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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한국선교 문 연 고종 선교윤허 140주년 기념해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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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7월 02일 (화) 21:52:09
최종편집 : 2024년 07월 11일 (목) 16:08:51 [조회수 : 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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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황제의 선교윤허 140주년을 기념하는 감사예배가 2일 중앙교회(가우처기념예배당)에서 있었다.

한국선교 140주년을 1년 앞두고 고종황제의 선교윤허 140주년을 기념하는 사진전과 기념 감사예배, 감사찬양제가 고종의 선교윤허일인 1884년 7월 2일에 맞춰 2024년 7월 2일 오후 중앙교회(이형노 목사. 가우처기념교회)에서 개최됐다.

고종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고 부국강병의 길을 찾고자 통리기무아문(행정기관, 1880년)을 설치하고 중국(영선사 파견), 일본(수신사 파견), 미국(보빙사절단)에 사절단을 보내 선진 열강의 발전을 살펴 강한 나라가 되고자 했다. 보빙 사절단은 미국 방문 중에 교육학자이자 볼티모어의 러블리레인감리교회 담임인 가우처 목사를 만났고 가우처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선선교를 결심하고 조선선교 기금 2천달러(이후 합 5천 달러)를 기부하며 일본에 있던 맥클레이 선교사를 조선에 보내 병원과 학교설립을 통한 조선선교를 타진하게 했다.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1885년 가을에 선교부지로 한옥 19채와 대지 7천 여평을 마련한 비용이 670불이라고 보고한 것을 보면 당시 가우처가 기부한 5천 달러가 얼마나 큰지 가늠해 볼 수 있다.

1884년 6월 24일 한양에 도착한 매클레이는 김옥균을 통해 제안서를 고종에게 제출했고 고종은 보빙사절단으로 갔던 홍영식의 보고(미국 상선의 조선해 운항, 전보시설 설치 등)와 함께 맥클레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1884년 7월 2일 조선에서 미국인의 병원과 학교설립을 윤허했다. 다음 해 4월 5일 제물포항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입국하며 조선에서 교육과 의료 선교가 시작되었다. 감리회는 조선선교를 가능하게 했던 1884년 고종의 선교윤허를 기념하고자 7월 2일 가우처기념예배당인 중앙교회에 모여 감사예배를 드렸다.

 

   
▲ ‘고종의 조선 부국강병을 위한 프로젝트와 대한민국(한국감리교회) 전시회’

 

<고종황제 선교 윤허 140주년 기념대회>는 제물포아카이브 대표인 유은식 목사의 사진전시회, 기념감사예배, 감리회목사합창단인 쉐퍼즈과이어의 감사찬양제 등으로 꾸려졌다.

중앙교회 11층 본당 로비에 전시된 ‘고종의 조선 부국강병을 위한 프로젝트와 대한민국(한국감리교회) 전시회’는 외세의 침략과 정치의 붕괴로 위태로웠던 구한말의 시대적 배경속에서 고종이 어떤 조치를 취했고 미감리회가 한국선교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 조선의 근대화와 독립운동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걸게그림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전시회를 연 유은식 목사(제물포아카이브 대표)는 “매클레이가 고종에게 윤허 받았다는 것은 절반만 맞다”며 “미국에서 가우처를 만나 귀국한 홍영식의 보고와 미국에서 보빙 사절단을 만나 조선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매클레이를 통해 제안한 병원과 학교설립에 대해 고종이 주도적으로 세운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한 프로젝트(윤허)라고 해야 온전한 역사적 이벤트가 된다. 이것이 이번 전시회의 목적이다”라고 밝혔다.

보빙사절단 부단장 홍영식의 보고가 이후 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조선 부국강병의 첫 출발이 되었고 매클레이의 제안은 조선 선교(기독교대한감리회)의 첫 출발이었는 바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의 출발은 고종의 윤허에서 한 날, 한 시에 출발한 것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 고종황제 선교 윤허 140주년 기념 감사예배

 

기념 감사예배는 홍석민 목사(선교국 국내선교부장)의 사회로 감리회 5개 평신도단체장들의 감사기도, 성경봉독(박찬수 종로지방회 감리사), 특별찬양(크로체), 설교(선교국위원장 이용원 서울연회 감독), 환영사(태동화 선교국 총무), 선교윤허 동영상, 축사(채성기 서울남연회감독), 본부 총무들의 결단선언, 축도(신경하 감독) 순으로 진행됐다.

