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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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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6월 12일 (수) 03:01:09
최종편집 : 2024년 06월 12일 (수) 03:02:52 [조회수 :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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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과 권력(이정모, 부키)

2024년 부활절은 3월31일 일요일에 기념되었다. 전에부터 부활절 날짜를 결정하는데 매우 복잡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활절 날짜는 매년 바뀌며, 계산법은 춘분 후 첫 번째 보름달이 뜬 후 오는 첫 일요일로 정해진다고 한다. 2024년 춘분은 3월 20일(수요일)이고, 춘분 다음에 뜨는 첫 보름달 날짜는 3월 25일(월요일)이다. 따라서 2024년 부활절은 3월 31일이다. (https://blog.naver.com/). 이를 확인하기 위해 마침 이정모 관장의 ‘달력과 권력’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흐르는가?’ 등 시간을 정의하려는 과학 또는 철학 책이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정작 시간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는 아직 어렵고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러나 시간이 무엇인지 보다는 시간을 어떻게 측정했는지가 보다 쉬우면서 더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 책을 읽어 보았다.

 

저자 이정모는 연세대학교 생화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교 화학과에서 ‘곤충과 식물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연구를 했으며, 안양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일했다. 지은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 사이언스’, ‘삼국지 사이언스’(공저), ‘과학하고 앉아 있네 1, 2’(공저), ‘해리포터 사이언스’(공저), ‘유전자에 특허를 내겠다고?’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눈이 뱅뱅 뇌가 빙빙’, ‘제이크의 뼈 박물관’, ‘인간 이력서’가 있다.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을 거쳐 현재는 강연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교보문고) 저자는 독일 본에서 공부할 때 독일 도서관에서 여러 가지의 자료를 참고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다고 하였다. 저술의 시작은 ‘GEO’ 잡지 특집으로 ‘지난 천년에는 모두 며칠이나 있겠는가?’라는 기사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율리우스 달력과 그리고리우스 달력의 윤년 규칙을 알고 있던 터라 쉽게 저자는 풀었다. 그러나 답과 10일이나 차이가 났다. 왜 그럴까 저자는 호기심에 빠져 들어 갔다. 큰 목차는 다음과 같다.

년 10월 로마에서는

달력의 구성 요소

현대 달력의 기원

그레고리우스 달력

혁명과 달력

고대 문화권의 달력들

우리나라 달력

현대 달력의 허점들

또 새로운 달력이 필요한가

달력의 역사 연표 / 참고문헌 / 찾아보기

 

‘달력과 권력’은 기원전 6천 년경부터 현대의 그레고리우스 달력에 이르기까지 달력의 변천사와 그에 얽힌 이야기, 달력과 관련된 여러 궁금증을 흥미롭게 다루는 책이다. 이 책은 달력의 구성 요소를 설명한 후 현대 달력의 기원인 고대 이집트 달력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달력은 인류 역사와 문화에 깊이 뿌리를 내린 중요한 개념으로, 고대 이집트 달력, 로마 달력, 율리우스 달력, 그레고리우스 달력과 같은 다양한 달력의 변천사를 다루고 있으며, 달력의 구성 요소와 기원, 그리고 달력을 둘러싼 권력과 과학의 충돌을 탐구한다. 또한 프랑스 혁명 달력, 소비에트 달력, 세계 달력, 영구 달력과 같은 다양한 달력들도 소개하며, 달력의 정확성과 문제점을 다룬다. 이 책은 달력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들과 역사적 배경을 제공하며, 달력이 어떻게 우리 일상생활과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한편으론 과연 탄신일, 기념일 등 그날이 아니면 안 되는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하는 행동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왜냐면 하루라는 크기도 그간 수없이 바뀌었고 그 하루를 넣었다 빼다 하였고 하물며 달을 넣고 빼고 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다룬 몇 가지 중요 사건을 소개하면 서 독후감을 끝낼까 한다.

 

달력의 구성요소에는

하루를 결정해주는 지구의 자전

한 달을 가르쳐 주는 달의 공전

한 해를 알려주는 지구의 공전이 있다.

