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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사] 어머니의 절규3-왜 가족인가?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시고 가족(형제)을 주신 이유
김동학  |  lovekorea04@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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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2월 09일 (금) 00:00:00 [조회수 : 2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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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내가 당당뉴스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어언 3년, 이제 2주년을 맞는 이 한계선에 선 언론에 다시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건 나의 이야기보다 더 소중한 '우리'의 이야기요, 가족의 이야기며, 민족사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얼마나 더 이 땅에 계실 지도 모를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의 이야기를 부끄럽지 않게 휘갈길 수 있는 것은 나의 삶이 '당당'하다거나 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후일을 살아갈 세대(Generation to come,다음 세대)에 작은 비추임이 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다. 일제 시대도 전쟁도 '보리고개'도 경험하지 못한 나와 후배들의 세대는 조부모와 부모의 세대를 통해 고난의 역사를 알고 다시는 타민족의 모예로 살거나 이념의 노예로 살면 안된다는 '자유'의식에 대한 자각을 주기 위함이다. 유대인은 이 점에 있어서 얼마나 철저했는가?를 성경에서 찾고 그들의 국민(초등)학교 2학년 교과서에도 찾아보라!!!

서론이 길어졌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본래 어떤 의도나 목적이 있지 않다. 그냥 붓가는대로 마음가는대로 써내려가는 이야기글이다.

집 안에서 나는 막내로서 귀염을 받았고 어머니의 품에서부터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자장가, 동화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순수(純粹)함과 천진함을 몸으로 배우며 자랐다. 그런 어린 시절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어진 마음(仁慈)을 닮았고 어머니의 표현대로 하면'남과 한번도 다투거나 싸우지 않는 평화 정신'을 삶에서 물려 받았다. 형들도 참 답답하리만큼 남과는 평화를 유지하려든다. "강원도래요!" 했던 라디오 사회자 김혜영씨가 흉내낸 억양처럼 '감자바위'-강원도에는 감자가 많고 산과 바위가 많아서 생긴 말-들은 타인의 도전과 공격을 은근히 웃음으로 넘기는 삶의 지혜를 가졌는데 이것이 내가 받은 집안의 혈통이라면 혈통이다.

예수 이전에 율법이 있었다

어떤 선교사가 한 무인도에 갔을 때 그는 놀랐다. 그가 성경과 미주 문화-기독교문화- 속에 귀에 따갑도록 들었던 십계명과 율법들이 이미 토착민들-남태평양의 토인이라고 비문명인이라고 보던 그들- 마음 속에 새겨져 있었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으로 만든 모든 인간의 마음-心碑(심비) 또는 육비(肉碑)-에 성경이 도달되기 전에 율법을 새겨 놓으셨다. 이것이 우리가 기독교를 들고 갔을 때, 어떤 문화권에서나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는 바탕이 되고, 모든 인간은 구원을 열망하며 육체의 한계-죽음-을 벗어나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전도서)을 가진다.

따라서 기독교의 복음이 도달되지 않았던 고려 시대나 조선시대,한 영웅 이순신에게서도 마치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必死卽生)'는 말씀이 선포될 수 있었고.... 그러니까 예수(기독교)가 이 땅에오기 전에 죽은 선조들의 구원 문제는 '율법'과 '그들의 행위'에 따라 하나님이 선악간 판단하시리라. 그런데 우리 세대는 불교,유교,도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중국과 기타 강대국들의 영향을 받으므로 우리 민족이 가져야 할 '고유한 것들'-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만 주신 어떤 것(굳이 '문화'라고 표현하자면 그런 것)-을 잃었다.

가족이 힘이요 희망이다

오전에 속초시립도서관에서 제임스 김이란 한국계 미국인이 자기의 아내와 자식을 구하기 위해 눈 속에서 구조를 요청하다가 결국 자신은 얼어 죽고 두 사람을 살렸다는 글을 읽었다. 그 아내가 그 눈 속에서 9일이나 버틴 것은 남편에 대한 희망과 기대때문이었다고 미국 경찰은 밝혔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혼자사는 건장한 남자보다 같이 사는(삼사대가) 大가족의 나이드신 분들이 더 오래산다는 보고가 있다는 이야기가 실렸다. 자녀들도 술이나 마약 의존도가 현격히 낮으며 환자가 있는 경우 진통제의 투여 횟수도 가족이 있어 정성스런 간호를 하는 사람이 훨씬 적다는 사실도 적시되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나 혼자 청주에서 지낼 땐 정말 하루하루가 살기 힘든 지옥같았고 외로웠으며 희망이 없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또 오랫만에 형님과 함께 식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마음을 여니 살 기운이 생기고 힘도 생기는 걸 보면 정말 가족의 힘이란 신기에 가깝다.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 그리고 형제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라고 과감히 말하고 어떤 교회 주보에는 "가정같은 교회,교회같은 가정"이란 표어도 있다. 그러나 난 청주에 살면서 이런 느낌을 가지기 보다는 정말 혼자이고 외로우며 하나님외에는 나를 알아주고 인정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동쪽-불가(佛家)에서 동쪽은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와 보니 내게 어머니도 계시고 형제들이 있슴을 늦게나마 자각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깊이 뼈에 사무치도록 깨닫는다.

구약성경 창세기에는 "이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룰찌라"고 말씀하셨고 아담이 하와와 함께 있을 때 정말 좋았고 동산에 평화가 이루어졌다.

가정은 하나님이 창조한 기관이고, 가족은 그가 어떠하든-종교와 사상이 달라도-하나님이 허락한 관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독교를 전제로 해서 형제들(가족들) 가운데 믿지 않는 사람이나 타종교인들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품어야 한다. 참 어려운 일이지만 한 집안에 각각 다른 신앙을 가졌어도 서로 존중하고 살 수 있다면 그 곳이 천국이 아닐까? 서로 다투고 찌른다면 그것 역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니다.


비신자 가족들을 품어야

그렇다고 그들을 그냥 그렇게 두어서는 안되며 가정에서 우리는 가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도리를 끊임없이 전파하고 알려 주어서 그리스도가 중심인 가정, 온 가족이 그를 영접하여 하나된 그리스도 안의 형제로 새로 태어나게 해야 한다. 이번 설날에도 다른 형태의 신앙이 부딪힐 때 인내로서 비신자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출애급기 20장에는 십계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며 "나 여호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저주가 3~4대에 이르고 나를 사랑하는 자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기록하셨다. 케네디가의 저주-존 F.케네디 이후 3~4대가 의문의 자살 혹은 사고사로 죽음-가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를 믿는 가정에서 누리는 천대(天代)의 축복을 말하려면 천 날도 부족할 것 같다.....

도올 김용옥교수에게도 이런 축복의 결과가 내려간 것은 아닌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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