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 김지원, 유유, 2024)

“요즘 사람들은 통 책을 안 읽어.”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위 문장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지 않는다. 사회가 책에 부여한 권위는 굉장해서, 책에 있어서만큼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한없이 겸손해진다. 위의 문장만 해도 그렇다. 별다른 부연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저 말을 듣고서 자기 자신을 비롯한 동시대 사람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비판적인’ 생각들을 덧붙여나갈 것이다. ‘나도 예전만큼은 책을 안 읽게 된다’며 자기 반성을 하거나, ‘사람들이 책을 안 읽어서 독해능력이 떨어졌다’며 걱정을 하는 식이다. 왜 읽어야 하는지, 그 텍스트가 왜 책이어야 하는지, 정말 요즘 사람들은 읽지 않는지 등에 대한 질문은 굳이 던지지 않는다. ‘책 읽기의 중요성’은 일종의 상식이자 불문율 같은 것이어서 그 권위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이라는 흥미로운 부제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질문하기를 요청한다. 요즘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것이 착각이라고? 그렇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여전히 ‘좋은 글’을 찾는다.” 책이든 신문기사든 노래가사든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든, 사람들은 읽을’거리’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어쩌면 핵심 문제는 요즘 사람들이 읽고 싶은 글을 접하기 힘들다는 사실 아닐까? (중략) 대부분의 사람은 텍스트 읽기 경험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진실하고 재미나고 자신에게 말을 거는 양질의 텍스트를 읽어 본 경험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이쯤에서 ‘읽기’라는 행위 자체가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질문을 던져보아도 좋겠다. 우리나라 말에서 ‘읽다’라는 동사는 책을 읽다, 글을 읽다 와 같이 일반적으로 활자를 보고 해석하는 행위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읽다’ 처럼 활자가 아닌 대상과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응시하고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이미지가 ‘읽기’ 안에 담겨있다. 이와 유사하게 저자는 ‘읽기’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면서 의미를 건져 올린다. 

“사람은 내 안에서 해결책을 도저히 찾을 수 없을 때, 나라는 자아가 비좁게 느껴질 때 바깥을 본다. (중략) 나의 고통을 이해하고, 원하는 정보를 정확히 찾고, 즐거운 읽을거리를 찾고, 몰랐던 세계를 알고,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들과 연대하고, 더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하는 등 더 나은 삶을 궁리하는 일이 모두 ‘읽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결국 읽기란 나를 벗어나 나의 바깥에 있는 세계를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읽는 행위만 보장된다면 어떤 텍스트여도 상관이 없는 것일까? 혹은 사람들의 손에 핸드폰이나 태블릿 등의 모바일 기기가 들려있는 풍경에 위기감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역시 진중한 읽기를 위해서는 종이책이 제일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싶은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읽기 양상은 원래부터 다양했다. 우리는 다시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종이책 만능론’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역시 종이책을 옹호하고 싶은 이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독서를 하다가 중간을 건너뛰거나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거나 중요한 부분을 접어놓거나 하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전자책이나 모바일 텍스트 읽기는 부수적인 것이고 종이책을 손으로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는 것이 읽는 행위의 본질에 가깝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 문장을 보고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오늘날의 모바일 스크롤 읽기에선 종이책 읽기의 특징인 건너뛰기, 책등 읽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며, 스크롤 읽기는 오늘날의 종이책보다는 수천 년 전 두루마리 펼쳐 읽기에 가까운 경험이다.” 두루마리 펼쳐 읽기가 지금의 종이책을 읽는 것보다 뒤쳐지거나 부족한 읽기 경험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두루마리 읽기와 비슷한 경험을 제공하는 모바일 스크롤 읽기도 여러 읽기 방식 중에 하나일 뿐이지, 종이책 읽기보다 열등하다고 취급하긴 어렵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 책의 제목이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인 이유가 있다. 다시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 권의 생각이 ‘굳이’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번거로움”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은 ‘읽을 거리’를 찾고 싶어하고 그것은 꼭 책이 아니어도 되지만, 앞서 말한 ‘굳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고 탄생한 물건일수록 읽을 가치가 있는 읽을 거리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 번거로운 과정이 책에 어떤 특성을 부여하는지, 그것은 책이 아닌 다른 텍스트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독자는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에 대해 저자는 여러 장에 걸쳐 이야기한다. 마치 책 읽기의 길라잡이와 같은 책이다. 이미 읽는 행위를 즐기는 사람도, 혹은 잊었던 읽기의 흥미를 찾고 있는 사람도 이 책을 통해 책읽기의 즐거움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정유은 목사 (고난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