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의 공모>, 로버트 에릭슨, 김준우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24)

어린 시절 독일 하면 나쁜 나라라는 인상이 강했다. 당시 텔레비전이나 영화 속 독일군은 늘 악당처럼 등장한 까닭이다. 조금씩 철이 들면서는 생각이 변했다. 그래도 독일 사람들은 자신들의 예전 과오를 잊지 않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데 반해 일본은 진실한 사과와 반성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신학교 입학해서는 ‘신학 하려면 독일로 가야 한다’는 충고를 귀 아프게 들었고, 특별히 독일에서 목회하던 친구의 초대로 직접 독일을 방문한 다음부터는 합리적이고 사색적인 독일에 대해 부쩍 호감이 생겼다. 덕분에 독일 유학을 꿈꾸며 남산 독일문화원에서 독일어에 매달린 적도 있었다. <홀로코스트의 공모>는 이런 독일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저자 로버트 에릭슨은 퍼시픽 루터란 대학교의 홀로코스트 연구 책임자이며 역사학 교수로 이미 <히틀러 치하의 신학자들: 게르하르트 키텔, 파울 알트하우스와 에마누엘 허쉬 Theologians Under Hitler: Gerhard Kittel, Paul Althaus and Emanuel Hirsch>(1985)를 저술한 바 있다. 또한 <배반: 독일 교회와 홀로코스트 Betrayal: German Churches and the Holocaust>(1999)의 공동편집자이기도 하다.

본서의 주제는 ‘나치 독일의 교회들과 대학들’이라는 부제에 잘 요약되어 있다. <홀로코스트의 공모>는 교육 수준이 매우 높았던 기독교 국가 독일에서 도대체 왜 교회들과 대학들이 히틀러 체제의 파트너가 되어 홀로코스트에 공모했는지, 그 배경과 과정을 역사적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저자는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이 유대인 혐오와 영토 확장에 대한 나치 이데올로기를 열광적으로 찬양함으로써 평범한 사람들과 신자들에게 ‘학살 면허증’을 주었다는 점에서 홀로코스트의 공범이라고 주장한다.

“경쟁적이며 개인적으로 괜찮은 대학 졸업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집단적으로 오스트리아 상병(히틀러의 별명-옮긴이)에게 홀딱 반할 수 있었는가? … 그뿐 아니라 이런 열광적 찬양은 단지 몇몇 목사들과 교수들의 메시지였던 것이 아니라, 교회와 대학 전체의 지배적 메시지였다. …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내가 교회와 대학의 공모(complicity)라고 부르는 것이다. … 교회 신자들과 대학 졸업자들을 포함해서 평범한 독일인들에게 나치 국가가 끔찍한 짓을 하도록 요구했을 때, 그들은 자신의 목사들과 교수들에 의해 그런 짓을 하도록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히틀러를 독일에 대한 하느님의 선물로 찬양했다." (‘서문’ 중에서)

히틀러의 나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독일 교회와 대학의 경쟁적 추종은 일부에 그친 것이 아니라 압도적 다수였으며 그것은 대중들에게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히틀러의 제3제국과 당시 독일(인)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하나였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문제는 ‘광기’에 굴복했던 독일 교회와 대학의 모습이 결코 과거형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당장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땅에서도 맘몬의 광기에 사로잡힌 교회와 대학의 타락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이야말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마 10:16)는 성서의 교훈을 되새길 때이다. (참고로 앞서 소개한 벤자민 카터 헷의 <히틀러를 선택한 나라>도 함께 읽으면 당시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전제하는 것은 홀로코스트가 현대 역사에서 단지 유대인들과 독일인들에게만 중차대한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본성, 그리고 인류 사회의 미래를 염려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중요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19쪽)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