지구의 자전을 하루로 기준 잡으면 하루는 24시간이며, 1,440분이고 86,400초이다. 달 공전을 기준으로 하는 한 달은 29.530589일이며, 해 공전을 기준으로 하는 1년은 365.24219879일이다. 복잡하다. 백과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태양의 운행 주기는 지구 운행 주기로 나누어 떨어지지 않으며, 달의 운행 주기 또한 시간의 기본 단위인 하루의 정수 배로서 나타내지 못함으로써 달의 공전에 따르는 한 달과 지구의 공전에 따른 1년의 길이는 정수로 나타나지 않으며…’. 아주 모호하다. 지구의 자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크로노미터(측시기, 測時器)라 할 수 있다. 천문학자 우리가 사용하는 ‘날’이라는 단어는 일상생활에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밝음의 의미이며, 둘째는 낮과 밤이 합한 시간의 길이를 말한다. 두 번째가 달력에서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하루라는 개념은 나라와 문화마다 그 시작점이 달랐다. 일출(이집트, 초기 그리스), 일몰(유대인, 태음력 사용 중동 민족), 정오(초기 아랍인, 프톨레오마이오스), 한밤중(한국, 중국 일본, 기원전 2세기 이집트) 등이다. 국제표준기구는 하루를 0시0분에서 24시0분까지의 24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구의 자전 속도는 점점 늦어져 하루의 길이가 조금씩 길어져 왔다.(자전 속도가 왜 늦어지는 아직 잘 모름) 하루의 길이가 매일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실제적인 하루의 길이와는 상관없는 길이를 1초로 정하였다. 세슘(Cs)이 방출하는 파장의 진동수를 따라서 1초를 정한 것이다. 현재의 기술로는 1조 분의 1초까지 측정할 수 있다. 그리고 하루가 실제로는 86,400초가 아님에도 하루를 86.400초로 나누였기 때문에 실제적인 지구의 하루와 맞추어 주기 위해 사람들은 대략 3년마다 2초의 윤초를 두고 있다. 윤초는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시간국(Bureau International de IHeure, BIH)에서 결정한다.

 

