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부족한 면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성숙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감과 자기 확신과 기쁨으로 충만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가끔 우울감과 절망감, 회의감과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내 삶이 왜 이렇게 되었나?” “나는 왜 이럴까?” “나의 문제는 과연 무엇일까?” “지금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인가?” 등등의 생각으로 고민에 빠지고 이런 마음을 가까운 누군가에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사람이 정서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느끼는 사람은 현재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더 성장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으로 더욱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는 이런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아주 나약하다고 생각하고 회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불안하거나 상처받은 감정을 느껴서도 안 되고 표현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하고 또 상대방이 표현하는 것에 적절한 반응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들은 ‘내가 불안하다’ 혹은 ‘상처받았다’, ‘내가 너무 못났다’, ‘나는 실패자라는 생각이 든다.’ 등 이런 아주 간단한 말 몇 마디를 솔직하게 할 줄 모른다. 만일 나르시시스트가 누군가에게 불안하다, 상처받았다 등의 말을 했다면 상대방을 비난하고 공격하기 위한 말로 쓰일 때 이거나 대외적으로 가면을 쓰기 위한 것뿐이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몹시 불편해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기에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늘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몸만 큰 어린아이, 성인아이(adult child)이다. 그래서 이들이 좋은 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직장에서 아무리 유능한 경력을 쌓는다고 할지라도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은 가장 가까이서 함께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며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감정을 회피하는 나르시시스트의 모습 때문에 이들이 아예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르시시스트가 감정을 아예 못 느끼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자만심이나, 두려움, 외로움, 열등감, 분노, 질투심 등의 감정은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나르시시스트들이 평소에 쉬지 않고 끊임없이 느끼는 한 가지 감정이 있다. 어떤 감정일까? 그것은 바로 ‘공포’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왜 공포의 감정을 끊임없이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선하고 완벽한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고 살아가는 자신들의 실체가 드러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절대 선하지 않는 나르시시스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자신의 선한 이미지이다. 선하지 않은 이가 선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실체를 끊임없이 위장하고 완벽한 모습으로 포장하면서 살아가는 나르시시스트는 행여 자신들이 쓰고 있는 그 가면이 깨져서 자신의 참모습이 세상에 드러나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를 늘 느끼고 있다. 세상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그런 자신의 악한 모습을 자신이 직접 마주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도 역시 느끼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악한 모습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자신은 선하고 도덕적이며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데, 그런 자신의 추악한 모습과 직접 마주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심에 끊임없이 휩싸여있다. 이 공포심 때문에 더더욱 진실을 숨기고 불안도 상처도 없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만을 연기하며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뛰어난 연기로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에 겉으로 볼 때 평온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공포는 이들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다. 그 공포는 너무도 만성적이고 존재 깊숙한 곳에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나르시시스트에게는 이것이 공포나 고통으로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이다. 늘 공포에 떠는 것이 너무 익숙해서 자신이 느끼는 것이 공포인지도 모른 채, 남들도 이렇게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나름 적응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완전한 공포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이 얼마나 지옥 같겠는가? 이미 그들은 지옥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외견상으로 볼 때 나르시시스트가 공포 같은 것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늘 자신의 약점과 불완전함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누군가에게서 비난과 지적을 받아도 놀라울 정도로 태연하게 받아치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다. 누구나 당연히 불안해할 상황에서조차도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 평온함의 가면은 그저 위장일 뿐이다. 그들 안에 내재된 나르시시즘은 끊임없이 건강하고 완벽한 이미지를 요구하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들은 그 이미지를 가지고 위장하며 살아가도록 스스로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언제나 최고의 위치, 명령자의 위치에 있는 완벽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내보여야만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들이 현실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게 아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이 굉장히 유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더 무능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람들이 있는 어느 곳에서든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이면서 자신이 완벽한 줄로 착각하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만든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은 모든 것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 때문에 주변이 병들어가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의 흠을 잡아내고 비난하고, 죄 없는 사람을 악인으로 몰아가서 공격하고, 모든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정작 자신은 피해자 행세를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가면을 쓰고 위장하면서 살아가는 데는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렇지 않겠는가?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합리화시키는 작업에만도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한다. 건강하지 못한 생각을 가지고 가장 건강한 사람 노릇을 하느라 친절한 연기를 하는 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런 에너지 소비를 통해 매일 매 순간 쌓이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평안한 상황에도 이들은 늘 힘들고 괴롭고 화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 식으로 쌓인 스트레스를 어디다 푸는 것일까? 만만한 사람한테 푼다. 이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자신의 나르시시즘의 희생 제물이 될 피해자들을 필요로 한다. 나르시시스트 상사중에는 자기 부하직원 중에 만만한 사람이 약간의 잘못을 했을지라도 그 사람을 세워놓고 폭언과 욕설로 자신의 분노를 발산하는 경우도 있다. 

겉으로 볼 때 늘 자신감이 넘치고 안정적이며 평안해 보이는 나르시시스트들에게 피해를 당한 희생자들의 눈으로 볼 때, 이들은 정말 감정도 없고 양심도 없고 악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없게도 정작 피해당한 당사자가 아닌 남들 눈에 비치는 그들의 모습은 마냥 선하고 완벽하기만 하다. 게다가 감정표현을 못하는 나르시시스트들일지라도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보다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 앞에서 감동하고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하고 감사해하고 이런 감정표현들을 정말 비굴할 정도로 잘 해 낸다. 그래서 겉에서 봤을 때는 이들의 실체를 눈치채기가 힘들다는게 참 답답한 일이다. 하지만 이들은 늘 공포심이라는 지옥에 갇혀 있는 불쌍한 이들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할 수 있으면 이들에게서 떠나는 것이 최선이다. 가족이라서 그럴 수 없다면 최대한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대처법은 그레이락(회색돌)기법이다. 얼마전 소개했던 회색돌 기법을 읽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