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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in감리교 두 번째 모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같이 울어야”
심자득  |  webmaster@dangdang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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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6월 29일 (토) 19:25:21
최종편집 : 2024년 07월 09일 (화) 00:24:30 [조회수 :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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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회복과 재건을 위해 기도하고 해법을 제시하겠다고 나선 원로목회자들의 모임 <Again감리교회(회장 김진호 감독)>이 24일 수서역의 은목선교센터에서 2차 모임을 가졌다.

이날도 20여명의 원로들이 모여 감리회를 위해 기도하고 강의를 들으며 감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이어갔다.

 

   
▲ 김철한 목사

먼저 모임에서 말씀을 전한 김철한 목사(오목천교회 원로)는 생존에 급급했던 오목천교회가 수원에서 가장 큰 감리교회가 된 과정을 간증으로 들려주며 “나는 은퇴했어도 부흥을 갈망하는 불꽃이 내 속에 남아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와중이었고 참모들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블레셋에 점령당한 그일라 성을 구하기로 한 것은 상식이나 자신의 안위를 우선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따르고자 했던 영적인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이것이 감리회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우리 어게인감리교가 갖춰야 할 영적인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 임준택 목사

임준택 목사(전 서울남연회 감독)도 간증의 시간을 통해 성령의 역사와 인도를 받는 목회를 강조했다. 스님이 되기 위해 동국대 불교학과를 지원하고자 했던 그가 고교생 시절에 성경을 읽으며 기독교로 개종하고 감신대에 입학해 목사가 되었으며 대한수도원에서, 그리고 장광영 목사님의 부흥집회에서 체험한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간증으로 들려주면서 “나의 목회는 성령의 역사와 인도를 받는 목회였다. 그래서 목회가 쉬웠다. 올더스케잇에서 웨슬리를 뜨겁게 했던 그 성령의 뜨겁게 하시는 역사만 있다면 우리 감리교회는 소망이 있다.”고 말했다.

 

   
▲ 이요한 목사

이어 이요한 박사(전 본부 선교부 총무, 전 목원대 총장)의 강연이 이어졌다. 이 박사는 최근에 감리교회의 전,현직 지도자들과의 만남을 자주 가지며 감리회의 위기에 대해 대화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지금이 감리교회가 사정없이 난파되어 중환자실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다시 일어설지 사라질지 기로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이 박사는 또 지금의 한국감리교회가 뜨겁지도 차지도 않아 주님이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라고 책망받았던 라오디게아교회 같다고도 했다. ‘예수의 입으로부터 토해져서 길거리 쓰레기통 옆에서 썩어 가고 있는 오물단지’라는 극한 표현까지 마다하지 않았으며 감리교회가 언제부턴가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곳이 되어 버려 돈이 없으면 장로도 못되고 감독, 감독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하는 교단이 됐다고 한탄했다. 이 박사는 감리교회가 ‘하나님의 불’로 더 뜨거워지고 새롭게 제련되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감리회의 황금기를 지나온 목회자로서 과거 한국교회가 뜨거웠다고 회상했다. 일본의 압박과 공산당의 교회 말살 정책 밑에서도 우리의 선배들은 “십자가를 향한 뜨거움”을 가지고 싸웠고 신학도 제대로 몰랐고 그래서 세련됨은 없었어도 그들은 뜨거움을 가지고 교회를 섬긴 “복음의 불덩어리”였다는 것이다.

그는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잇에서의 성령체험을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고 그의 일기장에 적은 웨슬리의 고백과 성령체험 5일 후 “나는 5일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한 고백에 주목했다. 일반 사람들이나 평범한 기독교인들의 눈에 “미친 경험”, “정신 나간 경험”일테지만 감리교회의 복음 전파의 동기가 된 이런 고백, 이런 경험이 우리 교회의 목회현장 에 재현되어야 기로에 선 감리회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같이 울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바벨론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뒤 포로로 잡혀가 바벨론의 여러 강가에서 지난날의 영화를 추억하며 슬픈 후회의 눈물을 흘리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회개의 눈물을 흘리자고 말이다.(하단에 강연문 전문 참조)

 

   
 

한편 <어게인 감리교>는 김충식 목사의 인도로 전국 기도모임을 조직했다. 각 연회의 책임자는 서울연회 김기택 목사, 서울남연회 김충식 목사, 경기연회 박종배 목사, 동부연회 원종국 목사, 남부연회 이기복 목사, 삼남연회 정양희 목사, 전국은퇴목사회 김산복 목사 등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강가에서 서로 손잡고 같이 울었던 것처럼