1주일

새로운 달력 체계들과 그 시행에 따른 혼란 속에서도 변함없이 지속된 것이 있는데, 바로 주일이란 단위이다. 주일이 자연 현상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사용한 시간 개념이기 때문에 변함이 없어 왔다. 주일은 하루보다는 큰 시공간이다. 주일의 기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달의 모양이 변화하는 것에서 주일이 기원한 것은 아닐까 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믐달 (어둠) 상현달(커지는 반달) 보름달 하현달(작아지는 반달) 그믐달(어둠), 이렇게 한 달을 약 4개의 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주일은 7일 주일보다 5일 주일이 먼저 사용되었다. 5일은 한 손의 손가락을 사용하여 셀 수 있으므로 매우 편리했다. 기원전 3000년경 바빌로니아에서는 60진법이 사용되고 있었다. 바빌로니아인들에게 3, 5, 6과 60은 신성한 숫자였다. 이들에게는 2달에 5일 주일이 12번 있었으며 1년은 모두 72주로서 360일이었다. 세대를 거듭하여 1년이 365일임을 알았을 때는 1년이 73주가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5일 주일은 이집트 문명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면 7일 주일은 언제 도입되었을까? 7일 주일은 칼데아 사람들이 가장 먼저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사람들이 기록한 창세기가 그 사실을 보여 준다. 7일주일은 기원전 1세기경에는 이미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곧 그리스와 알렉산드리아에도 도입되었다. 중앙 유럽에 도입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려서 고트족은 4세기경에, 게르만족은 5세기경에나 사용하기 시작한다. 한편 5일 주일과 7일 주일 외에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10일 주일(순, 旬, decade)이, 또 중앙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20일 주일과 30일 주일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등과 같은 요일의 이름은 어디에서 왔을까? 요일 이름은 옛 사람들이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던 별들의 이름에서 왔다. 왜 이렇게 요일의 순서가 정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별에서 따온 요일 이름은 기원전 1세기경에는 로마에서 이미 일반적이었다. 초대 교회에서는 별의 이름을 딴 요일 이름이 이교도적이라고 생각해서 이 방식에 반대하였으나, 이미 일반화되어 있는 현실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교회의 이러한 시도는 문화권에 따라 약간의 성과를 보이기도 하였다. 즉 독일어에서 '토성(Saturn)의 날'과 '수성(Merkur)의 날'은 별의 이름이 빠지고 각각 '일요일 전날 밤 (Sonnabend)'과 '일주일의 가운데 날 (Mittwoch)'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또 유대인들은 토성의 날을 '사바트(Sabbat.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는 날)', 즉 '안식일'이라고 바꿔 부르게 되었다. 성서는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는 쉬었으니, 인간들도 이날에는 쉬라고 가르치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 가르침을 율법으로 삼아 철저하게 지켰다. 그들에게 이날은 '사바트'로서, 우리의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에 해당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에 쉬게 되었을까? 흔히 예수가 부활한 날이 일요일이므로 이날을 '주일(主日)'로 기념하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us, 재위 306-337)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부터는 매주 일요일이 국가가 정한 휴일이 되었다. 한편 이슬람교도들은 금요일을 휴일로 삼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마호메트(Mahomet, 5702-632)가 금요일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양은 우리에게 빛과 온기를 선사한다. 반면에 1년의 길이는 너무 길어서 정확히 재기가 어렵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태양 이외의 다른 시기가 반드시 필요했다. 태양이란 측시기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두 번째 크로노미터는 바로 달이다. 달은 비교적 긴 시간 간격을 우리에게 쉽게 알려 준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달 (그믐달)로부터 초승달을 거쳐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다시 그믐달로 변하는 전체 과정에 따라 정한 한 달을 우리는 삭망월 (朔望月, synodical month)이라고 한다. 모든 고대 문화권에서는 달의 모양 변화에 따라 달력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달은 태양과는 달리 눈에 쉽게 보이고 그 변화도 명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저위도 지방에 살고 있던 민족들에게는 태양에 의한 계절 변화가 그리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바빌로니아에서는 농사에 편리한 태양력이 있었음에도 통치와 종교상의 이유로 태음력을 선호하였다. 농사를 주관하는 신 바알(Baal)의 상징이 달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더 큰 이유는 태음력을 따를 경우 왕은 세금을, 제사장들은 제물을 더 많이 거둬들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 봄이 오는가 하는 문제는 인류에게 대단히 중요한 현안이었다. 특히 4계절이 뚜렷한 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언제 농사를 지어야 하고 언제 물난리를 피해야 하며 또 언제부터 겨울 준비를 해야 할지 알고 싶었다. 그러므로 왜 태양력보다 태음력이 더 많은 문명권에서 사용되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인류 문명과 달력은 기후적으로 유리한 지역, 즉 추운겨울이 없는 지역에서 기원하였다. 이러한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은 달이 몇 번이나 바뀌어야 한 해가 되는지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개월 수로부터 '해'의 수를 셀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런 추측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해 볼 수도 있다. 성서의 기록으로부터 추리를 시작해 보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시편 90장 10절, 표준새 번역). 이에 따라 성서에 기록된 인물들의 실제 나이는 약 75세라고 가정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1달 = 1년으로 가정하면, 선사시대에 나이는 '달'의 수와 같았다. 즉 처음에는 1달 = 1살인 셈이었다. 창세기 5장에 나타난 인류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아담(930세) 셋(920세) 에노스(905세) 게난(910세) 마할랄렐(910세) 야렛(962세) 에녹(365세) 므두셀라(969세) 라멕(777세) 노아(950세) 중 가장 오래 산 사람은 노아의 할아버지인 므두셀라로서 969세이다. 이제 그의 나이를 다시 계산해 보자. 요즘 계산으로 1달은29.53일이며 1년은 365.24일이다. 따라서 969살×29.53일=28,614.57일. 28,614.57일 365.24일=78.39년. 그러면 므두셀라는 약 79년을 산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인류가 12달이 1년인 것을 알고 사용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는 종족 의식과 함께 숫자에 대한 부족한 지식이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였다.

5달= 1년이라 가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은 한 손의 손가락 수가 5개이고 사람들이 처음에는 손가락을 가지고 계산했을 것이라는 점에 근거한다. 창세기에서는 노아의 후손들로부터 야곱에 이르는 시기에 이 계산법이 사용되었다고 추정한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세상을 떠났다(창세기 25장 7절). 아브라함의 나이를 이 방법으로 다시 계산해 보면 175×51272.91로서 약 73세에 해당하며, 그의 아들 이삭(180세)의 실제 나이는 약 75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단계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6달 = 1년이라는 체계이다. 창세기는 25장부터 끝장인 50장까지 야곱과 요셉을 비롯한 그 아들들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그즈음에 사람들이 춘분과 추분, 그리고 하지와 동지를 인식함으로써 6달이라는 새로운 리듬을 도입하였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렇게 가정하면 창세기에 기록된 야곱의 나이 147세 (창세기 47장 28절)와 그 아들 요셉의 나이 110세(창세기 50장 26절)는 각각 약 74세와 55세라고 계산할 수 있다. 10달을 1년이라고 셈하는 것은 양손을 사용한 10진법이 널리 퍼진 다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계산법은 뒤에서 살펴볼 로마의 달력에서도 나타난다. 이집트 문명은 12달=1년의 역법을 갖고 있었다. 히브리인들의 이집트 탈출을 인도한 모세는 자신이 이집트에서 태어났던 만큼이 방식을 잘 알고 있었다. 이때부터, 즉 출애굽기부터 성서에 기록된 나이는 오늘날 우리가 세는 나이와 같아진다. 모세는 120살을 살았다(신명기 34장 7절).

