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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목회는 안녕하십니까?
원형수  |  paul95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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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4월 28일 (일) 01:44:58
최종편집 : 2024년 04월 28일 (일) 01:54:28 [조회수 :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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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목회는 안녕하십니까?

 

목회란 무엇인가? 목회란 어떻게 하는 것이 참된 목회인가? 목회자라면 누구나 한 번씩 고심하며 그 뜻을 찾아보려 했을 것입니다. 저도 역시 목회하는 동안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과제였습니다. 우선 사전적 의미는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1. 성경이 말하는 목회

생명의 말씀 사에서 출간한 교회용어사전은 “목사가 교회를 담임하여 설교하며 성례전(聖禮典)을 베풀고, 교회를 행정적으로 관리하며, 성도 개개인의 영혼을 돌보아 신앙생활을 지도하는 일. 곧, 목사가 교회를 위해 수행하는 제반 사역.”이라 정의했습니다. 그 외 민중서관에서 출판한 국어대사전이나, 연세대학교 언어정보개발연구원에서 출간한 연세한국어 사전도 대동소이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성경에서 그 의미를 찾게 되었고, 제게 답을 준 것은 요한복음 21장이었습니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라고 믿고 따랐던 제자들이, 막상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당하신 후 매장되셨다가 사흘 만에 그들에게 나타나 보여주셨음에도, 제자들은 확신하지 못하고, 절망과 실의에 빠져, 3년 전 버리고 떠났던 갈릴리로 되돌아와 그물과 배를 챙겨 들고 고기잡이로 나섰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생선 한 마리 잡지 못한 채 그물을 들어 올리려 했을 때,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이 잡히게 하자 비로소 예수를 알아보고 해변으로 나와 즐거운 조반을 나누게 됩니다. 

조반을 끝내고 난 후,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서슴없이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하자,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이 같은 질문과 응답은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다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시고,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똑같이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목회란 예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양 떼를 먹이고 치는(돌보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먹이고, 어떻게 치는 것일까요? 양을 먹이는 것과 돌보는 것은 성경에서 그 사례를 수없이 찾을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 또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를 우리의 목자로 소개합니다(창48:15, 시23:1, 겔34:23-24). 특히 히브리서 13:20 절은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라 하고, 계시록 7:17 절에서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하셨고, 요한복음에서는 친히 자신을 ‘선한 목자’로 계시하십니다(요10:1-18). 

그러면 우리의 본이 되시는 예수께서는 어떻게 양들을 먹이고 돌보신 것일까요? 이에 대한 기록이 4 복음서입니다. 우리는 4 복음서를 통해 우리의 목자 되시는 예수께서 양 떼들을 어떻게 먹이고, 돌보셨는가를 확연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1:23)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맨 끝장 끝 절에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으로 끝납니다. 이는 곧 예수께서 언제나 양 떼들을 떠나지 않고 항상 함께하셨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막1:1)는 말로 시작하여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막16:15)는 말씀으로 끝납니다. 이는 곧 예수께서 목자로서 천국복음을 선포하심으로 양들에게 항상 복음을 들려주셨다(먹이셨다)는 뜻으로 목회란 결국 ‘복된 소식을 전하는 직무’라 봅니다.

누가복음은 구약성경의 맨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의 마지막 예언인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4:5-6)는 말씀과 연결시켜,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정으로 온 자라고 소개하는 가브리엘 천사의 기쁜 소식으로부터 시작하여(눅1:17), 맨 마지막 장 마지막 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24:49) 하심으로서 목회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뜻을 쫓아 “그 모든 일의 증인”(눅24:48)으로 사는 것임을 밝혀주신다 하겠습니다. 즉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한 성령의 사역이란 뜻입니다.

요한복음은 태초부터 계시던 ‘말씀’으로부터 시작하여 ‘기록된 말씀’ 곧 ‘기록된 책’(요21:25)으로 끝납니다. 좀 더 설명드리면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나타나신 분이 ‘예수’이시고(요1:14), 그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심은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심이요, 그에 대해 ‘기록된 책’(요21:25)이 곧 성경인 것입니다.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요21:24) 하심으로 요한복음이 말해주는 목회란 “예수께서 행하신 일”(요21:24, 25)들을 증언하는 일임을 밝혀준다 하겠습니다. 