 저는 작년 이래로, 심지어 어제까지도 감리교회의 전, 현직 지도자들을 많이 만나 뵙고 감리교회의 현실성에 대해 깊고 의미있는 말씀들을 나누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놀랐다”는 말씀과 함께 커다란 걱정과 슬픔을 토로하셨고 심지어는 “좌절이 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분과는 9시간이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과의 만남과 대화의 결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좌절, 무관심, 불인정, 이기주의, 책임회피, 올더스케잇의 경험 및 종말, 아주 작은 희망의 조각들입니다. 저는 “지금”이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일어설 수 있느냐 아니면 밤을 지나 동이 트게 되면 밤하늘의 별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듯 한국감리교회가 이 땅 저편 수평선 너머로 서서히 서서히 사라지고 말 것인가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문득 19세기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톨 고갱의 그림 한 점의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지금 어떠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What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그리고 우리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연히 이런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감리교회의 ‘과거’는 어떠했으며, 한국감리교회는 ‘지금’ 어떠하며, 한국감리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What were we previously, What is our present condition, What future are we aspiring to)?” 

스웨덴의 스톡홀름대학교의 철학교수 오사 빅토르스(Asa Wikforss)는  그의 책 “진실의 조건(Alternativa Fakta)"에서 현대인들의 잘못된 문화를 지적하면서 이런 경고를 내렸습니다.  “믿음은 아무리 강력하다 해도 지식과 같지 않다.” 우리 같은 종교적 지도자의 입장에서는 선 듯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식보다 믿음의 우위성을 늘 강조해 오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와사 빅포르스의 주장의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시대를 살고있는 모두들, 특히 감리교 전,현직 지도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시대의 믿음과 지식의 관계성에 대해 한번 심각하게 그 뜻을 물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현대사회는 가짜뉴스(Fake News)가 진짜 뉴스보다 빠르게 전파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 뉴스가 설령 가짜뉴스라 하더라도 일단 인간이 접하게 되면 ‘초두 효과’라는 경향에 의해 사실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미국 MIT에서 10년간 연구하고 ‘시이언스’잡지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가짜뉴스(가짓의 정보)가 진짜뉴스 보다 6배 빨리 퍼져 나간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신기함의 가설(Novelty Hyphothesis)라고 합니다. 어쨌든 현대사회는 거짓이 판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확실한 지식정보를 갖기 전에는 함부로 믿음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위의 사실들이 의미하는 바에 더하면 우리가 가짜뉴스에 현혹되어서도 안되지만 동시에 우리를 아프게 하는 “진실”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아야 하고 또한 사실성이 확인된 것에 대해서는 강력히 밀고, 그 믿음에 의해 결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감리교회는 사정없이 난파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국감리교회는 지금 중환자실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의 경고처럼 우리는 모두 가라앉으려는 이 배에서 뛰어내려 해변으로 헤엄쳐 자기 생명만 보전하려는 이기주의에 붙들려 있으면 안됩니다. “죽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결코 종말이 아니고 “종말론적인 새 삶”을 약속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를 추억하며 다음과 같은 조사를 읽었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아파트에서 어머니의 사진을 혼자서 하나하나 훑어보며 전등불 아래서....  내가 사랑했던 얼굴의 진실을 찭았다. 거기에 분명히 내가 있었다.” 칼 바르트는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어머니의 빛바랜 사진 안에서 자신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영원한 시간의 존재로써 자신을 발견하였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감리교회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침묵 속에서 거의 죽어가고 있습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종교철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마크 테일러(Mark taylor)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침묵을 보라(Seeing Silence)”  한국 감리교회가 소리 없이 침묵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보아야” 합니다.

한국감리교회의 과거를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과거 교회 목회현장의 지도자들은 가슴 속에 “뜨거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일본의 압박과 공산당의 교회 말살 정책 밑에서도 우리의 선배들은 “십자가를 향한 뜨거움”을 가지고 싸웠습니다. 그들은 신학도 제대로 몰랐고 그래서 세련됨은 없었어도 그들은 뜨거움을 가지고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자식도, 가정도 뒤로 제쳐놓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감리교회를 위해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으면서 희생했습니다. 그 분들은 “복음의 불덩어리”였습니다. 지도자들이 불덩어리였기 때문에 교인들도 불덩어리였습니다. 지금도 기억됩니다. 밤이 되면 할머니들이 모여 새벽이 될 때까지 기도하시던 모습이 기억됩니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는 찬물에 수박을 담가 놓았다가 할머니들에게 드리던 기억이 납니다. ‘사경회’때면 시골 사람들이 풍로를 가지고 오셔서 일주일 동안 집에도 안 가고 겨울에는 교회당 안에서, 여름에는 교회당 마당에서 불을 피워 밥을 해 먹으면서까지 믿음에 갈급하던 모습들이 떠오릅니다. 과거의 한국감리교회는  
     * 목사가 강단에서 쏟아내는 말씀의 불
     * 할머니들의 철야기도의 불
     * 시골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의 풍로불 
     * 성경학교에서 핏대를 올리며 찬송을 배우던 어린아이들의 합창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던 불의 교회였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한국감리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계시록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슬픈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계시록 3장 15-16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면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라”.

