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홍한별 옮김, 다산책방, 2023) 

 “텍스트(내용)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컨텍스트(배경)를 먼저 살펴야 한다.” 

 클레어 키건의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으며 대학 시절 성서학 개론 시간에 들었던 교수님의 말이 생각났다. 어두컴컴한 땅을 조심스레 걷다가 마침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마무리되는 것 같은 느낌의 이 짧은 소설은 독자에게 보여주는 부분보다 보여주지 않는 부분이 훨씬 더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디테일한 묘사와 자세한 배경설명으로 책의 분량을 두껍게 만드는 여타의 소설과 다르게 이 책은 간결하고 시적인 묘사로 주인공인 펄롱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1인극을 보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물론 적절한 정보를 통하여 우리는 펄롱이 아일랜드의 평범한 노동자라는 것과 그가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이겨내고, 지금의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성탄절을 앞두고 마주한 기막힌 현실 앞에서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숨죽이며 지켜봐야 하는 것이 소설의 주요 흐름이다. 
 
 하지만 상당한 묘사가 있음에도 소설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펄롱이 마주한 기막힌 사건의 전모를 알 수 없다. 아마도 주인공인 펄롱 역시 자신이 마주한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 끝내 알 수 없었을 것이며, 이는 소설의 실제 배경이 되는 대다수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소설이 끝나고 다음 장에 등장하는 ‘덧붙이는 말’은 “1996년에야 아일랜드의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았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소설 속에서 설명하지 않은 기막힌 사건의 실체가 짧게 소개된다. 

 수십 년간 아일랜드 정부와 가톨릭교회가 공동으로 운영하던 시설에서 3만 명 가까운 여성과 아이들이 감금당한 채 학대를 당했고, 1만여 명 넘는 아이들이 살해당했던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이 이 소설의 주요 배경이었던 것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비교적 최근인 2013년이 되어서야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고 하니, 세탁소에 갇힌 채 비참한 학대를 당했던 이들은 공식적인 역사 속에서도 오랫동안 참혹하게 갇혀있었던 셈이다. 

 이 책의 제목에서 언급되는 ‘사소하다’는 표현을 보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감정과 오브제를 하나씩 살펴보며 도대체 작가는 무엇을 이리도 사소하다고 여겼던 것일까 내내 궁금했다. 결국 소설의 컨텍스트에 해당하는 ‘막달레나 세탁소 학대’에 비하여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 고난과 절실함, 행복, 그리고 고민들까지. 그 모든 것이 얼마나 사소한지를 대비시키는 표현이 아니었을까. 

 소설이야 특성상 컨텍스트(배경)를 정확히 모를 때 느껴지는 모호함과 불안함을 동력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지만 현실(텍스트)을 조금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학시절 교수님의 말처럼 결국 컨텍스트가 중요하다. 이집트와 파라오의 군대라는 컨텍스트를 알지 못하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출애굽과 이스라엘 민족을 다룬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로마제국과 유대 식민지배의 상황을 알지 못하면 신약 성서에 나오는 예수 운동과 그리스도교의 탄생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듯이, 라오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텍스트만큼 컨텍스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볼 때, 동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아도, 컨텍스트에 따라 각각의 문화권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각기 다른 내면이 형성되어 있기 마련이다. 라오스는 지난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러 나라로부터 식민지배를 당했을 뿐 아니라, 오랜 전쟁과 공산혁명을 겪은 나라이다. 그 결과,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불발탄(8100만발)이 남겨지게 되었고, 현재에도 불발탄으로 인한 폭발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2024년 전반기에만 44건의 폭발사고가 일어났으니, “라오스의 전쟁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는 목소리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이처럼 불발탄 문제는 라오스에서 간과할 수 없는 컨텍스트이다. 라오스 땅 전역에 감추어진 이 잔인한 컨텍스트를 알지 못하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만을 떠올리고, 여행하기 좋은 나라라는 찬사를 쏟아놓는 이들을 만나며 라오스 사람들은 어떠한 느낌을 받게 될까. 모두가 같은 감정은 아닐지라도, 4년째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내게는 그러한 찬사들이 ‘참 사소하게’ 느껴진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펄롱은 위험을 무릅쓴 채,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119p)”

 사소함으로 점철된 우리의 삶이 사소하지 않게 되는 순간은 바로 이러한 질문과 결단이 있을 때이다.  

라오스에서 평화를 고민하는 이관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