감리회 5개 평신도 단체장들은 각각 드린 짧은 기도에서 140년 전 가우처와 맥클레이를 통해 선교의 길을 열고 복음을 통해 민족을 깨우쳐 오늘에 이르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감사기도

감사기도 1 – 오수철 장로(남선교회 전국연합회장)
이 땅에 복음의 빛을 허락하셔서 우리나라와 민족을 새롭게 하신 하나님! 140년 전 하나님의 사람들을 머나먼 땅에서 보내주시고 이 땅에 예비된 사람들을 만나게 하셔서 복음이 전해지는 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으로 전해진 복음은 어둠의 땅, 한반도에 희망이 되었습니다. 선교윤허 140주년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시니 감사합니다.

감사기도 2 – 이정숙 장로(여선교회 전국연합회장)
은둔의 땅, 조선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인간의 의지나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보빙사절단과 가우처박사를 만나게 하시고, 매클레이와 김옥균을 만나게 하시며 선교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배움의 길을 열어주셔서 복음으로 인재를 키워주시고, 육신의 질병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어루만져 주셔서 새로운 삶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감사기도 3 – 강동화 권사(청장년회 전국연합회장)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이 땅에 전해진 복음은 어둠 속에 빠져있던 이 민족을 밝혀주는 참 빛이었습니다. 이 복음으로 한국의 초대교인들은 전도와 기도에 힘썼으며 나라를 빼앗기고 절망과 고통 속에 있는 백성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한국감리교회가 그렇게 우리 사회 속에 뿌리를 내리며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감사기도 4 – 서순종 장로(교회학교 전국연합회장)
140년 전 선교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예배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고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잊고 세속주의 빠진 오늘 우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감리교회가 자신을 돌아볼 맑은 눈빛을 갖게 하시고, 우리 안의 허물과 오만함을 발견하게 하시며, 내면의 어두움 속에서 다시 빛을 찾으려는 회개의 불씨를 담아내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감사기도 5 – 조금석 장로(장로회 서울연회연합회장)
140년 전 하나님의 전적인 부르심에 응답하며 은둔의 땅, 한반도 선교를 위해 순종한 선교사들처럼 우리 감리교회가 진정으로 ‘한 사람'을 사랑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이 땅에서 주님이 사랑하셨던 연약한 자, 돌봄이 필요한 이들,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이 구원의 기쁨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이 세상에서 소망의 씨앗을 뿌리고, 복음의 능력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도구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다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설교/선교국위원장 이용원 서울연회 감독(선교국위원장)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을 제목으로 설교를 전한 이용원 감독(서울연회)은 가우처와 맥클레이의 헌신과 고종의 선교윤허 과정을 소개하면서 고종선교윤허 140주년선교 기념대회 진행의 의의에 대해 “△하나님의 선교의 열정(섭리)를 바로 알고 △조선선교 헌신자들에게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하며 △역사의 뿌리를 보면서 감리교 미래의 선교전략을 세워야 하는 것에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아펜젤러보다 1년여 앞선 1884년 6월 24일에 조선땅을 밟은 맥클레이에 대해 “최초의 한국 선교사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다”며 “그냥 예배 한 번 드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선선교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가우처 등 그런 분들을 우리가 발굴해내고 찾아내어 합당한 예우를 해야 한다”고 했다.

감리회본부 선교국의 태동화 총무는 환영사에서 “메클레이가 조선에 들어왔을 때 교회는 민족의 희망이었고 소망이었다. 이 사회는 교회를 통해서 위로를 받았고 교회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돌아보고 “오늘 우리가 140주년 감사행사를 한 것은 초기 선교사들의 그 순수한 마음, 순교적인 열정을 이어받아 다시 우리 교회가 회복되어 세상에 빛이 되려는 소망을 갖기 위해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축사를 전한 채성기 감독(서울남연회)은 선교윤허를 받아 낸 매클레이가 감리교 선교사임을 강조하며 “우리 감리교회가 한국 선교의 문을 연 교단으로 쓰임 받게 됨을 먼저 축하드린다”고 했다. 이어 “한 세기 만에 이렇게 한국교회가 놀랍게 성장하는데 헌신한 믿음의 선조를 둔 우리가 자랑스러우며, 선교윤허 140년을 선교 1400년으로 새롭게 나가는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념예배 참석자들이 모두 기립한 가운데 감리회 본부의 선교, 교육, 사무, 사회평신도국 총무와 도서출판kmc 사장의 결단선언이 있었다.

