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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벽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김민호  |  지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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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5월 23일 (목) 02:49:45
최종편집 : 2024년 05월 23일 (목) 22:40:06 [조회수 :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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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시대>, 팀 마샬, 이병철, 바다출판사, 2020)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유일한 진리이며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덜 떨어진 사람이라는 주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월함에 대한 그런 확신과 더불어 장벽은 빠르게 솟아오른다. 자원을 위한 경쟁을 끌어들인다면 장벽은 더 높이 솟아오른다.”(14)

  예술이 일상에 어떤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벽화마을이라는 별칭이 붙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끌게 된 것도 예술의 힘 덕분이다. 베를린의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는 독특한 예시다. 통일 후 무너지고 남은 잔해를 예술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 수 없다. 분쟁과 증오를 상징하는 장벽이 꽃이 피는 자리가 되었으니 말이다.

  팀 마샬은 인류의 현주소를 ‘장벽의 시대’라고 진단한다. 아니, 어느 때고 인간은 방벽을 세워왔다고 말해야 정확할 것이다. 자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명분에서, 군대가 창설되고, 장벽은 세워졌다. 선기능은 분명히 존재한다. 허나, ‘지구촌’이나 ‘세계화’가 낡은 단어가 되었을 정도로 충분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분리장벽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많은 이스라엘인은 장벽에 찬성하며, 장벽이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장벽이 세워지기 전 3년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저지른 여러 자살폭탄테러와 공격으로 수백 명의 이스라엘인이 살해당했다고 지적한다.”(112)

  미국만 봐도 그렇다. 자유, 해방, 평등이라는 기치는 더 이상 ‘미국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다.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는 이해하지만, 이주민들의 유입에 극도로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테러사건이 발생할까봐, 난민들에게 돌아갈 일자리와 사회적 혜택이 달갑지 않아서, 국경 보안 및 ‘머릿속의 장벽’들은 더 강화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이민법과 최고수준의 인종주의에 대해 서구 국가들을 비난하는 기사들은 흔하다. 다른 지역들도 반이민적이고, 폭력적이며, 종교적으로 비관용적이고, 인종차별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더 잘 안다. 세계화와 증가하는 인구의 압박이 전 세계적으로 감지되고 있으며, 우리는 그 결과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민족주의의 증가를 목도하고 있다. … 간단한 해결책은 없지만, 명확한 것은 우리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더 많은 돈을 보내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돈이 있는 곳으로 움직이려고 할 것이라는 점이다.”(338-339)

  <장벽의 시대>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분리장벽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7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이, 8미터 높이의 장벽과 감시탑 자체도 위화감을 자아내지만, 주택과 인접해있다는 점, 그린라인을 따르기보다 팔레스타인 안쪽으로 밀려났다는 점, 출근하기 위해 매일 굴욕감을 견뎌가며 국경선을 넘어야 한다는 점 등등에서 여간 야만적인 게 아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풍선을 타고 벽을 넘어가는 소녀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에 대한 팔레스타인 사람의 반응이었다. “우리는 벽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 벽을 혐오합니다. 돌아가십시오.”(107)

  동족 아랍인들이 고통당하는 걸 알면서도 팔레스타인 일에 개입하지 않는 속내도 퍽 기구하다. “실패한 국내정치에 대한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역경을 강조하려는 목적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계속 가난하게 살도록 하는 것이 아랍 국가들에게는 편리했다”고.(137) 하늘에는 벽이 없다지만, 안타깝게도, 땅에서는 배제와 차별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 어디를 가든 외국인 비중은 점차 늘고 있다. 더불어서 데니즌십denizenship에 대한 논의도 그러하다. 본문 속에서 저자는 네이선 스미스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 국가 안에서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은 노예무역처럼 폭력적이고 차별적이라는 견해까지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민권을 인권보다 우위에 놓으며,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336)

  나희덕 시인은 벽의 반대말은 해변이라고 노래했다. 벽은 우리를 가로막아 좌절을 맛보게 하지만, 해변은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만든다. 무한히 열려 있는 곳, 그 공간은 초월적인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를 흥미롭게 시청했다. 이념 서바이벌이니, 사회실험이니, 규정하는 말들이 많지만, 내게는 ‘숙의 민주주의’를 예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팀 마샬은 말미에 타협이란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다. 부디 인류의 대화가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는 것으로 귀결되기를 바란다.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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