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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가 내게 던진 한 가지 질문
김윤형  |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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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4월 30일 (화) 23:54:06
최종편집 : 2024년 04월 30일 (화) 23:55:50 [조회수 :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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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 마르틴 루터, 최주훈 역, 복있는사람, 2017)

 세월의 흐름 속에서 무수히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영원할 것 같았던 것들도, 진리라 여겼던 것들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들도. 그러나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들을 ‘고전’이라 부른다. 시간과 공간, 문화와 인종을 뛰어넘어 살아남은 고전들은 자연스레 유명해진다.

 하지만 고전은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가장 낯선 존재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내가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라고 생각할 때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고전과 원래 고전 사이의 거리는 수억 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마르틴 루터와 종교개혁은 이와 같은 고전 중 하나였다. 감리교 목사의 아들이자 감신대 신학생으로서 루터와 종교개혁의 관한 내용은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라고 생각했고 굳이 아는 내용을 더 알아볼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루터의 삶과 신학, 종교개혁의 내용은 이미 지나가 버린 역사의 한 페이지에 불과했다.

 그러다 지난 4월 1일부터 3일까지 직접 두 눈으로 루터의 삶과 종교개혁 유적지를 보게 되었다.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 밟는 동안 ‘과연 나였다면 그 당시 시대의 권력에 맞설 용기가 있었을까? 지금 교회의 모습은 올바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 내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 루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라는 생각들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나는 루터와 같은 행동을 할 용기는 없는 사람인 것 같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95개조 논제의 서문에 해당하는 내용을 읽었다.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부터 그리고 그것을 밝게 드러내려는 열망에서”

 이 문장은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들면서 동시에 나를 질책하는 문장이었다. 너에게는 지금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것을 밝게 드러내려는 열망이 있는가? 너의 삶은 진리를 향한 삶인가 현실의 안락함을 향한 삶인가? 너는 무슨 이유로 신학을 배우고 있는가?

 95개조 논제에서 받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문장을 만났다. 그 문장은 루터 하우스 옆 전시회에서 만났다. 그곳에는 루터가 보름스에서 종교재판을 받던 모습을 그린 그림이 하나 있는데, 그 옆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Ich kann nicht anders, hier stehe ich, Gott helfe mir. Amen”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해석했다.
“저는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제가 서 있으니, 하나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아멘” 

 한국에서 보았을 때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문장이었지만, 그날 그곳에서 그림과 함께 보니 이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장중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작고 낮은 목소리로 루터의 저 고백을 따라서 말하고 있었다.

 그때는 내가 왜 그랬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나는 하나님과 단독으로 마주 서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과 단독으로 마주 서 있을 때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단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뿐, 다른 어떠한 말과 행동도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경험을 하고 나자 루터는 더 이상 나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나와 함께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대표 저서 중 하나인 󰡔대교리문답󰡕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감명받았던 것은 바로 십계명에서 제1계명을 설명하는 부분이었다. 루터는 제1계명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신’이란 사람들이 소망하는 모든 좋은 것, 온갖 시련의 피난처가 되는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신을 섬긴다’는 말은 그 대상을 진심으로 믿고 신뢰하는 것을 뜻합니다. 제가 거듭 말했듯이, 오직 마음의 믿음과 신뢰만이 신을 만들 수도 있고 우상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바른 믿음과 바른 신뢰가 있다면, 당신의 신은 바른 신(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바르지 못한 믿음과 바르지 못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바른 신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우상). 왜냐하면 이 둘, 곧 신앙과 신은 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당신의 마음이 매달려 있고 당신의 모든 것을 지탱하는 대상, 그것이 바로 당신의 신입니다.’ (51-52)
 ‘오히려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사로잡히고, 하나님께 달려 있을 때에야 비로소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기에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은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뜻이 됩니다.’ (55)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만을 바르게 믿으며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만한 사실은 루터가 ‘신을 섬기다’라는 표현을 ‘Einen Gott haben’이라고 쓴 것이다. 이에 대해 옮긴이는 다음과 같은 각주를 달았다.

 ‘여기서 사용된 동사 haben은 소유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루터에게 이 문장은 소유나 신분 개념이 아니다. ‘자신이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새로운 자신을 ‘가지며’(새 존재), 이웃을 새롭게 인식하고, 모든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신을 섬기다’라는 표현은 종교를 통해 현실에 대한 모든 관점이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338-339) 

 종교개혁지 탐방부터 󰡔대교리문답󰡕까지, 그 모든 길은 나에게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되었다. “지금 너의 마음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신뢰하고 있는가?”
 
김윤형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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