이로써 저는 목회란, ‘양들과 함께 하는 것’(마태복음), ‘복음을 전하는 것’(마가복음),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수의 증인이 되는 것’(누가복음), ‘선한 목자가되어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돌보는 것’(요한복음)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같은 사역을 마태복음 4:23절은 간단히 요약합니다. 즉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4:23)란 말씀을 통해 목회란 ‘가르침’과 ‘복음전파’와 ‘약한 것을 고치는 일’ 곧 돌봄이라는 것입니다. 

 

2. 제자들의 목회

이 일은 예수님의 사역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9:35절을 보면 4:23절과 꼭같은 말씀을 전하는 9:36-37절에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마9:36-37)고 하심으로서, 보냄을 받은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사역을 본 받아 해야할 사역임을 주지 시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당부에 따라 제자들 역시 예수님의 사역을 모방하여 ‘가르치고’, ‘교제하며’, ‘봉사’ 곧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으로서 돌봄을 실천한 것입니다(행2:42-47, 4:32-37). 신학자들은 사도들의 행적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모방화1) ‘복음서 신학’. 김득중, 컨콜디아사. p. 179.
라고 칭합니다. 사도행전에 소개되는 사도들 곧 베드로와 스데반과 바울 등을 예수님과 대조하여 제자들도 예수님과 꼭 같이 행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의 목회 사역은 사도행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 2장과 4장, 그리고 20장은 사도들이 양을 치는 목자로서 어떻게 사역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3대 사역을 통해 양을 먹이심같이 제자들 역시 3대 사역으로 양을 먹이고 돌보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은 그 사역에 대해,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다“(행2:42-47, 4:32-37)고 소개합니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은 사도행전 20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증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행20:27,31,35).

예수님의 가르침과 교훈이 4 복음서에 담긴 것처럼 사도들의 사역 역시 로마서로부터 요한 계시록에 이르는 모든 서신속에 담겨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 주님께로부터 명령을 받았던 것처럼 그도 역시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5:2-3)고 당부합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 13권은 자신이 설립한 교회의 양떼들을 어떻게 먹이고, 어떻게 돌보았는가를 보여줍니다. 구원의 문제라든가(고린도 전후서), 교인들(유대주의자들)간의 충돌이라든가(갈라디아서), 참된 교회의 모습(에베소서), 예수님의 재림과 새 신자들에 대한 양육(데살로니가전후서), 복음과 율법(로마서) 등에 대한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붓습니다. 마치 예수께서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하리라”라고 하심과 같이 각 사람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신앙의 눈으로 권고와 격려를 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빌레몬서), 각 교회마다 필요한 일꾼을 세워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고 돌볼 것을 권고하기도 합니다(디모데전후서, 디도서). 

사도 바울만이 아닙니다. 다른 사도들 역시 각 서신서를 통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말씀’과 ‘구원’에 대한 권고와 당부입니다. 야고보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 (약1:18, 21, 22, 23) 하고, 베드로는 “너희가 거듭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 (벧전1:23, 25, 2:8, 3:1, 4:11) 하고,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네 형제를 사랑하라”(요일 3장)고 권합니다.

구원에 관해서도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약2:17) 하고, 베드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다” (벧전1:5, 9, 10, 2:2, 3:1, 20, 21, 4:18, 고후3:15) 하고, 유다 역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유1:3,5,23) 고 권합니다. 

사도들은 청중의 환심을 사기위해 듣기 좋은 말만 전한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질책과 책망과 경고도 잊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의 경우 로마 황제의 박해속에 두려움에 떠는 양떼들에게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과 같은 형상으로 나타나신 예수의 영광”을 소개하며, 첫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 음행하고 타락한 교회, 죽은자 같은 교회, 구토가 날 지경으로 타락한 교회에 대한 책망을 거침없이 쏟아놓기도 하고, 이어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 받게 될 복에 대해서도 과감히 선포합니다.  