 

1년 길이는 어떻게 잴까?

그러면 옛날 사람들은 1년의 길이를 어떻게 재었을까? 이를 위해 고대인들이 사용한 여러 가지 방법들 중 가장 쉽고 정확한 방법은 막대기(노몬(gnomon)이라고 부르는 막대기))를 이용해 해의 그림자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수메르와 바빌로니아에서 기원한 이 방법은 기원전 8세기경에 이르러 이집트의 제관들이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재위 BC 27-AD 14)는 그 장치를 로마에 설치하여 시계로 삼기도 하였다. 지금의 영국 땅에 살던 브리튼 사람들은 해가 가장 높이 솟는 하지점과 가장 낮게 뜨는 동지점을 알기 위하여 커다란 돌을 쌓았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스톤헨지(stonehenge)이다. 스톤헨지에 못지않게 인상적인 측정 장치로 오벨리스크(Obelisk)를 들 수 있다. 오벨리스크는 원래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 숭배의 상징으로 세우던 기념비였는데,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이집트에서 오벨리스크를 가져다 로마 광장에 세워놓고 해시계로 사용하였다. 말하자면 하나의 장대한 노몬으로 쓰인 것이다.

 

1년의 길이

한편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1년이 365.25 일보다는 약간 짧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다른 문명권의 사람들보다 비교적 일찍 1년의 길이를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피라미드가 거대한 노몬의 역할을 하고 또 오랜 기간에 걸쳐 측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 히파르코스는 1년의 길이를 365일 5시간 55분 46초로 계산했는데, 이는 실제 회귀년과 불과 6분 26초의 오차밖에 없는 수치이다.

 

현대 달력의 기원

현대 달력이란 우리가 오늘날 쓰고 있는 달력이다.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또 신뢰하며 사용하고 있는 현대의 달력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조상은 역시 어수룩하기 짝이 없다. 다른 제도나 기구와 마찬가지로 달력도 전쟁과 무역을 통한 문화권 사이의 교류, 민중의 일상적인 요구, 그리고 정치 권력자들의 야심에 의한 무수한 개혁의 산물이다. 현대 달력의 이력을 한 발자국씩 되짚어 가다 보면 그 근원에 다 다르게 되어 있다.

 

고대 이집트 달력: 이집트인은 '년'을 나눌 때 매우 실용적인 방식을 취하였다. 일단 그들은 1년을 3계절로 보았다. 우리들과는 달리 1년을 4계절이 아닌 3계절로 구분한 데에는 그들이 처한 위도에 따른 기후 변화와 그에 따라 농업에 필요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집트인들의 계절은 다음과 같았다.

첫 번째 계절 = 범람 (氾濫, Echet): 7월~10월)

두 번째 계절= 파종(播種 또는 싹이 틈, Projet) : 11월~3월

세 번째 계절 = 추수(秋收 또는 가뭄, Somm): 3월~6월

이 세 계절을 각각 4조각으로 나누니, 오늘날 우리가 보통 한 달이라고 하는 30일이 들어 있는 12개의 조각이 생겨났다.