지금 우리의 경험으로 유추해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의 입으로부터 토해져서 길거리 쓰레기통 옆에서 썩어 가고 있는 오물단지입니다. 그 썩어 가고 있는 음식물들 위에는 파리들과 구더기들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 중에 제일 기피하고 싶은 것이 미지근한 커피입니다. 뜨거운 라떼는 늙은이들이, 차가운 얼음이 담긴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젊은이들이 마시지만 미지근한 커피는 아무도 마시려고 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을 구성하고 있는 히브리 사상에 의하면 하나님 “야훼”는 “불”이십이다. 하나님의 형상(창 1:27)이란 하나님의 “불”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졌다는 말은 인간은 하나님의 불로 창조되었고 이 하나님의 불이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아담’이라는 뜻도 피, 생명 그리고 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불이 없는 인간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안에 하나님의 불이 없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저는 한국감리교회의 미래는 다음의 요한 웨슬레의 고백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738년 5월 24일 저녁 8시 45분 경 그는 결정적인 종교적 체험을 했습니다.  그는 그때의 경험을 이렇게 일기장에 썼습니다,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어제 나 자신이 그리스도를, 오직 그리   스도만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주께서 나의 모든 죄를 영원히 제거하셨고 나를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우선 “strangely(이상하게)”라는 단어입니다. 이 경험은 웨슬레가 과거에는 상상도 그리고 경험도 해 보지 못한 아주 이상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성주의자였던 웨슬레는 이 경험 전에는 이런 경험을 저급한 신앙인들의 경험이었다고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그는 교만한 신학자에서 무지한 소위 삼류 교인으로 추락하는 -그의 교만이 깨어지고 - 겸손의 자리에 떨어지는 현기증 나는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또 중요한 관점은 그 경험은 분명히 자기 힘이 아닌 “타(The Others)” 에 의해서 이루어졌던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다음의 단어 “warmed” 소위 “뜨거워졌다”라는 웨슬레의 표현에 대해서 좀 다른 견해를 조심스럽게 밝히고 싶습니다. 웨슬레 선생이 “따뜻해졌다(warmed)”는 자기 경험의 표현은 실제로는 그의 가슴이 성령의 불로 인해 “뜨거워졌다(My heart bunning)” 였을 것입니다. 그가 “따뜻해졌다(warmed)”라고 표현한 이유는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첫째로 그는 고급신학을 공부한 이성주의자였습니다. 따라서 올더스게잇 경험이 아무리 큰 경험이었다 하더라도 자기의 절정의 종교적 경험을 매우 절제된 단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두 번째로는 당시의 영국 사회 및 종교적 혼란스러움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경험이 지나친 신비주의나 도를 넘는 열광주의와 같은 종교적 경험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려하였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인간이 따뜻한 정도의(warmed)의 경험을 통해 죽음(Death)으로부터, 죄(Sin)로부터 분명한 해방을 얻었다는 확신(Assurance)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가슴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영혼의 뜨거운 불길을 통하지 않고 적당한 심리적 온도의 경험을 하고는 인간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웨슬레는 사실상 위의 종교적 경험을 한 후 5일 만에 “나는 5일 전까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습니다”라고 고백하였고 그의 고백을 들은 주위의 한 사람이었던 터튼은 “당신은 지금 제정신이오?”라고 까지 반박하였었습니다. 베스도가 바울에게 하였던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행 26:24)”는 말과 동일한 비평을 받았습니다

