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책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조주희  |  색동교회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4년 05월 30일 (목) 03:27:54
최종편집 : 2024년 05월 30일 (목) 03:32:01 [조회수 : 337]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집이라는 모험>, 신순화 지음, 북하우스, 2022)

“글쎄, 속달동에 마당 있는 집이 전세로 나왔더라고... 곧 그 곳으로 이사하기로 했어!” “우와, 드디어... 찾던 곳이 나타났네요, 넘 잘 되었어요!”

친한 동네 이웃인 순화 언니로부터 감격과 설레임 가득한 이사 결정 이야기를 듣고 축하해주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나처럼 긍정적인 반응은 극히 적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여러 불편함들을 어떻게 하겠냐고, 걱정하며 말렸다고 한다. 

이사 간 첫날 저녁이던가... 연락이 왔다. “얘, 지난번에 00시장에서 이불 팔던 곳 봤다고 했잖아. 거기가 어디야? 여기 너무 추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이 추운 집이었다. 그렇게 언니네 식구들은 그 집에서의 삶이, 모험이 시작된 것이다.

  ‘마당 있는 집에서 살기’는 많은 사람이 꿈꿔보는 것이긴 하지만 아무나 실현해보지는 못하는 일이다. 먼저는 도시의 높은 땅값, 집값으로 인해 그 여건이 만들어지기가 쉽지 않고 운 좋게 그런 여건이 되더라도 꿈꿔오던 마당의 삶은 그에 못지않은 불편한 생활들이 줄줄이 따라오니 정작 살기로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이 책은 넓은 마당과 200평 밭을 가진 ‘삼락재’라는 이름을 가진 집을 만나 세 아이들과 함께 12년 넘게 살아온 이야기들을 속속들이 때론 재미나게 때론 잔잔한 감동으로 풀어낸다.

  아파트를 벗어나 땅과 가까이 하는 것은 온갖 생명과 가까이 하는 것이다. 그 중 가장 자주 출현하는 벌레... 비록 저자는 벌레에게 마음을 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지만 아이들은 쉽게 익숙해졌고 도로에 나와 있는 지렁이를 만나면 손으로 집어서 풀숲에 놓아주는 생명 감수성을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는 저자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꼽등이가 나타나더라도 놀라지 않고 말을 거는 경지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에 배움이 있다.

“어느 여름밤 늦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데 가까이서 여치가 울었다. 온 존재로 울어대는 아름다운 소리였다. … 같이 밤을 새워주는 이가 있구나. 마음이 꽉 차올랐다. 같이 있어주는 것만큼 고마운 게 있을까. 여치 소리를 듣는 내내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마리 개와 함께 남편이 불쑥 가져와 키우게 된 닭들, 산책 중에 만나 새로운 가족이 된 고양이 물루 뿐 아니라 온갖 새들, 가끔씩 출현하여 깜짝 놀라게 하는 뱀 등, 울타리가 없는 마당에는 쉴새없이 생명이 드나들고 때로는 그 생명의 죽음을 애도하며 온 가족의 마음을 쏟게 한다. 흙과 가까운 삶은 더욱 가까이 생명을 함께하고 죽음을 배워간다.

  마당 넓은 이층 벽돌집... 밖에서 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불편함을 말하자면 끝이 없다. 지독하게 따가운 밭모기, 줄무늬 타이거 모기뿐만 아니라 수시로 집을 지어 119에 신고하여 제거하기도 하던 말벌의 위험이 있고,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솟아나는 풀들은 잠시라도 몸을 움직여 없애주지 않으면 밀림을 만들어 놓는다. 때로는 길냥이가 물어다 놓는 죽은 쥐까지 처리해야 하고, 겨울에는 멋들어진 통창 틈으로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와 아무리 난방을 틀어도 이십도 아래에서 오르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통하여 많은 것들을 배우고 알게 되고 또 누리게 된다. 추워서 이용하지 않는 이층은 가끔씩 손님들을 초대하여 함께 누리는 공간으로 더할 나위가 없다.

  “돌아보면 이 집에서 누린 특별한 행복은 모두 내가 나열한 불편함 때문에 가능했다. 경사진 언덕길이 있어 겨울마다 아이들과 눈썰매를 탔고 넓은 마당이 있어 매년 모닥불을 피워 사람들을 불렀다. 우리 식구가 쓰지 않는 이층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아이들을 불러 재울 수 있었을까. 넓은 밭 덕분에 농사지은 감자며 고구마를 친정 부모님과 넉넉히 나눠 먹었고 그 밭에서 꿩과 고라니와 두꺼비와 온갖 동물을 만날 수 있었다. 일거리가 넘치는 집이라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청소년이 되도록 집안일을 같이 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모인 우리와 친밀하고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갔다. 이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낡고 큰 집은 수시로 어딘가 문제가 생겼고 그 덕분에 늘 남편에게만 의지하던 나도 급할 땐 삽이나 망치를 들고 달려드는 만능 일꾼이 되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불평할 수 없다. 이런 집이어서 이렇게 살 수 있었다. 어떤 집을 얻는다 해도 이 집에서의 경험과 추억은 우리 가족의 가장 소중한 보물일 것이다.‘

  울타리가 없는 집은 택배 등 타인의 노동이 그대로 보이게 하고 또 집을 오가는 사람, 사람들이 보이게 한다. 이웃들과의 관계도 더욱 직접적이다. 아흔을 넘은 동네 효동 할아버지와의 만남과 길 위의 이야기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지만, 때로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이웃의 불법 소각을 신고하고 주위의 쓰레기 무단 투기나 불법 주차를 신고하느라 조금은 불편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살아보니 시골살이는 아이들이 어릴 때가 좋은 것 같다. 자연에서 몸과 마음을 마음껏 놀리며 충분히 누리면 어느 곳을 가든 중심을 잃지 않고 단단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시골 외갓집에서 보낸 어린 시절 몇 년이 내게 수십 년을 버틸 뿌리가 되어준 것처럼.’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해야 할 집이긴 하지만 그동안 함께 했던 세월 속의 경험과 모험은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남아있을 것이고 가끔씩 주인 내외의 넉넉한 초대를 받아 방문했던 친구들, 이웃들의 추억 속에 함께 할 것이다. 그 집에서 사는 동안은 모험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조주희 (회사원/색동교회 교인)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8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