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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장미꽃 위에 이슬
조진호  |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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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5월 25일 (토) 00:10:09
최종편집 : 2024년 05월 25일 (토) 03:44:14 [조회수 :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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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오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하지요. 사월을 지나 보내며 황사나 미세먼지도 줄고 그 어느 때보다 파란 하늘이 펼쳐집니다. 온화한 날씨에 바람도 부드럽게 일렁입니다.

계절마다 그에 어울리는 옷이 있다면 계절의 여왕 오월의 옷은 장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꽃의 여왕이라 할 수 있는 장미가 피는 계절이기에 오월이 계절의 여왕에 등극한 것은 아닐까 모르겠습니다. 벨벳과도 같은 질감까지 품은 그 매혹적인 색이며, 우아한 모습과 쉬이 곁을 내어주지 않는 도도함을 상징하는 가시까지...장미는 가히 꽃의 여왕이라 불릴만합니다.  

며칠 전 새벽이었습니다.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기 전, 오늘는 어떤 찬송가를 부를까 고민하다가 교회 뜰에 가득 핀 장미를 보고는 찬송가 442장을 떠올렸습니다. 특히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있는 그때에’라는 가사를 생각하니 이 찬송은 새벽 시간에 부를 때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큰 기대를 안고 예배실에 들어섰습니다. 

강단에 올라 즐거운 마음으로 찬양을 시작합니다. 찬양 후에 성도들에게 이 찬송가의 가사와 교회 뜰에 핀 장미꽃 이야기를 연결해 들려줄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들떠옵니다. 때마다 이렇게 귀한 이야깃거리를 주심에 감사하며 찬송을 부릅니다. 하지만 갑작스레 이 찬송 속에 숨어 있던 어떤 가사가 눈에 들어왔고 저는 더이상 찬송을 부르지 못하고 울먹일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있는 그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과연 어떤 가사 때문이었기에 사뭇 들뜬 마음으로 찬송을 시작했던 제가 1절을 다 부르기도 전에 눈물을 참다가 노래를 멈추고 닦아 내기에 급급하게 된 것일까요? 

이 찬송시의 원제목은 ‘in the Garden’입니다. ‘Garden’을 번역 할 때 ‘정원’ 보다는 ‘동산’이 더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겟세마네 동산을 즐겨 찾으시고 그곳에서 하나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셨던 주님은 또 다른 동산에서 바로 그 사랑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인격적인 만남을 이루어가십니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있는 그때'는 생기로 가득하고 가장 아름다운 하루의 첫 시간을 의미합니다. ‘I come to the garden alone’ 영어 원문의 가사 첫줄에는  'alone'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데 이는 주님과의 깊은 만남은 그분과 아름답고 정결한 고요함 가운데 단독자로서 동행할 때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문제의 가사는 후렴구에 있었습니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과연 이 중에서 어떤 가사가 저를 당황케 했던 것일까요? 죄송하지만, 사실은 우리말 가사가 아니라 영어 원문 가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한영 찬송가를 들고 다니는데 지금까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그 가사가 그날따라 제 눈에 들어온 것이었습니다.  

And He walks with me, and He talks with me,
And He tells me I am His own,
And the joy we share as we tarry there,
None other has ever known. 

먼저, 세련된 문장을 위해서 반복적인 사용을 자제해야 할 ‘And’가 이 후렴구에는 네 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른채 주님과의 깊고 아름다운 교제가 이어지고 또 이어지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walks with me’와 ‘talks with me’라는 라임도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1절 가사는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라고 노래합니다. ‘음성’이라는 단어 때문인지 주님의 목소리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음성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음성에 담긴 말의 내용이지요. 우리말로 번역된 찬송에는 ‘나를 친구 삼으셨네’로 되어 있지만, 원문 영어 가사에는 주님의 음성의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And He tells me I am His own’ 

이를 직접화법으로 바꾸면 “You are my own!”, “너는 내 것이라(사 43:1)”입니다. 이 가사를 보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 꽁꽁 숨겨 두었던 왠지 모를 설움 같은 것이 북받쳐 올라왔습니다. 목사 노릇을 하느라 매일 두터워지기만 했던 주님과의 피상적인 관계의 벽이 한순간에 녹아내려 버리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만큼은 나 한 사람을 향하고 있는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진정으로 들은 것이지요.

그제서야 마지막 후렴구의 의미를 진정 깨닫습니다. 주님은 그를 주로 고백하는 모두의 주님이시지만 나와 단둘이 있을 때에는 나만의 주님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And the joy we share as we tarry there,
None other has ever known. 

우리가 그곳에 함께 머물며 나눈 기쁨은
다른 이는 알 수 없다네

https://youtu.be/Xll9o8RKkis?si=cHu3sqhwKPdxw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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