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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선교에 동참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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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5월 10일 (금) 14:57:28 [조회수 : 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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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0장 44-48절

성령님의 선교에 동참하라

 

가. 성령님이 선교활동의 주체이시다.

44절,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 본문은 성령님이 선교활동의 주체이심을 보여준다. 베드로가 선교를 주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성령님이 주도하신다. 성령님이 베드로와 고넬료를 사용하셔서 이방선교의 문을 여셨다. 베드로를 고넬료에게 보내신 사건(행10:1-16)은 성령님이 직접적으로 활동하신 것을 보여준다.

*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불린다. 사도들이 전면에서 활동하였지만 이들을 이끌고 계셨던 분은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신 말씀은 의미가 크다. 성령님이 선교의 주체이시다.

* 특히 사도행전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울을 마게도냐로 인도하신 사건이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선교활동을 하려고 하였으나 성령님이 마게도냐로 인도하셨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행16:10)라고 하였다. 이것이 세계 선교와 문화발전에 놀라운 전환점이 되었다.

 

나. 신앙의 교리화에 얽매이면 안 된다.

45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 베드로와 함께 고넬료를 찾았던 신자들은 할례를 받은 이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이방인에게 말씀전하는 것도 의아한 일인데 이방인들이 성령을 받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그들의 신앙은 교리화에 얽매여져 있었다. 그런데 이를 떨쳐버리고 이방인을 용납한 것은 혁신적이었다. 또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심을 보고 물로 세례를 베풀었던 혁신적 사건을 참조하라(47절).

* 신앙의 교리화는 하나님의 사람을 성도로 양육하지 못하고 단지 교인으로 만드는 데 문제가 있다. 지식이 믿음을 대신하고, 세례와 같은 의식이 거룩을 대신하면서 신자들이 삶의 변화를 체험하지 못하는 위험이 있다. 한국교회가 대부분 교회성장에 집중하면서 신앙의 교리화가 심화되어 왔다.

* 중세교회는 신앙의 교리화가 심각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교세가 확장되었고 위압적인 성전건축물들을 세웠다. 그들은 세속적인 권력마저 누리면서 세상을 지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신앙의 교리화가 심화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양육하지 못하고 결국 암흑시대를 초래하는 비극을 맞았다.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45절b,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 성령님의 선교에 동참하려면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에 충만했던 베드로와 고넬료를 통해 하나님은 이방선교의 문을 여셨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셨다. 사람이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령충만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성령충만이 성령님과 함께 하는 비결이다.

* 성령충만하려면 고넬료와 또 함께 했던 이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그들이 말씀을 ‘듣는’(아쿠온타스, 현재분사 능동) 모습은 한 말씀, 한 말씀을 진지하게 능동적으로 듣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기도하는 중에 성령충만함을 체험할 수 있다. 이로서 순간적 성화가 가능하다.

* 그리고 성령충만하려면 성령님의 뜻에 순종하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의 지체 속에는 성령님의 뜻을 따르려는 욕구와 육체의 소욕을 따르려는 욕구가 서로 싸우고 있다. 여기서 육체의 소욕을 억제하고 성령님의 뜻을 따르는 훈련을 통해서 성령충만해지고 점진적 성화를 이루게 된다.

 

라. 성령충만한 사람이 성령의 선교에 참여한다.

46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 고넬료와 또 함께 했던 이들이 모두 성령충만함을 받고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게 되었다. 이는 성령님의 내주사역과 능력사역의 결과다. 방언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은사를 받는 것은 성령의 능력사역의 결실이다. 또한 하나님을 높이는 삶의 모습은 성령님의 내주사역의 결실이다. 그리고 성도는 이러한 능력사역과 내주사역의 결실이 충만할 때에 하나님의 선교사업에 동참할 수 있다.

* 사람이 성령의 내주사역으로 인하여 변화되고 성화를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을 높이는 성도가 되어 성령님의 선교에 참여한다. 하나님의 ‘증인’(마르튀온)은 아름다운 삶으로 ‘증거’(마르튀온)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은 그의 선교사역에 장해물이 된다.

* 그리고 성도가 성령의 내주사역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고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 되면 성령의 능력사역에도 참여하게 된다. 즉 하나님은 그와 인격적으로 연합한 사람들에게는 능력에도 연합하게 하신다. 이로서 성도가 여러 가지 은사를 받고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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