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래> 유현준 저, 을유문화사, 2021)

우리는 흔히, ‘사람에 의해 공간이 창조된다’고 생각한다. 텅 빈 순수한 공간에 인간의 필요와 쓰임에 맞게 건물을 설계, 건축하고 시설물을 쌓아간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교보문고의 유명한 슬로건처럼, 사람은 공간을 구성하면서 공간에 의해서 재규정된다. 모든 인간은 공간 속에 존재하며, 다시 여기에 귀속된다. 어쩌면, ‘공간에 의해 사람이 창조된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유현준 교수는 그의 전문 분야인 건물 건축(아파트)에서부터 교육, 종교, 회사 등 사회집단에 이르기까지 공간이 주는 통찰을 담아 『공간의 미래』라는 책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어떻게 공간이 삶의 양식과 인간의 사고체계를 규정하며, 사람 사이의 관계를 형성해나가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해 간다. 그는 공간을 지배하는 자는 현실을 다스릴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이 책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인간의 사고와 사람 관계가 어떻게 급격히 바뀌게 되었는지, 또 그 변화는 미래를 어떻게 새롭게 만들어가는지도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책의 첫 시작의 제목을 <거짓 선지자들의 시대>로 정한 것도, 유교수의 의도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인류는 언제나 미래를 예측하고, 거기에 응전해왔다. 미래에 대해 말하는 모든 사람은 거짓 선지자가 될 수밖에 없지만, 이 작업은 피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유교수도 감히 예언자적 전망을 시도하고 있다.

유교수는 현대인이 가장 많이-오래 머무르는 거주 공간인 아파트로부터 이야기를 꺼낸다. 아파트는 인류를 수직적으로, 집약적으로 쌓아 올려 도시를 형성하게 만드는 놀라운 발명품이다. 아파트를 시작으로 종교시설, 학교와 직장, 공공시설과 사회적 통념과 사고의 흐름에 대한이야기까지 그의 탁월한 시선이 흥미롭게 이어진다. 

인상적이었던 한 꼭지를 소개한다(p89). 교실은 선생님에게 권력을 주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 권력은 시선이 모이는 곳에 존재한다. 교실의 책상은 모두 교탁을 향해있고, 교탁은 학생들의 책상보다 높은 단상 위에 올라가 있다. 이것 자체로 권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운동장 조회시간에 극에 달한다.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보다 한참 높은 구령대 위에 최소 몇백 명 단위의 시선을 모으는 학교 최고의 권력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교권에 집중되는 시선의 수가 줄어들었고, 자연스럽게 교사의 권위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수업방식도 교사만을 바라보는 주입식에서 조를 나누어 서로를 바라보며 토의하는 수업이 많아지며, 더 이상 교탁의 권력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이 경향은 코로나-19를 만나며 가속화되는데, 원격수업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선생님과 화면으로 1대 1로 만나게 되었고, 집단효과도 사라져 버렸다. 유교수는 앞으로 학교는 통일화된 커리큘럼이 사라지고, 개개인의 특성과 관심에 맞는 설계형 커리큘럼으로 변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공간의 분배가 권력의 약화로, 이것이 다시 교육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 들어서서는 좀 더 거시적으로 도시, 공원, 주거문제, 국토개발, 기후변화에 이르는 사회 전반의 흐름을 ‘공간’을 통해 읽어내고 있다. 특히, 저자는 건축에서 1층의 역할을 매우 강조한다. 1층을 통해서 사람과 건물, 집단과의 친밀감이 형성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말미에는 저자가 설계한 교회가 나오는데, 이곳은 십자가가 겉으로 나와 있기보다는 은은하게 드러나서 오히려 시선이 머물게 만든다. 1층은 건물로 들어오는 사람을 포용하고 안아주는 듯한 오목 구조로 만들어 교회로 향하는 마음을 포근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심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철학에 맞는 건축이 중요한 이유는 그저 보기에 멋진 심미적 요소뿐 아니라, 건물 자체가 하나의 텍스트로 메시지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교회에 머무는 이는 공간을 통해 예수님의 품을 누리고, 사람들 사이에 예수님의 사랑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게 된다. 이것이 공간이 내포한 힘이다. 

공간은 어떻게 변해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해 갈까? 이것을 들춰보는 일은 우리 삶이 어떻게 변해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모해 갈지를 전망하는 일 그 자체다. 유교수는 오히려 자신의 예측이 모두 맞지 않을 것임을 단언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돌아보고 들춰보고 전망해야 한다. 서두에 밝힌 것처럼, 공간은 사람의 살아가는 방식뿐만 아니라, 존재를 규정짓는다. 도시는 인간의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내가 머무는 삶의 자리는 내 존재를 어떻게 빚어가게 될까? 이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것은 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기획하는 일이될 것이다. 나는 내 공간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신동훈 목사(마포 꿈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