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지배 사회> , 최정균, 동아시아, 2024

우리들을 속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유전자 지배 사회>의 저자 최정균은 자연이라고 말합니다. 저자에게 자연은 알아내고 싸워야 하는 대상입니다. 저자는 유전자가 심어놓은 인간의 본능 역시 자연의 일부라고 꼬집어 말합니다. 이 책은 가정, 사회, 경제, 정치 등의 영역에서 부지불식간에 벌이는 행위들의 근간에 놓인 이기적인 유전자들에 관한 사실을 다룹니다. 책의 제목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처럼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자 결정론을 따르며 그 예를 풍성하게 제시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에 그치지 않고 자연에 의해 생겨난 인간의 모든 진화적 속성에 저항하고 그것들을 극복할 것을 주장합니다. 

우리가 ‘결혼’이라고 부르는, 혹은 수컷과 암컷 간에 벌어지는 유성생식이라는 거래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기만, 부모가 필요에 따라 자식을 선별해 살리고 죽이는 행위, 다른 인종이나 사회적 소수자 혹은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그리고 편견과 고정관념과 낙인, 마녀사냥을 비롯한 여성 탄압이나 현대사회에서도 끈질기게 지속되는 성차별, 공격성과 전쟁, 학교 폭력이나 교권 침해, 다른 이의 경제적 기회나 그들이 생산한 가치를 탈취하거나 착취하는 행위, 능력주의에서 비롯된 심각한 불평등, 과시적 소비와 유흥,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으로 수많은 인명을 간접적으로 살해하는 것이 그런한 예다.(244)

위에 열거한 것들이 유전자의 폭거임을 저자는 자세히 설명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유전자는 자연에 굴복했고 인간은 유전자에 굴복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자는 사랑과 혐오 외에도 많은 것을 유전자로 설명합니다. 특별히 자본주의 경제학을 번식 경쟁으로 해석하고 정치적 진보와 보수를 신경전달물질과 연결하여 설명한 것은 무척 참신합니다.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의 근저에 작동하는 이기적인 유전자와 그것을 빚어낸 자연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하거나 심지어 종교의 대상으로 삼는 행태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런 자연에 맞서는 길을 제시합니다.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하나둘 알아가는 일은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저자는 유수 학술지에 실린 최신 연구들로 골자에 살을 채우기 때문에 저자의 글은 새로운 과학적 사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자가 책을 여섯 장으로 구성했는데 그 마지막 6장은 성경 말씀으로 가득하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이기적 유전자들을 무의식적으로, 혹은 비판 없이 따르는 것을 어떻게 막고,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성서의 정신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합니다. 저자는 유신론자는 아니지만, 그가 나름 진지하게 다가간 창조와 야훼 신앙, 예수님에 관한 성경의 풀이는 참신함을 넘어서 무엇을 깨닫게도 합니다. 물론 교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해석도 많지만, 성서를 두루 다루는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한 과학자의 마음의 족적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자신이 공부하고 판단한 사유 안에서 사람과 세계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내놓는, 한 진중한 인격을 만나는 것 같은 경험을 주는 책입니다. 

김국진 목사(산돌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