왜 일반 사람들이나 평범한 기독교인들의 눈에 “미친 경험”, “정신 나간 경험”이 2000년 전 기독교와 400년 전 감리교회의 복음 전파의 동기가 되었을까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나와 우리 교회의 목회현장 어디에, 그리고 언제 있었을까”하는 고백입니다. 요한 웨슬레의 경험은 탈 이성주의적 경험은 아니었으나 분명 초이성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2000년 전, 400년 전 하나님의 교회의 시작이 “미친 경험”, “정신 나간 경험”으로 시작된 것을 어떻게 지금 2024년도의 우리 교회 현장에 연결시켜야할까 고민해야 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좀 씁쓸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편리상 1970년대 이전의 한국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을 제 1세대의 지도자라고 부르고 1980년대 이후의 지도자들을 제 2세대의 지도자라고 부르고 요즈음 젊은 목회자들을 제 3지도자라고 부르며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제 1세대 지도자들은 온갖 고통과 순교의 피를 흘림으로, 우리 한국감리교회라는 “컵(Cup)”에 달고 맛있는 영양분을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해 제 2세대 대부분의 지도자들이었던 우리들은 가볍고 쉬운 “빨대”를 가지고 그 “컵”안에 있는 영양분들을 쉽게 쉽게 빨아 먹었습니다. 이 시기 (1980-2024)에 일했던 제 2세대지도자들, 나 자신과 모든 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은 “선교적으로도 너무 쉬운 시기”에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우리 선배들에 비해, 그리고 지금 현재 목회현장에서 힘들게 목회하고 있는 젊은 후배들에 비해 우리는 행복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우리가 빨대만 넣고 컵 안에 있는 영양분을 먹어버렸으므로 슬프게도 빈 컵과 빨대만 남았습니다.  

시편 137편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슬픈 기도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 변 거기서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 137:1)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의해 나라를 빼앗긴 뒤 포로로 잡혀가 유프라태스와 티그리스강가에서 지난날의 영화를 추억하며 슬픈 후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 앞에 흘러가는 강물은 강물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회한의 눈물이었고 흘러가는 강물의 나지막한 물소리들은 크게 소리 내어 울 수도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프고 슬픈 마음들 이었습니다. 이제 제 2세대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예수님의 경고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한강 가에서, *금강 가에서, *낙동강 가에서, *섬진강 가에서, *영산강 가에서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백성들을 붙들고 같이 회개의 눈물을 흘렸던 것처럼 우리들도 서로서로 붙들고 울어야 합니다. 또 뜨거운 기도의 운동을 일으켜야 합니다.(느1:5-11,  4:19)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우리는 제 1세대 지도자들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우리는 제 3세대 젊은 현재의 감리교회의 지도자들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서 한국감리교회의 이름으로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고 있는 선교사들 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서로서로 손을 잡고 위로해 주고, 용서해주고 힘을 합칩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하나로 뭉쳐서 예루살렘성을 다시 세웠듯이 우리도 우선 뭉쳐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감리교를 일으키고, 성장시키고, 관리해 나가는 과정에서 항상 연결주의(Connectionalism)를 강조했습니다. 왜냐하면 연결주의 제도가 건강한 교회와 신앙을 이끌어 가는 가장 위대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감리교회는 서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돕는 교회입니다. 서로 뭉쳐서 서로 돌보고 서로 힘을 주어야 합니다.

작은 꿀벌들은 커다란 말벌이 자기 집에 들어와 애벌레를 잡아먹는 상황에서 말벌을 물리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로 작은 꿀벌들이 한꺼번에 말벌에게 달려들어 뭉쳐서 주위의 공기를 올리는 일입니다. 말벌은 주위의 온도가 섭씨 46도가 되면 죽습니다. 꿀벌들이 서로 말벌에게 달려들어 주위의 온도를 섭씨 48도까지 올리면 말벌도 죽고 맙니다.  

많은 분들이 걱정스럽게 이렇게 질문을 하십니다. “그러면 실제적으로 우리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저는 아직은 ‘어게인 감리교회’가 전략상 실제적 방법을 구해 제시하기 보다는 먼저 서로 뭉쳐서 감리교회를 살리려는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2세대, 제 3세대 지도자들이 다 함께 모여서 마음을 합한 후에 그 공동체정신으로 다음 과정을 차차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마음을 하나로 뭉친 후에 전략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탠포드대학교의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sis Fukuyama)교수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ost man)”에서 역사의 종말에 나타나는 ”최후의 인간상“에 대해서 ”가슴이 없는 인간 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역사를 변화시키기 위한 불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최후의 인간상에 대해 한 가지 더 지적했는데 역사가 망하려면 “육체적 안전과 물질적 풍요”를 제 일의 우선적 과제로 삼고 사는 인간상의 출현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감리교회는 언제부터인가 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돈이 없으면 장로가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감독, 감독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돈을 써야 하고 돈을 많이 쓰는 편의 당선이 거의 확실합니다. 감리교회 내에서 돈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일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강연의 다음 내용은 다음 모임에서 계속될 강연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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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생명 (175.210.157.215)
2024-06-30 22:27:58
지금 현 감리교 상황이 본인들 탓인줄 모르시나보네요
회개는 결국 이후의 삶의 변화로 확증되어 나타나는 것인데
자 어르신들 이제 보여주시죠
리플달기
7 1
이진홍 (61.72.193.252)
2024-06-30 07:17:07
한 철 장사할 시즌이지?
리플달기
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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