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품 이야기>, 로버트 젠슨, 김성훈, 한빛비즈, 2022)

“내 진짜 목표는 산 사람을 돕는 것이다. 내가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끝내줄 수는 없지만, 나는 그들이 회복 과정을 감당할 수 있게 돕고, 그들이 과거의 일상을 내려놓고 새롭게 찾아온 일상으로 전환하는 최고의 기회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 기자가 역사의 초고를 쓰는 사람이라면, 나는 역사의 페이지 바닥에 묻혀 있는 죽은 자를 찾아내고 예우를 갖추어 각주를 더하는 사람이다.”(8)

  언젠가 ‘모호한 상실’이라는 말을 만난 적이 있다. 납치나 전쟁, 자연재해 등으로 실종되어 생사를 확인할 수 없거나, 치매나 정신질환 같은 것으로 이전처럼 정서적 교류를 제대로 할 수 없을 때, 이 ‘모호한 상실’로 인해 주변인들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게 된다. 시신을 정성껏 염습하여 장례를 치르며 애도와 비탄을 시간을 보내며 인간은 마음을 정돈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절차가 누락된다면, 남겨진 이들은 정서적인 혼돈을 겪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이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감당해야 하는 가족을 보면,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관해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는 가족과는 확연히 다른 경로를 걷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누군가가 그냥 사라져버렸거나, 아무런 관련 정보를 얻지 못했을 때 가족들은 훨씬 힘든 과정을 겪는다. … 사랑하는 이의 행방을 알지 못하는 것만큼 큰 고통과 슬픔은 없다. 정말 악랄한 아픔이다.”(214-257)

  최근 로버트 젠슨의 <유류품 이야기>을 통해 ‘모호한 상실’이란 추상적인 표현을 구체적으로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재난관리회사 ‘케니언’의 대표다. 아이티 대지진, 911테러,  또 자살폭탄테러 같은 대규모 참사들 때마다 그 현장에 투입되어 사고를 수습하는 전문가다. 피상적으로만 들었던 이야기를 이토록 세밀하게 들여다보게 되니, 정신이 아찔해지곤 했다. 이런 독서 경험은 처음이었다. 워낙 극단적인 상황들이었고, 그 뒷수습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무지했던 터라 더욱 아득해졌던 것 같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의 80%가 침수되고, 1800여명이 사망했을 때, 저자는 온갖 곳에서 시신과 마주했다고 술회한다. 폐허더미들 사이 즐비한 시신들을 수습하는 일은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을까. 비행기 추락사고 같은 대참사, 자살폭탄테러 현장은 평범한 사람들이 방문하면 졸도할 것이다. 시신형체를 알아볼 없는, 온전한 시신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저자에게는 그리 낯선 것이 아니었다. 뚝뚝 떨어져 나간 살점들이나 뼈나 치아 등등 유해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더욱이, 오늘날처럼 외국인거주자 및 여행자 등 전세계적으로 유동인구가 많은 관광지나 대도시에서는 그 사태가 한층 더 버거워진다. 911테러 직후, 알카에다는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 런던이나 파리 같은 곳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를 이뤘다고 자부하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폭탄테러를 일으킨 바 있다. 각각의 유해조각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 자체가 난항이다. 작은 시신조각으로는 신상정보를 알아낼 수 없기에, DNA로 가족대조를 해야 하고, 전세계의 실종 유가족들로부터 대조할 DNA표본이나 치과기록, 지문기록 등을 제공받아야 하는 까닭이다.
  시신을 극진히 수습하는 것은 죽은 자의 품위와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이들에게 이름을 되돌려주는 일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유해를 수령한 유가족들도 괴롭겠지만, 시신을 한 조각도 찾지 못해 ‘빈 무덤’을 만든 이들은 얼마나 막막할까. 이 지점에서도 ‘케니언’의 역할이 주요하다. ‘케니언’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유해들과 기록들을 잘 보존해두고 있다. 타이타닉호의 두 살배기 아이 시드니 레슬리 굿윈처럼, 훗날 더 발전된 DNA 검사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위안의 날이 올 것이다.

“내 딸은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고, 내 딸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또 다른 아이가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죽음에 내몰려야 할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그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바로 재난의 변덕스러움이라 생각한다.”(38)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여기에 탄식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지금도 인간으로서의 위엄과 존엄성이 훼손되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죽은 이들의 이름을 되찾아주는 것도 소중하지만, 허망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애를 쓰는 것도 시급한 일이다. 자연재해나 폭탄테러를 어떻게 막겠느냐마는,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적극적으로 평화의 길을 걷고, 지속가능한 지구별이 되도록 삶의 양태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