 

로마 달력: 호메로스(Homeros, BC 800?-BC 750)가 서사시 ‘일리아스(Ilias)’와 ‘오디세이아(Odysseia)’에 기록한 대로, 기원전 13세기에 그리스가 작 은 도시 트로이를 상대로 벌인 트로이 전쟁 후 전쟁에 진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와 자손이 사직(社稷)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새로운 땅에 트로이를 재건하였는데 그 도시가 알바롱가(Alba Longa)이며 이곳이 바로 지금의 로마이다. 이들 후손 중에는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가 태어났는데 이중에 로물루스가 왕위를 갖게 된다. 로물루스는 바티칸 언덕에 수도를 만들고 자기 이름을 따서 로마라 하였으며 이렇게 하여 로마력 제1년이 시작된다. 그 후 700년, 바로(Varro, BC 116-27)라는 로마인이 기준을 새로 정하였으며 로마가 건설된 해를 로마력 제1년(1a.u.c)라고 정하였다. 이와 같이 햇수를 세는 방법을 일컬어 '바로 시대 (Varroinsche Ära)라고 한다. 고대 로마 달력에서 1년 10개월의 날수를 모두 세어 보면 놀랍게도 304일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달의 운행으로도 또 태양의 운행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는 숫자이다. 로마 인들은 기원전 700년경 누마 폼필리우스(Numa Pompilius) 왕 때에 이르러 야누아리우스(Januarius, 11월)와 페브루아리우스(Februarius, 12월)를 추가하고 다시 월의 날짜를 재분배하여 1년을 355일로 정한 누마 달력을 만들었는데, 이로써 유럽에 순수한 태음력이 도입되었다.

율리우스 달력: BC 46년에 이집트 원정으로 부터 귀환한 카이사르는 혼란스러운 달력을 뜯어 고치려 했다. BC45년 11월 1일(kalendae Januarius)를 율리우스 달력의 기원으로 삼았다. 달력의 변혁은 첫째, 1년은 365.25일, 둘째, 평년을 365일로 하되 4년마다 하루를 추가하는 366일이 되는 윤년을 둔다. 카이사르는 11월이었던 야누아리우스를 1월로 선포하였고 1일이 추가되는 윤년에 2월인 페브루아리우스에 넣기로 하였다. 셋째, 355일에서 356일로 늘어 난 10일을 다시 배치하여 30일 또는 31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지금도 사용하는 주먹을 사용하는 달 계산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추가적 개혁은 새해 시작을 마르티우스에서 야누아리우스로 옮긴 것이다.(이로서 새해시작이 봄인 3월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추운 1월부터 시작된 이유가 되었고 이렇게 한 이유로 새해 첫날에 집정관 취임식을 해야 하는데 일찍 하고 싶어 새해 시작을 바꾸었다고 한다) 달력을 개혁하여 생활의 리듬을 간단히 만들어 준 카이사르의 노력은 그에 대한 시민들의 존경심으로 나타났다. 로마의 원로원은 그의 노고를 치하하여 7월이 된 퀸틸리스를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율리우스(julius)'로 개칭하였다.

 

그레고리우스 달력: 많은 천문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이 예수의 탄생 시점이란 문제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17세기 요하네스 케플러의 설명이다. 그는 성서에서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이란 바로 목성과 토성이 854년마다 근접하여 밝게 빛난 현상일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매번 3회씩 나타난다. 케플러는 아주 운이 좋았다. 그는 이 현상을 직접 관찰했을 뿐만 아니라, 이 대상합(大相合, Große Konjuntion)의 근접점에서 초신성"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케플러는 예수의 탄생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알려 주는 데에는 목성과 토성의 근접 같은 대단히 희귀한 현상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더욱이 이 현상은 물고기자리 비로 위에서 벌어지는데 물고기자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케플러 해석은 비록 성경의 기술과 일치하지 않지만 가장 유력하게 받아 들여지고 있다. 예수의 탄생 연대 계산은 틀렸다는 역사적 증거는 분명하다. 아우구스투스가 인구조사를 명한 것은 기원전 8년이고 등록은 이듬해인 기원전 7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예수는 서기 1년이 아니라 기원전 7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원래 자연수는 -2, -1, 0, 1, 2 식이다. BC 1년 0년 AD 1년 식으로 되어야 하는데 0년이 없다. 0년이 없이 1년으로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천문학자나 수학자에겐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시에는 ‘0’이란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디오니시우스는 자신이 만든 새로운 연호를 '아노 도미니 모스트리 예수 크리스티 (anno domini mostri Jesu Christi)',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해'라고 이름 지었다. 서기(AD, anno domini) 연호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 연호는 약 1000년경부터 유럽 전역에서 사용되었으며 교황으로부터 1431 년 공식 승인받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새해의 첫날은 언제부터 시작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새해 첫날은 당연히 1월1일이 되어야 하는데 지역마다 다 달랐던 것을 1691년 교황 이노센트 12세(Innocentius XII)가 1월 1일을 새해로 인정하였다. 그레고리우스 달력은 부활절 계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부활절은 크리스마스와 달리 한날을 정할 수 없었다. 달의 운행에 따라 오락가락하였다. 초대 교회는 춘분을 부활절로 잡았다. 독일어로 부활절 오스테른(Ostern)은 ‘오스타라’라는 신으로부터 유래 한 것이고 16세기까지 프랑스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3월25일과 27일로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재생의 상징으로 달걀을 주고받는 풍습은 카이사르 시대부터 있었다. 부활절의 계산은 여러 방법으로 계산되어 왔고 각 지역마다 달랐다. 16세기에 들어서야 로마 교황은 디오니시우스에 따른 부활절과 실제 천문학적인 현상과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작업에 나서게 된다. 그레고리우스 13세는 1572년 교황에 즉위하였다. 그의 즉위와 함께 달력 개혁은 가속도를 얻게 되었다. 1580년 9월 달력위원회 소속 이탈리아의 의사이자 천문학자 알로이시우스 릴리우스(Aloysius Lilius, 1510-?) 가 1576년에 제안한 개혁안을 거의 그대로 채택한 보고서를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승인하였고, 1582년 2월 24일 교황 칙서 「인터 그라비시마스 에로레스(Inter gravissimas errores)」를 발표하였다. 이 교황 칙서는 다음과 같은 달력 개혁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1. 계절과 달력을 다시 일치시키기 위하여 (춘분이 다시 3월 21일이 될 수 있도록) 10일을 없앤다. 1582년 10월 4일 다음 날은 10월 15일이다 (10월 14일이 되면 9일밖에 없어지지 않는다).

