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꽃, 예수기도』 - 이민재 지음/ 신앙과지성사

박경조 주교 (대한성공회)

오랜 세월 성공회 성직자로 살아오면서 전례를 중시하는 교회의 위험이라고 할 수 있는 형식적인 기도에 염증을 느끼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평생 걸어온 내 신앙 여정에서 뭔가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았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갈망이 내면 깊은 곳에 잠재해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 갈망이 통했는지 그 무렵 나는 한국을 방문한 토마스 키팅 신부를 만났고, 그분을 통해 나는 향심기도(Centering Prayer)를 배웠다. 나는 새로운 기도에 매혹됐다. 아니 새로웠지만 오래된 기도였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에 두 번씩 아침저녁으로 이 기도를 해오고 있다. 기도수행이 계속됨에 따라 내면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던 생각과 감정은 차츰 진정되었고, 고요한 평화에 잠기는 경험과 함께 나 자신이 변하는 것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도를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이민재 목사님이 쓴 『기도의 꽃, 예수기도』를 읽었다. 이 책은 달콤한 꽃향기처럼 나를 매혹했다. 책이 말하는 것과 내 오랜 기도 경험이 중첩되는 것을 느낄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신학교 다닐 때 『순례자의 길』이라는 책을 읽다 그만둔 적이 있다. 『기도의 꽃 예수기도』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러시아의 한 젊은 순례자의 ‘예수기도 수행기’다. 이 젊은이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카 교우들에게 한 “쉬지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권고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젊은이는 여러 곳을 찾아다니다가 큰 스승을 만나 ‘예수기도’를 배운다. 젊은이는 스승이 하라는 대로 열심히 기도를 바쳤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싫증을 느꼈다. 수많은 분심 때문에 기도의 위기를 경험했을 때 스승을 찾아가자 스승은 젊은이에게 ‘예수기도’를 하루에 3천 번, 6천 번, 1만 2천 번으로 차츰 늘려가라고 한다. 바로 이 대목이었다. 신학교 시절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책을 덮어버린 것이…. 횟수를 따져가면 기도한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그 뒤로 예수기도를 나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 목사님이 맛깔스러운 글솜씨로 펴낸 친절한 기도 안내서 『기도의 꽃, 예수기도』를 접한 것이다.

오랜 세월 관상기도를 수행해 온 저자는 ‘예수기도’를 주저하지 않고 ‘기도의 꽃’이라고 부른다. 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예수기도는 그리스도교 영성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초대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성서적인 근거와 그리스도교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을 토대로 예수기도를 소개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공부와 기도수행을 통해 깨달은 살아있는 지혜를 심오하게 펼쳐 보인다.

  관상기도를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이라면 ‘예수기도’를 기도의 꽃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주장에 주저 없이 동의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기도의 향기로 나를 유혹하여 ‘샤론의 꽃 예수’에게로 이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당장 ‘예수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다. 예수기도는 그동안 수행해온 향심기도와 깊은 곳에서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은 매우 위험한(?) 책이기도 하다.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신을 비우라고 하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깊은 자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기중심적인 에고(ego)를 죽이라고, 죽기 전에 죽으라고 하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자신을 보호하던 온갖 방어기제를 무너뜨리는 일, 얼마나 두렵고 어려운 일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1:1)은 로마 황제의 복음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누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누가 우리의 주님인가? 로마 황제인가. 예수인가? 누가, 무엇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인가? 돈과 권력인가, 그리스도인가?

혼돈과 공허와 흑암(창 1:2)이 뒤범벅인 현실에서 참 신앙의 길을 분별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다. 분별하더라도 그 길을 걷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참된 기도, 즉 복음적이며 성서적인 기도다. 이러한 기도 수행이 뒷받침될 때 우리는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예수기도”가 그런 기도다. 그렇기에 예수기도 수행을 꾸준히 한다면 참 신앙의 길을 분별하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예수기도’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기도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기도다. 무엇보다 이 기도는 ‘노동자의 기도’다. 일하면서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기도와 함께 하는 일터는 어디나 성소가 되고 예배의 자리가 된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오류는 기도를 교회에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에서 경건한 사람이 일상생활에서는 위선자의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이 권하는 대로 기도한다면-이 책은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예수기도 수련방법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는 신앙의 위선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의 삶의 자리가 기도처가 되고 예배의 자리가 된다면 시나이의 성 그레고리우스가 말한대로 우리의 일상이 “세례의 실현”이 현실화하는 장소가 될 것이며,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형되는 장소가 될 것이다. 그러한 우리를 통해 마침내 교회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좋은 책을 우리에게 선물해준 저자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도의 여정을 새롭게 시작하면 좋겠다. 예수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큰 기쁨을 누리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