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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
김형희  |  kkkk000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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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2월 11일 (일) 00:00:00 [조회수 : 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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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목사는 먼저 자신이 시무하는교회 홈페이지에 올린 "나의 설교를 말한다 " 라는 글을 기자가 "'성경 설교의 목적이 아니고 도구이다'" 라고 제목을 붙인것에 대해 다분히 선동적이고 가쉽적인 일이다라고 비판을 해 나가면서 글을 시작한다. 과연 김목사의 지적처럼,기사의 제목이 선동적이고 가쉽적인 것일까?

언론기자는 기사의 제목을 정할 때에 가장 중요한 이슈를 선정하게 된다. 기사화가 된다는 것은 사건이 나거나 어떤 문제점이 드러날 때에 그 문제점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너무도 평범한 사건은 사실 우리네 일상적인 삶에서 수도없이 벌어지는 통상적인 일이기에 기사화 될 필요도 없고, 따라서 " 파란옷을 입었다 밥을 먹었다 많이 웃었다 " 라는 등의 일상적인 무미건조한 일에 대해 기사를[기사제목]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 쉬운예를 들면 사람이 담배를 피면 아무일도 아니지만, 호랑이가 담배를 피면 기사화가 된다는 말이다.

이같은 차원에서 기자는 김목사의 " 나의 설교를 말한다" 라는 글을 읽어보니 "'성경 설교의 목적이 아니고 도구이다'라는 글이 눈에 띄었고 이 설교가 충분히 생각해볼 문제점이 있고,논란이 되거나 토론이 될만한 기사꺼리라고 생각함으로써 제목으로 삼은 것일 것이다. 만약에 기자가 제목으로 삼은 것말고 다른 것으로 기사화 할 수 있는 적당한 것이 있는지, 당신이 한번 실험적으로 해보라, 어떤 제목으로 해야 선정적이지 않고 올바른 기사의 제목이 될 수 있을까?. 그러므로 김목사의 기사제목 비판은 올바른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기사일망정 독자들의 비판을 의식해 기사의 주된 목적과 상관없는 평범한 제목을 정하는 것도 독자를 우롱하는 것이다. 물론 사실적인 내용을 가지고 제목을 정한다는 것이지 기사와 상관없는 제목을 정한다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기사의 내용과 동떨어진 제목은 독자를 우롱하고 속이는 것과 비견되는 올바르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언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김목사는 자신의 글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에 대한 변론을 한다, 자신이 참된 복음을 외친다면, 남들의 평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것일텐데, 누가 하라고 해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을 것도 아닌 것이 복음이란 사실을 아는 자들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목사는 이런 사실을 전혀 알지못한 사람처럼 주변인의 왈가왈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인터넷상에서 설교할 꺼리를 찾는 김목사의 행동으로서는 다소 의외의 행동인 것이다.


김목사는 설교를 잘하기 위해 수없이 기도 하고 수없이 벽을 치면서 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울부짓음 덕분에 주님의 은혜가 임하여 설교를 잘 하게 될 수있었다고 자부하는 모습이 드러나 보인다. 과연 이런 행동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일까?. 김목사가 주님의 은혜가 임한 사람이라면, 바울처럼 범사에 감사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의지가 자연적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부끄러워 해야 마땅 하거늘, 오히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두고 하느님께 원망하는 투의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나는 김목사의 설교를 알기쉽게 잘하는 것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신앙적 모습을 문제삼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실혀시켜 주는 분이 하느님이 아니심을 먼저 알아야 하건만, 하느님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매개물로 여기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왜 요나와 말더듬이 모세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 갈 수밖에 없었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김목사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김목사 처럼 행동을 하게 될 것이고, 간절히 바라면 하느님은 어쩔 수없이 들어 주실수 밖에 없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울부짓는 행동을 하는 것은 참으로 위선의 극치인 것이다.또한 숭의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모두 어린아이 같은 신앙인으로 바라 보고 있는 것 같다,그같은 시각 자체가 숭의교회 교인들 중에 장성한 신앙인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김목사는 설교를 통해 반증하는 것이다. 이같은 김목사의 설교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을 가하자 자신도 그 누구못지않게 성경을 주석할 수 있다고 반론을 한다. 성경을 이해하는 것도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나뉘어 지고, 차별이 있는 것처럼 피력 하는 것이다. 성경을 잘 주석하면 믿음의 능력이 있고 주석을 못하면 능력이 없는 자인것처럼 말을 하는 것이다..