2. 개선된 윤년의 규칙을 도입한다. 율리우스 달력에서 시행된4년마다의 윤년은 그대로 둔다. 하지만 100년으로 나누어지는 해(1600년, 1700년, 1800년)에는 윤년이 없다. 그러나 400으로 나누어지는 해에는 다시 윤년을 둔다. 따라서 1700년, 1800년, 1900년에는 윤년이 없으나, 1600년과 2000년에는 윤년이 있다. 이로써 달력과 지구 공전과의 오차 발생은 지연될 수 있다.

3. 요일을 중단없이 연속해서 진행한다. 따라서 1582년 10월 4일 목요일 다음 날은 10월 15일 금요일이 된다.

4. 부활절 계산법이 바뀐다. 이것이 이 개혁의 핵심이다. '춘분 후 만월 다음의 일요일'이라는 니케아 종교회의의 결정은 그대로 유효하다. 하지만 계산법은 훨씬 정교해져서 부활절은 항상 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의 보름달 후 첫 번째 일요일이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에서는 여전히 율리우스 달력에 오류가 있음에도 그레고리우스 달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새로운 달력은 보급이 늦어지다가 1900년대 후반부터 모든 나라에서 쓰였다. 이집트는 1875년, 중국은 1949년에 받아 들였다.

 

혁명가들은 모든 것을 바꾸고 싶어 한다. 달력도 예외일 순 없다. 프랑스 혁명 달력은 만들어 질 때부터 실패의 요소를 갖고 있었다. 10진법을 사용하여 1주일을 10일로 한 것이다. 당연히 쉬는 날이 줄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밖에도 문제점이 많았다). 이탈리아 파쇼달력, 소비에트 달력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레고리우스 달력이 기본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달력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그칠 수 없었다. 우리나라 달력은 잘 아는 듯 모르는 듯하다. 우리의 전통 달력이 음력이라는 사실은 대개 알고 있다. 또 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칠정산(七政算)’인가 하는 것이 달력이었다. 나아가 우리의 전통적인 음력 달력은 현대의 사회생활에서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는 만큼 서양의 양력에 비해 비과학적인 달력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우리 가정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자. 우리가 쓰는 달력에는 서양 사람들의 집에 걸려 있는 달력과는 다르게 양력과 함께 음력도 표시되어 있고, 또 음력에 따르는 것도 아닌 '절기'라는 주기도 표시되어 있다. 또 '을사일(乙巳'이니 '병오일(丙午日)이니 하는 간지(干支)에 따른 날짜가 표시되어 있는 종류도 있다. 실제로 우리의 가정생활에서는 제사나 생일 같은 크고 작은 행사를 여전히 음력을 기준으로 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음력 날짜나 절기를 그저 달력에 나와 있는 대로 따를 뿐이지 그 의미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

