한다. 가장자리로서의 달걀동자는 가장자리 삶을 살라고 꼬드긴다.(449) 야곱의 사다리가 아닌, 사라의 원무(圓舞)로 하늘의 충만함과 신성(神性)으로 춤추게 한다.  

한천교회 전승영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