총무들은 결단선언에서 “거룩함을 회복하는 교회, 선교를 위해 앞장서는 교회, 사회봉사와 복지운동을 위해 헌신하는 교회 교회일치와 협력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앞장서며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도구로서 사명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신경하 감독(26대 감독회장)의 축도로 감사예배를 마쳤다.

 

결단선언

결단선언 1 - 태동화 목사(선교국 총무)
우리 감리교회는 구한 말 개화시기에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는 140년 전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으로 복음이 이 땅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선교초기 선교사들과 선배 감리교인들의 뜨거운 신앙과 영적인 능력을 회복하고 세상의 빛 감리교회로 바로 서기 위해 고종 황제 선교 윤허 140주년을 맞으며 다음과 같이 결단한다.

결단선언 2 - 김두범 목사(교육국 총무)
하나, 우리는 웨슬리의 영적회심으로 시작한 감리교회로서 다시 성령으로 충만하고, 다음세대가 믿음으로 일어나는 소망 가운데 부흥을 꿈꾸며 거룩함을 회복하는 교회가 될 것을 결단한다.

결단선언 3 - 신현승 목사(사무국 총무)
하나, 우리는 한국 선교 초기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온전한 도구로 쓰임 받은 가우처, 매클레이, 아펜젤러, 스크랜턴 모자 선교사의 신앙 정신을 계승하여 낙후지역 선교를 위해 앞장 설 것을 결단한다.

결단선언 4 - 문영배 장로(사회평신도국 총무)
하나, 우리는 교육과 의료, 사회사업으로 사회발전을 이룬 초기 선교사들의 활동을 본받아 소외된 이웃과 현장에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성숙한 교회 상을 정립하고 교회마다 사회봉사와 복지운동을 위해 헌신할 것을 결단한다.

결단선언 5 - 김정수 목사(도서출판kmc 사장)
하나, 우리는 세계선교를 위한 교회로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세계교회의 일치와 협력운동에 적극 참여하며,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앞장서고,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도구로서 사명을 다할 것을 결단한다.
(다같이) 우리를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다하는 도구로 사용해 주옵소서. 아멘! 

 

   
 

이어 쉐퍼즈콰이어의 감사찬양제가 공연됐다. 2011년 창단된 쉐퍼즈콰이어(단장 김학중 목사)는 60여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목회자로 구성된 합창단으로서 영성 있는 음악을 통한 선교를 목적으로 다양한 연주 활동 해오고 있다. 발리 국제합창제 금메달 등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으며 오는 8일(월)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제1회 드림합창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감사찬양제 이후 참석자들은 만찬을 나누며 교제를 이어갔다. 

 

 

   
 

 

사진전시회

 

   
▲ <고종황제 선교 윤허 140주년 기념> ‘고종의 조선 부국강병을 위한 프로젝트와 대한민국(한국감리교회)' 사진전시회 커팅
   
▲ 사진전시회를 연 유은식 목사(제물포아카이브 대표)가 설명하고 있다.
   
 

 

감사예배

 

   
▲ <고종황제 선교 윤허 140주년 기념예배> 사회 / 홍석민 목사(선교국 국내선교부장)
   
▲ 감사기도 1 – 오수철 장로(남선교회 전국연합회장)
   
▲ 감사기도 2 – 이정숙 장로(여선교회 전국연합회장)를 대신해 서정숙 장로(서울연회연합회장)
   
▲ 감사기도 3 – 강동화 권사(청장년회 전국연합회장)
   
▲ 감사기도 3 – 서순종 장로(교회학교 전국연합회장)
   
▲ 감사기도 5 – 박웅열 장로(장로회전국연합회장)을 대신해 조금석 장로(장로회 서울연회연합회장)
   
 
   
▲ 성경봉독 / 박찬수 종로지방회 감리사
   
▲ 특별찬양/크로체
   
▲ 설교/선교국위원장 이용원 서울연회 감독(선교국위원장)
   