 

세종대왕은 새로운 조선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한글뿐만 아니라 천문학에도 노력을 하였다. 이런 과학적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우리나라 역법의 완성체라고 할 수 있는 ‘칠정산 내(內)와 』과 칠정산 외(外편)’이다. ‘칠정산 내편’의 완성으로 천문 계산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일식 등 천문 현상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역법에 '칠정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칠정(七政)’은 글자 그대로 '일곱 가지 정치'가 아니라 해와 달, 그리고 화성,수성, 목성, 금성, 토성이라는 다섯 행성을 함께 아울러 칭한 것이다. 즉 오늘날의 일곱 요일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칠정산’이 편찬됨으로써 비로소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일식과 월식을 미리 계산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렇다고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하고 있던 일을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겨우 처음으로 하게 되었나 보다." 하는 식으로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 무수한 민족들 중에서 1442년에 이만한 수준의 천문학 계산을 할 수 있던 나라는 중국과 아랍 외에는 조선뿐이었기 때문이다. 즉 당시 우리 민족의 천문학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경우 ‘칠정산’에 해당하는 "일본인이 만든, 일본에 맞는 최초의 역법인 정향력(貞享曆)』은 우리보다 240년 늦은 1682년에야 등장한다. 이 역법을 만든 시부카와 하루미 (川海春海, 1639-1715)는 1643년 조선통신사로 왔던 박안기가 모종의 수학적 해법을 도와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정향력을 만들 수 있었다"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어서 조선의 ‘칠정산’이 일본의 ‘정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세종 이후 과학 기술 수준마저 급격히 쇠퇴하게 된 우리나라에서는 결국 중국력을 다시 사용하게 된다. 중국에서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그들이 서양 천문학에 따라 채택한 역법인 시헌력(時憲曆)이 우리의 달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헌력’은 대동법(大同法) 등의 제도 개혁을 추진하여 훗날 실학사상의 형성에 영향을 끼친 김육(金堉, 1580-1658)에 의해 효종 4년(1653년)에 도입되었다.

 

이상과 같이 시간의 정의와 근거 고대력, 로마 율리우스력 그레고리우스력 그리고 우리나라 역에 대하여 이 책에 있는 내용을 요약하였다. 이외에도 이 책은 중국, 마야 잉카, 유대, 아랍의 달력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끝으로 새로운 달력이 필요한 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 하고 있다. ‘국제 고정 달력 동맹’은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달력이 그레고리우스 달력이 갖고 있는 모든 단점을 해결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1922년 제네바 국제연맹에서 토의한 세계 달력 등이 있으나 여러 나라의 이해관계 등에 의해 채택되지 못하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세계 달력 협회는 세계 달력 주창자인 에리자베스 아켈리스에 의해 1930년 10월21일 창설되었다. 1931년10월에는 ‘달력 개혁에 대한 저널, Journal of Calendar Reform’ 잡지를 발행하고 현재도 ‘더 좋은 날과 더 좋은 세계를 위한 더 좋은 달력은 전쟁 때든지, 평회시든지 언제나 필요하다’라는 모토 하에 활동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현대 달력의 기본적인 문제는 어느 하루의 요일이 매번 변한다는 것이다. 그레고리우스 달력이 생길 때도 바뀌거나 중단이 없던 것이 바로 요일이기도 하다. 설사 우리가 요일이 고정된 새로운 달력을 만든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중단 없이 계속되어 온 요일을 그대로 이어받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달력을 개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누구나 다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것들이 바뀌는 데 매우 큰 두려움을 갖고 있으며 그 변화를 매우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또 많은 경우에 과거는 불안한 현재보다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달력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하루라는 시간의 절대적 길이는 점점 변하고 있고 이를 수정하기 위한 방법들에 의해 그날이 수년, 수천 년을 지난 그날인지가 사실 불분명하다. 현재의 일요일이 꼭 쉬어야 하는 그 때의 그날의 7의 배수로 된 날이라 할 수 있을까? 시간의 기준은 과학의 발전에 의해 또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지구인이 화성에 가면 시간이 달라질 것이다. 꼭 그날이어야 만 한다는 형식적 기준보다는 그날을 지정하게 된 동기나 역사적 배경 등 정신문화적인 면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은 달력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과 역사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 드립니다.

 

김종일 ㈜비앤에이치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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