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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조선 부국강병을 위한 프로젝트와 대한민국
유은식  |  kmch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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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7월 03일 (수) 07:26:08
최종편집 : 2024년 07월 03일 (수) 07:29:13 [조회수 :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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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조선 부국강병을 위한 프로젝트와 대한민국(한국감리교회)

고종 선교 윤허 140년

 

 

유은식목사
제물포문화아카이브 대표

전시 취지

감리교회와 대한민국 역사를 다루기 위해 1992년 12월 17일에 감리교영상선교연구소를 개설하고 32년간 화보 집 속에 사진을 수집하여 분류하며 역사를 검토하였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분석, 편집하여 “고종의 조선 부국강병을 위한 프로젝트와 한국교회 140년”을 정리하였고 윤허 140년이 되는 7월 2일에 가우쳐기념예배당인 중앙교회에서 전시한다.

 

   
▲ 전시회 <고종의 조선 부국강병을 위한 프로젝트와 대한민국(한국감리교회)> 에서 설명하는 필자

문제 제기

그동안 보빙 사절단을 만난 가우처목사의 조선 선교 가능성을 타진하라는 부탁받은 재일선교사 매클레이가 1884년 6월 입국하여 7월 3일 고종의 윤허를 받아 1885년 4월 5일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제물포항에 입국해 공식적인 교육 및 의료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가우처가 만난 보빙 사절단은 왜 미국에 왔을까? 질문이 없다. 또한 윤허 받은 매클레이의 입장은 있는데 정작 윤허한 고종과 조선의 입장이 없다.

 

고종의 부국강병을 위한 윤허와 한국교회의 선교적 의미는 무엇인가?

 

부국강병의 길을 찾게 된 역사적 배경

이 대답은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시작을 알아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다. 그 첫 출발을 알아보기 위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19세기의 조선은 60년 세도정치와 탐관오리로 인해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이로인해 발생한 민란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12세의 어린 고종이 국왕으로 등극하여 시대가 바뀌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인천 앞바다에서 일어난 열강들과의 양요(병인양요, 신미양요), 그리고 운양호사건에서 이어진 조일수호조규로 인한 외세 간섭은 어린 고종에게 풍전등화와 같았다.

 

조선 부국강병의 길을 찾아 나선 고종

고종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고, 부국강병의 길을 찾고자 통리기무아문(행정기관, 1880년)을 설치하고 중국(영선사 파견), 일본(수신사 파견), 미국(보빙사절단) 등 선진 열강의 발전을 살펴 강한 나라가 되고자 했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을 계기로 고종은 미 푸트 공사가 부임하자 조선의 개화와 독립을 위한 인적 물적 자원을 요청하기 위해 보빙 사절단(1883)을 보냈다. 보빙 사절단은 미국 방문 중에 교육학자 가우처 목사를 만남으로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된다. 귀국한 부단장 홍영식(민영익과는 갈등을 빚었다.)은 고종에게 무기, 전기와 같은 신문물의 제조 및 배· 차· 우편· 전보 등의 도입과 미국의 교육제도를 통한 인재 양성이 급선무라고 보고(1883.11.22)하였다.

 

부국강병 길목에서 만난 기독교 복음

이에 더해 보빙 사절단을 만난 가우처 목사는 미 감리회 해외 선교부에 5천 달러를 기부하며 조선 선교를 제안하였고, 일본에 있는 매클레이(R. S. Maclay) 선교사에게 조선에 병원과 학교설립 가능성을 살펴보라 했다.(1884.1.30) 부탁받은 매클레이는 6월 24일 한양에 도착하였고 30일에 김옥균을 통해 제안서를 제출했다.

 

고종 윤허 결단

결국 고종은 홍영식의 보고(1883.11.22)와 매클레이의 제안(1884.6.30)을 종합해 1884년 7월 2일에(7월 3일은 김옥균에게서 윤허 소식을 전해 받은 날)

1) 미국 상선의 조선해 운항(교통망, 무역, 경제 등),
2) 미국인에게 병원(사회복지)과 학교설립(교육사업),
3) 전신 시설(정보 통신) 설치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결정했다.

홍영식의 보고는 이후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조선 부국강병의 첫 출발이며 매클레이의 제안은 조선 선교(기독교대한감리회)의 첫 출발이었다. 이렇게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출발은 고종의 윤허에서 한 날, 한 시에 출발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매클레이가 고종에게 윤허 받았다는 것은 절반의 내용이다. 미국에서 가우처를 만나 귀국한 홍영식의 보고와 미국에서 보빙 사절단을 만나 조선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매클레이를 통해 제안한 병원과 학교설립에 대해 고종이 주도적으로 세운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한 프로젝트(윤허)라고 해야 온전한 역사적 이벤트이다. 바로 이것이 이번 전시회의 목적이다.

 

결단에서 온 대한민국과 한국교회

이 일로 1885년 4월 5일 아펜젤러(H. G. Appenzeller)와 언더우드(H. G. Underwood)가 입국하여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였고, 인재 양성과 민족지도자를 배출함으로써 교회와 국가는 혼연일체가 되어 조선의 개화와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갑오개혁 후 대한제국을 수립해 대한민국의 기초를 세웠다. 그러나 러일전쟁 후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과 한일 강제 병합(1910)으로 일제강점기를 맞게 되었으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교회는 민족애를 일깨우며 독립운동을 실천하였다. 고종 승하(1919.1.21)를 계기로 시작된 3.1운동(1919.3.1)과 대한민국 임시정부(1919.4.11)를 통로로 삼아, 많은 독립운동과 애국 운동이 일어났으며 결국 해방(1945)되고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1948)하여 주권을 되찾아 광복을 이루었다.

 

맺는말

우리는 오늘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가 있기에는 고종의 조선 부국강병을 위한 프로젝트로 한국교회가 시작된 이래 조선의 수많은 역경과 함께했음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선교 윤허 140년을 맞은 2024년 7월 2일에 가우처 기념교회인 중앙교회에서 기념식과 전시를 가지는 것이다. 마침 중앙교회에서 전시회를 시작하는 7월 2일이 고종이 조선 부국강병을 위한 프로젝트를 세운 지 1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나아가 고종 선교 윤허 기념 주일(매년 7월 첫 주)을 만들어 길이 기념하였으면 좋을 듯싶다.

 

제물포문화아카이브 대표 유은식 목사/010-9105-2046
감리교영상선교연구소(역사와뉴미디어선교연구소) 소장 조병철/010-5233-6957)

   
▲ 제물포문화아카이브 대표 유은식 목사(우)와 감리교영상선교연구소(역사와뉴미디어선교연구소) 소장 조병철 목사(좌)

(감리교회와 대한민국 역사를 다루기 위해 1992년 12월 17일, 감리교영상선교연구소를 개설하고 1994년 10월 7일에 기관인준을 받아 32년간 운영해왔다. 타 교단과 인천 시민을 위해서 제물포 문화 아카이브(2009)를 설립, 인천 서구민을 위해서 작은도서관 더웨이(2014)를 개설하여 “복음을 문화(역사)로 선교”하고 있다. 감리교영상선교연구소의 조직을 보강하여 조병철 목사와 함께 계속한다. “역사 & 뉴미디어 선교연구소”로 변경하여 활동을 확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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