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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과 나이값의 부담감
김홍봉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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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4월 29일 (월) 14:57:54
최종편집 : 2024년 04월 30일 (화) 13:44:27 [조회수 :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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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70이 턱에 닿았으니 '노인'축에 들어가는 것이 확실하건만 아직도 마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지지가 않는다.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고 하는 탓이기도 하고 다행히 건강의 복을 주셔서 아직까지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고 비교적 건강하게 생활하며 활동해 온 탓에 나도 모르는 자만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이가 들었다'라고 인정하게끔 하는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휴대폰도 볼 수 없는 것이 불편하여 노안수술을 한지가 벌써 수년이 지났고 귀에서는 이명이 심하고 한쪽귀가 전혀 않 들리더니 다행히 이병원 저 병원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민간요법을 쓰기도 했는데 요즘 들어 다행히 치료가 되어 한숨을 돌리고 있다. 결국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게 된다.

늙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생각대로 안된다고 푸념하기보다는 노화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늙어간다는 것은 거부하거나 저항해야 할 것이 아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리라.

나이가 들어가면서 차츰차츰 다가오는 죽음의 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다가오는 죽음의 날을 바라보면서 내가 어떻게 죽게 될 것인지가 몹시 궁금해지면서 요즘 나의 인생의 희망사항 소원이 생기게 되었다. 아프지 않고 추한 꼴 보이지 않고 죽는 것이 나의 간절한 바램이 되었다. 이 같은 바람은 요양원을 운영하며 숱하게 보아왔던 어르신들의 인생의 비애와 아픔을 보며 받은 영향일지도 모른다.

구구팔팔 2,3사라는 말처럼 모두가 원하는 죽음이지만 그렇게 운이 좋을 수는 없다. 뇌졸중은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고 눈만 멀뚱 거리며 20년 이상을 살게도 만드는 병이다.

죽음을 맞보지 않고 사라진 에녹처럼 되었으면 오죽 좋으련만 그렇지는 못할지라도 고생고생하다가 겨우 죽는 것은 면하고 싶다. 그러나 죽음을 논하기 전에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논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심심치 않게 나잇값도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되면서 나에게도 해당되지는 않을까 부담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인생 후반기를 살면서 직장으로부터의 얽매임에서 자유 한다지만 자유를 누리는 만큼 나잇값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따라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덧대어진다는 뜻일 것이다. 나이 듦은 가정이나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역활과 기여를 하며 경험과 지혜를 알려주고 이치와 순리를 밝혀주는 책무가 깊어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이 팔십 줄에 정치판에 아직도 남아 존재감을 과시하며 험한 말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며 후배 정치인이 ‘나잇값’을 하라는 소리를 듣는 걸 봤다. 그 노인은 수시로 상대 정치인들에게 험한 말로 상대를 난도질하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나타내기 위한 몸부림 일 것이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점잖은 말로 얼마든지 필요한 훈수를 둘 수 있고 자신의 정치역량을 드러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이 값을 한다는 것은 진정한 어른으로서의 면모를 갖춘다는 것이다.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고 하는 말은 나잇값을 못 하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자리값, 얼굴값, 이름값을 하라는 말이 있다. 자리값을 못하면 걷어 치우라고 한다. 얼굴값을 못하면 생긴 대로 논다고 한다. 이름값을 못하면 , 이름이 아깝다고 한다.

나잇값을 못하면 뭐라 말할까? 주책을 떤다고도 하고 꼰대라는 말로 비아냥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요즘 노인 중에 나잇값도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잇값에 대한 부담감을 갖게 된다. 나잇값은 성숙의 다른 표현방식이다.

야곱의 말년을 기록한 성경을 추적하면서 나잇값을 제대로 하는 족장 야곱을 보게 된다. (창46:1-2)애굽의 바로 왕을 만나 해우하면서 연세가 몇이냐고 묻는 바로왕에게 130년의 험한 세월을 살았다고 하면서 상대 바로왕을 축복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누구에게든지 축복할 수 있는 것은 나잇값의 대표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야곱의 이름이 상징하는 것처럼 욕심으로 인해 그의 조용한 성격 하고는 딴판인 사람으로 그가 고백한 대로 험한 세상을 살았던 족장이었으나 노년이 되었을 때는 무르익은 과일처럼 성숙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년기의 그에게서 우선 탐심이 없어진 것을 본다. 그는 본래 탐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창 43:1,2에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비가 그들에게 이르되 양식을 조금 사라."고 했다. 히브리 원문 성경에서는 "양식을 조금 사라"가 아니라 "적은 양식을 사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곧 앞의 " 큰 기근"과 잘 조화되며 대비되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큰 기근"을 넘기 위해서는 "많은 양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러한 양식을 원한 것이 아니라 "적은 양식"을 사오라고 했다.

그럼에도 야곱이 적은 양식을 요구한 것은 그는 이제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는 동정심이 얼마나 깊어졌음을 이 '적은 양식'이라 적은 문구에서 찾아본다. 아름다운 노년은 내려놓음에서 발휘되고 이것이 나잇값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다.

창 48:10에, 야곱의 눈이 나이로 인하여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그러나 창 48:17에서 보는대로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에게 축복할 때에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얹고 큰 아들 므낫세에게는 왼손을 얹었다. 요셉은 말하기를 "아버지여 그리 마소서(창 48:18)" 하면서 아버지의 손을 바꾸려 할 때에 야곱은 허락지 않으며 하는 말이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면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창 48:19,20) 했다. 이처럼 야곱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영안이 밝아서 두 아들 중 누구에게 축복해야 할 것을 알았다.

젊었을 때의 낭패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게 되고 이것은 철이 없어서였다고 얼버무릴 수 있었다. 더 이상 철없는 행동은 끝내야 하지 않을까!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라고 고백했던 사도바울처럼 나이가 들수록 겉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 지는 것이 나잇값의 본질일 것이다.

나이에 맞는 지혜를 가진 사람으로 늙어갔으면 좋겠다. 겪어보니 나잇값 못하는 사람들이 눈에 가시처럼 괴롭다. 자신의 나이에 걸맞은 현명함으로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누구에게나 짐이 되고 상처를 주는 존재가 아니라 복이 되고 덕이 되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존재로 늙어가고, 에녹처럼 홀연히 바람처럼 사라지는 인생 마지막을 장식할 수는 없을까 하는 희망사항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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