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책
‘지금까지의 나’에서 ‘지금부터의 나’로
김윤형  |  청년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4년 05월 31일 (금) 00:54:00
최종편집 : 2024년 05월 31일 (금) 00:55:42 [조회수 : 49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디 에센셜: 김연수>, 김연수, 문학동네, 2024)

‘당신이 딱 하루 다른 사람으로 살 수 있다면 누가 되고 싶나요?’ 지난주, 현재 내가 다니고 있는 독일어 학원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백석’이라 대답했다. 당연히 그 누구도 백석을 알지 못했다. 백석이 누구냐고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그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입니다’라고 짧게 대답했다.

그날 수업이 끝나기 전에 선생님은 “어떤 주제라도 상관없으니 소개하고 싶은 주제가 있는 학생은 내일 발표 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백석의 시와 삶을 알려주겠다고 다짐했고, 집에 와서 내가 알고 있는 백석의 삶에 대해서 적기 시작했다.

 

‘백석은 암울한 시대였던 일제 강점기에 태어났지만 그의 젊은 시절은 행복했다. 잘생기고 깔끔했던 백석은 ‘모던보이’라 불리며 많은 인기를 누렸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시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행복한 시기는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그의 삶은 곧 좌절과 절망의 연속으로 변했다. 그는 친구와 통영에 갔을 때 만난 한 여성에게 첫눈에 반했다. 이후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 심지어 그때 함께 통영에 갔던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백석 몰래 그 여성과 결혼한다. 백석은 사랑의 실패와 친구의 배신을 동시에 경험했다.

그 이후에는 한국 전쟁과 나라의 분단을 경험했다. 분단 이후에는 가족과 친척이 북한에 살고 있었기에, 또 고향이 북쪽이었기에 북한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 북한 아래서 그는 오직 수령과 당을 위한 찬양시만 쓸 수 있었다. 비록 찬양시를 몇 개 쓰긴 했지만, 백석은 그러한 시들을 지속적으로 쓰지 않았다. 결국 그는 당에서 추방 명령을 받아 삼수라는 시골로 추방당한 뒤 다시는 시를 발표하지 못했다. 그리고 83세가 되던 1996년에 사망했다.’

백석의 삶을 간략하게 정리한 뒤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무런 희망도 남아 있지 않고 실패와 좌절만 반복되는 세계 속에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최소한의 희망조차 없는 세계 속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백석은 한 움큼의 희망조차 남아 있지 않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계속 살아갈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은 뒤로 하고 머리를 식힐 겸 김연수 작가의 신작 󰡔디 에센셜:김연수󰡕을 읽었다. 이 책은 그동안 김연수 작가가 발표한 중단편 소설 몇 개와 북한으로 넘어간 뒤의 백석의 삶을 상상해서 만든 소설인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그리고 시와 산문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사실 김연수 작가의 팬으로써 여기에 수록된 소설들은 이미 다 읽어봤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여기에 새로 수록된 산문 “실패한 이들이 얻게 되는 것, 다정함” 때문이었다. 최근 들어 ‘다정함’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 글에서 다정함에 대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이 산문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패한 이들이 얻게 되는 것, 다정함”은 백석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백석의 이야기로 끝난다. 때마침 백석에 대한 글을 쓰며 그의 삶을 생각하던 순간에 이런 글을 만나게 되다니! 더욱 놀라운 건 이 글의 마지막이 다음과 같이 끝난다는 사실이다.

 

“글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던 백석은 삼수군으로 내려와 농장원으로 일했지만 농사일을 제대로 못해 마을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하루에 한 사람을 열 번 만나도 매번 가슴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지나가곤 할 정도로 성품이 겸손해 삼수군 사람들 중 백석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p. 468, “실패한 이들이 얻게 되는 것, 다정함”)

 

나는 늘 백석의 말년이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우울과 무력감에 빠져 혼자서 외롭게 살았을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그는 언제나 다정하고 겸손하게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다. 이 글은 내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동시에 더 큰 의문을 낳았다. 내가 가진 것이 많고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갈 때는 타인에게 친절할 수도 있고 다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깊은 어둠 속에 빠져 있을 때, 가진 것도 없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다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백석은 다정함을 잃지 않았는가?

이 이해할 수 없는 다정함은 󰡔일곱 해의 마지막󰡕을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화전민들이 개간하기 위해 피우는 불이 땅속 뿌리로 타들어가는 지불이라면, 그래서 석 달 열흘씩 하얀 연기를 뿜어내는 보이지 않는 불이라면, 천불은 저절로 생겨나 순식간에 숲 전체를 활활 태우며 나무들을 서 있는 숯으로 만든다고 했다. 그 불을 보고 두메의 화전민들은 생을 향한 어떤 뜨거움을, 어떤 느꺼움을 느낀다고 했다. 불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살길이 열리는 것이기에, 천불을 바라보며 흥분한 청년 옆에 서 있자니 기행의 가슴도 은은하게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그때 골짜기로 사이렌의 고고성이 울려퍼지며 잠든 마을이 깨어났다. 그때까지도 기행은 어디에서도 오지 않고,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는 천불에 휩싸여 선 채로 타오르는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p.409-410, 󰡔일곱 해의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을 읽었을 때, 이 장면은 얼마 전 내가 경험했던 ‘부활’과 동일하단 걸 알았다.

지난 4월, 내가 현재 다니고 있는 한인교회 청년부에서 지난달 묵상 주제로 ‘나에게 있어 부활이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어떤 답도 얻지 못하던 중, 예기치 않게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대학 도서관에서 혼자 독일어 공부를 하고 있을 때, 문득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다가 예수님과 아나니아를 만나고 완전히 새로워진 그 장면이 떠올랐다. 왜 그 부분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지만, 사도행전 9장을 천천히 곱씹었다.

잠시 후,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뜬 뒤에 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부활이란 이전까지의 자신의 삶과 세계의 종말임과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삶과 세계의 시작이라는 것을. 아무것도 할 수도, 볼 수도 없던 어둠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한 줄기의 빛이라는 사실을. 그 빛을 본 ‘나’는 더 이상 이전처럼 살아갈 수 없고 과거, 현재, 미래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나’뿐만 아니라 타인과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마저도 새로워진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김연수 작가는 백석도 일종의 ‘부활’을 경험했기에 그가 말년까지도 다정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랬기에 󰡔일곱 해의 마지막󰡕의 마지막 장면을 위와 같이 끝맺은 것이리라. 그리고 그는 ‘부활’을 자신만의 언어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까지의 나’가 ‘지금부터의 나’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인간의 영적 가능성이 열린다. 모든 예술과 종교가 보여주는 길이 여기에 놓인다.”(p. 479, “내가 좋아하는 것들”)

생각해보면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지금까지의 나’에서 ‘지금부터의 나’로 변했던 인물들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신비이자 힘은 ‘지금까지의 나’에서 ‘지금부터의 나’로 바뀐다는 점에, 다시 말해 ‘부활’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까.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과 요나가 그러하였듯이

그리고 또 예수님과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그러하였듯이.

 

김윤형 (청년)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