이같은 김목사의 설교관은 한마디로 목사의 설교가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라는 설교지상주의가 내재한 때문이라고 나는 느껴진다. 아직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인간의 자유의지만을 내세우는 윤리적인 설교만이 흘러나온다고 여겨지는 것이며,설교란 자신이 느끼고 깨달은 것을 할말을 하고파서 해야 하는 것이지, 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없이 목사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설교를 한다면 이는 복음을 외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사람일 것이다. 목사는 일반 교인들과 뭔가 다른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것 그 같은 생각이 김목사의 글에는 잔뜩 배여져 나온다.

김목사는 "저는 변명만 하지 않고 이번 기회에 제 설교를 다시한번 스스로 비판해 보고 문제점을 찾아 시정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라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과연 자신의 설교를 스스로 비판하고 시정 할 수있는 것이 설교일까?.인간이 마음만 먹으면 잘잘못을 가려내고 수정할 수있다는 생각이야 말로 지극히 인본주의 적인 생각이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왜 김목사는 이런 말을 하게 된 것일까?. 겸손함을 보이기 위해 그런 것일까?.아니면 진정 자신의 설교를 비판하고 시정하기 위해 한 말일까?{스스로 잘못된 것인지 알 수없는 설교를 교인들에게 전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일까?} 이같은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김목사는 언제나 설교다운 설교를 하려는 그 관념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마치 십일조를 잘하고 주일성수를 잘지키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행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란 생각 때문에 성경말씀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처럼, 설교를 잘해야 한다는 관념 때문에 설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인이란 할 말을 하지 않으면 참을 수없어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지,의무적인 강박감 때문에 설교를 하는 인생이 아니다.




나의 설교를 말한다[2]. 김동호 목사

1. 나의 설교 이야기를 교회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인터넷 교계 신문이 그것을 자신들의 신문에 올려 화제꺼리가 되고 논쟁까지 일고 있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특히 어느 신문에서는 제목을 '성경 설교의 목적이 아니고 도구이다'라는 식으로 뽑았는데 신문의 속성을 잘 아는 전형적인 기자적인 제목 뽑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분히 선동적이고 다분히 가쉽적인 제목을 뽑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 성경을 주석적으로 설명하는 것만이 설교의 목적이 아니라는 뜻에서 그런 표현을 쓴 것인데 그것을 제목으로 뽑고 보니 마치 내가 성경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사람처럼 보여지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 뜻은 전혀 아니었는데...... 제목 때문에 논쟁이 엉뚱한 방향으로 번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3. 저는 무녀독남 외아들로 자랐습니다. 병적이리만큼 내성적이었는데 다행히 교회생활이 좋아서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생활하다보니 많이 고쳐졌습니다. 그래도 그 바탕까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제일 힘들어하는 것은 사람 앞에 서는 것이고, 사람 앞에서 서서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도 좀 그렇습니다.

