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서>, 리처드 보컴, 트레버 하트, 터치북스, 2021)

며칠 전 일이다. 고속도로에서 차가 고장 나 멈춰버렸다.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학생 땐 무서운 선생님을 무서워했다. 요즘은 별반 무서울 게 없다. 무섭다는 공포영화도 안 보면 그만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무서웠다. 고속도로에서 멈춘 차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상황에 대처하기까지 몇 초의 짧은 시간이지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집에 와서도 생각나는 건 사건이 아니라 순식간에 덮쳐온 공포라는 감정의 압도적인 크기와 사나움이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베드로가 예수님을 죽기까지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하는 부분을 만났다. 성경은 변하는 법이 없어 그는 늘 예수님을 부인한다. 제자들은 늘 도망간다. 그럴법하다.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다. 그들이 느꼈던 공포가 필자가 고속도로에서 느꼈던 공포와 비슷하기라도 했다면 그것은 사람이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먼발치에서 십자가를 진 예수님을 따라갔던 제자들의 공포와 십자가까지의 거리는 정확하게 비례했을 것 같다. 예전에는 그 거리가 궁금했다. 요즘은 그 거리만큼 사나웠을 제자들의 감정을 생각한다. 그러나 지리멸렬한 상상력이 막연함을 넘어서지 못하던 차에 도움을 주는 책을 만났다. 

<십자가에서>의 저자 리처드 보컴과 트레버 하트는 신약학자다. 그들은 성서연구에 문학적인 구성을 더해 십자가 사건과 관련된 열한 명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열한 명의 시선이 되어 십자가를 바라보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새롭고 깊게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다니 마리아, 가룟 유다, 가야바, 본디오 빌라도, 구레네 시몬 등 깊이 알지 못했던 인물들의 마음을 성서와 관련 지식을 기반으로 구성하고 들여다보는 일은 신앙생활에 활력을 주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각 장의 말미에 제공되는 기도와 묵상을 위한 글은 깨달음을 배가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끔찍한 일일수록 과정을 떠올리기가 고약하다. 그래서 결론만 말할 때가 있다. 그래서 십자가는 보통 죽음이다. 그러나 정녕 예수님의 십자가는 처절한 ‘과정’이었음을 책을 읽으며 새삼 느낀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곰곰이 오늘을 곱씹어볼 일이다. 십자가를 어디다 두었는지, 날이 더워서 시원해지라고 냉동실에 넣어두지는 않았는지. 

김국진 목사(산돌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