 
   
 
   
 

 

   
▲ 환영사 / 본부 선교국 총무 태동화 목사
   
▲ 선교윤허기념 동영상을 제작한 유은식 목사의 설명
   
▲ 선교윤허기념 동영상 시청
   
▲ 선교윤허기념 동영상 시청
   
▲ 축사 / 채성기 감독(서울남연회)
   
▲ 결단선언 1 - 태동화 목사(선교국 총무)
   
▲ 결단선언 2 - 김두범 목사(교육국 총무)를 대신해 박상철 부장(장년교육부장)의 대
   
▲ 결단선언 3 - 신현승 목사(사무국 총무)
   
▲ 결단선언 4 - 문영배 장로(사회평신도국 총무)
   
▲ 결단선언 5 - 김정수 목사(도서출판kmc 사장)
   
▲ 축도 / 신경하 감독(제26대 감독회장)

 

   
 

 

감사찬양제

 

   
 
   
▲ 3부 / 감사 찬양제 - 쉐퍼즈콰이어 (단장 김학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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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성도 (58.78.98.118)
2024-07-06 07:08:11
그나마 고종이 잘한 부분
조선의 역대 王들 중에 무능했던 王의 대명사라면 26대 王인 고종도 그들 중에 한 사람
이긴 합니다.
그런데 자기 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는 달리 종교적인 면에서는 좀 유연한 생각을 가진
임금이었나 봅니다.
고종의 부친인 흥선대원군이 전면에 등장을 했을 때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으면서
쇄국 정책을 펼쳤고 천주교도들을 무자비하게 도륙을 하고 핍박을 했었습니다.
그로 인해 조선은 근대화할 시기를 놓쳤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주변과 세상 물정에도
참으로 어두웠습니다.
이후 고종이 전면에 등장을 하면서부터 조선은 내적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고
세도​정치가 활개를 치게 되면서 백성들의 삶이 고단해지고 피페해져 갔습니다.
그 결과 대규모 민중 봉기인 동학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백성들의 분노를 스스로 막을
수가 없던 조선은 외세의 군대를 끌어들여 민중봉기를 잠재우게 됩니다.
그 결과 청국과 일본의 군대가 조선에 주둔하게 되었고 서로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
두 나라는 갈등을 겪게 되고 마침내 청, 일 전생까지 치르게 됩니다.
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노골적으로 조선의 내정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고 여러 간신들을
앞세워 조선의 조정을 압박하게 됩니다.
일본의 간섭과 압박에 머리가 복잡했던 고종은 이들의 위협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하다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 혹시 기독교 국가인 미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독교를 허용했지만 고종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은
조선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은 정교를 분리하는 것이 원칙이어서 조선의 내정에 대해 어떠한 부분도
자기들은 관여를 하지 않겠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 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기독교를 허용을 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아무것도
얻지를 못했지만 그 당시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써 기독교는 한반도에서 빠르게 정착을
했고 백성들의 시름을 정신적으로 나마 덜어주게 되었습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부분은 그나마 고종이 잘한 업적 가운데
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고종 임금의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다른 얘기도 해보고자 합니다.
조선이 망한 것은 고종의 무기력함과 무능력도 한몫을 한 건 사실입니다.
이렇게 나약하고 무능한 인물을 왕위에 올린 사람은 그의 부친인 흥선대원군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자기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풍수지리를 통해 알게 된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 어느 기슭의 자리를 알게 되었고 그곳으로 부친인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고자 했지만
그 위치에는 이미 천년 고찰인 가야사가 자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와위에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된 흥선대원군은 가야사에 불까지 내가며 그 자리를
탐을냈고 끝내 경기도 파주에 있던 남연군의 묘를 파묘를 해서 이곳까지 이장을 하게 됩니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바람대로 2대에 걸쳐 아들과 손주가 조선의 王이 되었습니다만 이로
인해 조선의 기운도 풍전등화의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비록 王은 배출했지만 태조 이성계가 1392년에 세운 조선은 1910년 순종 3년을 끝으로
문을 닫게 됩니다.
王을 배출하기 위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부친의 묘까지 이장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라가
망했기에 과연 그 묘 자리는 명당이었을까요.
정말 명당이었다면 王도 배출하고 그 임금이 통치를 잘 했어야지요.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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