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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제일 언어인 침묵
전승영  |  한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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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5월 04일 (토) 01:01:22
최종편집 : 2024년 05월 04일 (토) 01:04:58 [조회수 : 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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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까치글방, 2019)

  침묵이란 그저 인간이 말하지 않음으로써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은 단순한 말의 포기 그 이상의 것이며, 단순히 자기 마음에 들면 스스로 옮아갈 수 있는 어떤 상태 그 이상의 것입니다. 말이 끝나는 곳에서 침묵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말이 끝나기 때문에 침묵이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 비로소 분명해진다는 것뿐입니다. 침묵은 하나의 독자적인 현상입니다. 따라서 침묵은 말의 중단과 동일할 것이 아니며, 그것은 결코 말로부터 분해되어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독립된 전체이며, 자기 자신으로 인하여 존립하는 어떤 것입니다.(17)

  침묵은 하나의 원초적 현상입니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에 의해 대치될 수 없으며 그 배후에는 창조주 자신 말고는 그것과 연관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23) 침묵은 말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말은 침묵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말에게 침묵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말은 아무런 깊이도 가지지 못합니다.(31) 인간의 정신 속에서 침묵은 숨은 신(Deus Absconditus)에 관한 앎으로 나타납니다.(33) 인간은 진리를 언어로 완전히 표현해 낼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말을 진리로 채울 수 있습니다.(38) 신인(神人, 즉 그리스도)에게서 말과 진리와 광휘는 하나의 일체를 이룹니다. 여기에서는 선후관계도 없고, 병존관계도 없습니다. 완전한 일체가 있을 뿐입니다.(39)

  옛 성자들이 고독 속으로 들어가서 마주쳤던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침묵의 객관적인 고독이었습니다. 이 내적 고독은 자기 자신의 고독 일 수 있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74) 형상(image)은 침묵하고, 침묵하면서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형상 속에는 침묵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그 침묵 곁에는 말이 있습니다. 형상은 말하는 침묵입니다.(102) 꿈 역시 침묵으로 가득 차 있는 형상입니다. 꿈은 침묵의 표면 위에 새겨진 다채로운 빛깔의 판박이 그림입니다. 사랑 속에는 말보다는 오히려 침묵이 더 많습니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케는 바다 속에서 나옵니다. 그 바다는 침묵입니다.(107) 사랑에는 말보다 침묵이 더 많습니다. 시간 속에 깃든 침묵이 없다면, 망각도 용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133) 시(詩)는 침묵으로부터 나오며, 또한 침묵을 동경합니다. 시는 인간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 침묵에서 다른 침묵으로 가는 길 위에 있습니다. 시는 침묵 위를 비상하고, 선회하는 것과 같습니다.(165)

  오늘날 침묵은 산산조각이 난 한 세계의 잔해에 불과합니다. 침묵을 상실한 인간은 그 침묵과 함께 단지 한 특성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서 자신의 전체적인 구조까지도 변해버렸습니다. 예전에는 침묵이 모든 사물을 뒤덮고 있었고, 그래서 인간은 한 대상에 다가가기 전에는 먼저 그 침묵의 막을 뚫고 나아가야만 했으며, 인간이 생각하려고 하는 그 자신의 사상 앞에까지도 침묵 자체가 서 있었습니다.(256) 인간은 침묵을 잃어버렸다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침묵이 있었던 곳에 이제는 사물들이 빼곡히 차 있어서 빈자리가 없습니다.(258) 신의 침묵은 인간의 침묵과 다릅니다. 신에게는 말과 침묵이 하나입니다. 말이 인간의 본질이듯이, 침묵은 신의 본질입니다.(266) 

  기도 속에서 말은 저절로 침묵 속으로 되돌아갑니다. 기도란 애초부터 침묵의 영역 안에 있었습니다. 기도는 인간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신에게 받아들여집니다. 그것은 침묵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그 안에서 사라집니다. 기도는 그치지 않고 존재할 수 있지만, 기도의 말은 항시 침묵 속으로 사라집니다. 기도는 말들을 침묵 속으로 쏟아 붓습니다.(268) 
                    
한천교회 전승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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