이처럼 사도들이 전한 복은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3중축복2), 4중 복음3), 5중 복음4)이 아니라, 8가지 복5)(마5:2-12), 7가지 복(계1:3, 14:13, 16:15, 19:9, 20:6, 22:7, 22:14)과 성령안에서 누리게 될 9가지 열매와(갈5:22-23),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이 세상의 복이 아니라 성령안에서 누리게 될 의와 평강과 희락의 복(롬14:17)을 선포하는데 전심전력을 다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있게,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딥후4:7-8)고 한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너에게도 의로우신 재판장이 “선한 싸움을 싸운 자들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한 것입니다.  

 

3, 당신의 목회는 안녕하십니까?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 아닌, 제 자신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목회를 했는가? 되돌아보면 솔직히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삯군 목자였습니다. 

우리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양 떼들에게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가시덤불이 우거진 갈대밭과 성난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는 물가로 인도해 온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 하기 보다, 내가 “말하고 싶고, 내가 내세우고 싶은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포장”하여 전한 것입니다. 성경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보다 나의 주장과 신념을 뒷받침하기 위한 증거자료로 성경구절을 활용해 온 나 자신이였음을 뒤늦게 보게된 것입니다. 

내가 꿈꾼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나의 교회’를 만들기 위한 목회였습니다. 결국 나는 삯군 목자였고, 하나님의 양 떼를 나의 양 떼로 도적질한 강도에 불과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상, 기독교 대한감리회의 현상은 제가 감당해왔던 지난 날들의 사역과 결코 무관하지 않는 것임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20년 전 저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의 위상과 지도력 확보라는 명분하에, ‘2년제 겸임감독제’를 ‘4년제 전임 감독제’로 입안을 하고, 통과시키는데 공헌했던 결과가 오늘과 같이 이토록 부패하고 타락한 감리교회가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비로서 저는 요한 웨슬리 선생이 왜 그토록 감독제를 반대했었던가를 이제야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여,.............어떻게 당신은 감독이란 명칭을 듣고도 가만 있을 수 있었습니까? 그 생각을 하면 떨리며 겁이 납니다. 사람들이 나를 바보, 멍청이, 무뢰한, 불한당이라고 불러도 가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감독이라고 부르는 것은 절대 허락지 않을 것입니다. 나를 위한다면, 하나님을 위한다면, 그리스도를 위한다면, 이런 장난은 그만 두십시요! 장로 교인들이야 무슨 짓을 하든 버려 두십시오. 그러나 감리교인들은 자기들의 소명이 보다 나은 것임을 잊지 않게 하십시오.(1788. 9. 20. 총서 p.309) 

목회자란 교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양 떼를 ‘먹이는 것’과 ‘돌보는 것’임을 망각해 온 제 자신이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떤 목회자였는가? 진정 너의 목회는 건강한 목회였는가?” 이 질문을 바꾸어 제 자신에게 “당신의 목회는 안녕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오늘과 같이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 상상조차 못했던 교회의 모습을 바라보며, 너는 어떤 목회자였고, 무엇을 증언했으며, 어떤 교회를 꿈꿔왔는가를 되돌아보며, “네가 문제였고, 네가 그 원인이다!”는 자성과 함께 탄식하며, 몸부림치는 고백이바로 이 질문입니다. “당신의 목회는 안녕하십니까?”

 

각주 --------------------------------------------------------------------------

1) ‘복음서 신학’. 김득중, 컨콜디아사. p. 179.
2) 영혼이 잘되는 축복, 범사에 잘되는 축복, 강건해지는 축복
3) 중생, 성결, 신유, 재림
4) 구원의 복음(요3:16), 성령충만의 복음(행1:8), 신유의 복음(막16:17-18), 축복의 복음(고후8:9, 갈3:13-14), 재림의 복음(살전4:16, 계21:1, 22:5)
5) 1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자와 듣는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2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3 계16:15 보라 내가 도둑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4 계19: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5 계20: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6 계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7 계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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