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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성 성격장애와 극단적 나르시시즘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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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6월 05일 (수) 01:11:27 [조회수 :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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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가서 찍은 사진을 볼 때 누구의 얼굴을 제일 먼저 찾을까? 아마도 자기 자신의 얼굴일 것이다. 자식을 끔찍이 사랑하는 엄마라고 할지라도 아이의 얼굴보다 먼저 자신의 얼굴을 찾아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기애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이기적이라고 정죄할 수 없다. 

프로이드는 나르시시즘을 아동기에 거치는 발달단계의 하나로 보았다. 그는 아동기의 나르시시즘이 친밀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에 굉장히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반면 성인의 나르시시즘은 미성숙함을 의미하는 위험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은 프로이드와 조금 다른 입장이었다. 나르시시즘은 아동기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어서도 인간의 평생의 건강과 행복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나르시시즘은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의 성향이며 자신을 누구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싶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이다. 

분명 나르시시즘은 긍정적인 면과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우리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나르시시즘과 심각한 자기애성 성격장애의 어두운 면조차도 제대로 알고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고, 지금 내가 처해 있는 문제를 제대로 분석하고 원인을 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평범한 나르시시시즘은 어떤 것일까? 보통의 경우 10대 시절이 나르시시즘의 절정기이다, 이 시기에는 자기가 느끼는 괴로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10대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좋아했던 이성에게 거절당했을 때 가졌던 속상함과 실망감, 그 괴로움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는가? 청소년기에 절정에 이르는 이 나르시시즘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사춘기가 지나면 나르시시즘은 급격하게 감소한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하는 어른스러움을 갖추게 되기 때문이다. 그걸 철이 들었다고 한다.

청소년기와 성인기 초반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자신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이 있다. 20대 초반 나의 꿈과 비전을 적어 놓은 노트를 50대가 된 지금에 와서 들여다보면 이룬 것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내가 세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과 자신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30대에 접어들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자신이 과거에 생각했던 자신보다 그리 대단하거나 멋지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삶의 현실 앞에 좌절을 경험하게 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인정하게 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이해를 위해서 나르시시즘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크레이그 맬킨박사가 쓴 “나르시시즘 다시 생각하기”에는 그가 개발한 나르시시즘 스펙트럼 등급(NSS)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사람의 태도와 정서와 성격이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흐릿한 것처럼, 나르시시즘은 명학하게 ‘있다 없다’로 나눌 수 없으며 1-10까지 이어진 선의 ‘스펙트럼’형태로서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일직선상에 숫자 1을 왼쪽 끝에 두고 가장 오른쪽 끝에 숫자 10이 있다. 숫자 10을 극단적인 나르시시시즘이라고 봤을 때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숫자 0은 극단적인 에코이즘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에코이즘은 나르시시즘과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을 말한다. 

에코는 우리에게 보통 ‘메아리’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에코이스트들은 메아리처럼 살아간다. 자기 자신만의 어떤 것을 숨기기 위해 애쓰고 최대한 다른 사람들 속에서, 사회 속에서 묻어가기 위해 애쓴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피해 정도가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이 신경 쓰는 것조차 두려워해 많은 일들을 하기 두려워한다. 자신의 정당한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고, 자신의 욕구를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에 삶의 의욕이 없으며, 스스로를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감 없이 외롭게 지내기도 한다. 의욕이 없는데다가 끊임없이 남 눈치를 보는데 에너지를 쓰기 때문에 삶이 힘들다. 에코이스트들은 나르시시트의 먹잇감, 정서적 호구가 된다.

가장 왼쪽에 있는 숫자 0에 가까울수록 나르시시스트와 반대의 성향을 가진 에코이스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오른편에 있는 숫자 10에 가까워질수록 나르시시스트적 성향이 강해진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보통의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소유한 사람들은 0에서 10 사이의 중간인 4,5,6 정도의 등급에 해당된다. 이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는 사람들이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스펙트럼 맨 오른쪽, 9, 10의 등급에 위치하면서 그 자리를 잘 벗어나지 않고 계속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관심에 중독되어 있고, 사람들이 자신의 특별함을 알아주지 않으면 더 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중독자가 그렇듯이 원하는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을 도구처럼 이용하고는 쓸모없어지면 버리기도 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특별한 대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 눈에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감각이 거의 없다.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이를 악물고 싸우지만 타인은 그저 자신의 거울에 불과하다. 

또한 이들은 자신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하지만 가슴에 품은 위대한 계획이 좌절될 때마다 자존감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우울증과 불안증상이 심해진다. 조금 전까지 자기가 뭔가 위대한 일을 하리라는 망상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애처로운 신세타령을 늘어 놓기도 한다. 때때로 자신에 대해 거창하게 말하며, 교만하게 굴기도 하지만, 그들은 낮은 자존감의 소유자요, 연약한 내면의 소유자이다. 속은 텅텅 비어 있으면서 겉모습만 화려하게 허세를 부리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는 스스로가 느끼는 무력감과 비참함을 타인이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고 몸부림치는 참 함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바로 이 수준까지 이룬 사람들이 자기애성 성격장애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이들은 치료하기가 매우 어렵다.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질병으로까지 진행된 중독과 똑같이 생각해야 한다. 회복으로 가는 길은 정말 험난하고 당사자가 문제를 부인하고 도움을 거절하면 치료가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자기애성 성격장애자가 자신의 성격적 문제를 문제로 여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작 가해자인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의 문제를 전혀 모르고 있다. 오히려 그들의 학대와 가스라이팅으로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인 에코이스트들이 오히려 치료를 하러 정신과의사를 찾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 나르시시스트들을 알아보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르시시스트는 피상적 관계에서는 정체를 알기 어렵다. 그리고 나르시시스트를 상대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나르시시즘과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지식을 갖는 것이 그들의 학대에서 자유롭게 되는 길이다. 대부분 피해자들은 자신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임석한목사(양정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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