4.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주일학교 교육전도사가 되었습니다. 앞이 캄캄하리만큼 힘든 일 중에 하나는 아이들 앞에서 설교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설교는 제가 절대로 잘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설교를 했는데도 아이들이 집중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집에 돌아와 정말 땅을 치며 속상해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울었습니다. 혼자서 소리도 지르고 바람벽을 주먹으로 치기도 하며 정말 많이 안타까워했었습니다. 덕분에 오른 쪽 주먹은 태권도 선수보다도 더 단련이 되었고 실제로 태권도 선수들만큼 격파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5. 그래서 참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다른 기도는 몰라도 설교를 위한 기도는 정말 누구 못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설교를 위한 저의 기도는 참 도전적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도 은혜 받게 해 주세요"였습니다. 교육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매번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하나님은 그 거의 말도 안 되는 기도에도 응답해 주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6. 어린 아이들에게 설교를 하려면 성경본문이 어려우면 안 되었습니다. 너무 커도 안되었고, 너무 딱딱해도 안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설교학을 배우면 대지를 몇으로 나누고 대지마다 소지를 나누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 설교에는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하고 이야기하는 순간 첫째를 아이들은 잊어 버리고 생각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7. 저는 설교 시간에 하나만 이야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이들 설교에는 적중하였습니다. 가능하면 성경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하나를 찾아내고 그것에 집중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려면 내 나름대로 성경본문에 대한 주석이 더 깊어야 하고 이해가 깊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요한 핵심 하나를 정확하게 끄집어 내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 아이들은 약을 먹일 때 약을 잘 안 먹으려고 하기 때문에 시럽에 설탕을 넣기도 하고 아니면 설탕으로 겉을 싸 당의정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저는 설교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성경본문속에 있는 약 즉 하나님의 말씀을 아이들이 먹기 쉽게 포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잘 아는 이야기로, 아이들이 재미 있어 하는 이야기로, 아이들이 관심있고 흥미있는 이야기로 쌌습니다. 아이들은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줄 알았지만 그 이야기를 통하여 제가 전하려고 했던 것은 약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성경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멧세지였습니다.

9. 말씀을 포장하는 좋은 포장지를 준비하는 일이 설교 준비에 있어서 중요한 작업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듣는 이야기를 찾기 위하여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았습니다. 피가 마르는 고통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렇게 애가 타게 포장지를 찾고 준비하다보면 꿈 속에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이 잦아져서 침대 옆에 늘 메모지와 볼펜을 놓고 잤었습니다.

10. 어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저는 어른 설교도 아이들 설교처럼 해도 좋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대지를 여럿으로 나누고 첫째 둘째 하고 설교를 하면 잘 집중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른 설교도 아이들 설교처럼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칙적으로 설교 시간에 하나만 설교합니다. 보통 설교자가 한 주일에 설교 하는 분량이라면 저는 최소한 한 달 이상합니다. 그래서 제 설교 중에는 한 본문과 제목을 가지고 열 몇번씩 하는 설교가 있는 것입니다. 하루에 하나씩만 이야기합니다.

11. 그리고 그 하나의 멧세지를 찾아내고 그것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이야기라는 도구를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는 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성경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물론 실패할 때도 있지만 성공할 때도 많습니다. 실패했을 때는 사람들이 제 설교를 통하여 성경을 만나지 못하고 제 이야기만 만납니다. 그러나 성공할 때는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통하여 성경의 핵심과 멧세지를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됩니다.

12. 사람들은 제가 설교 시간에 성경은 이야기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제가 실패한 설교의 경우입니다. 실패하지 않았을 때는 이야기를 통하여 오히려 본문의 명확해지고 그것을 통하여 전달되어져야 할 하나님의 멧세지가 분명해 지기도 합니다. 그게 제가 의도하는 저의 설교입니다.

13. 저도 설교를 위하여 성경을 주석합니다. 누구 못지 않게 합니다. 그러나 딱딱한 주석을 그냥 30분 정도의 설교 시간에 하면 교인들이 소화를 못시키기 때문에 그것을 잘게 부스어 설교합니다. 본문을 잘게 부스어 교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하려면 오히려 주석이 더 깊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설교를 준비하는데 사람들은 제가 성경을 주석도 하지 않고 본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14. 내 이야기를 설교 시간에 참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제 본심과 목적은 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데 잘못하면 하나님의 이야기 즉 말씀이 빠지고 그냥 내 이야기가 되기 쉽다는 비판은 제가 늘 주의하여야 할 약과 같은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15. 이번에도 그냥 제 변명이었습니다. 이 변명 때문에 제 설교를 듣고도 하나님의 말씀과 마음을 잘 이해하여 은혜를 받는 교인이 한 사람이라도 더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변명만 하지 않고 이번 기회에 제 설교를 다시한번 스스로 비판해 보고 문제점을 찾아 시정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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