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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라이 마허 vs 김동호 목사
황규학  |  hpastor@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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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2월 08일 (목) 00:00:00 [조회수 : 3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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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라이 마허 vs 김동호 목사



설교의 목적
 
설교의 목적은 성경에 문자로 농축되어 있는 하나님의 계시의 영감을 잘 풀어헤쳐서 그 영감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그 영감을 사람들에게 뿌려주는 것이다. 설교는 인간의 목소리라는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감된 계시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져가는 것이다. 그 영감된 말씀을 사람들에게 가져가고 사람들이 그 영감된 계시의 말씀에 접촉하게 될 때,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쯔빙글리의 제자 블링거(Bullinger)에 의해 작성된 제2 제네바신앙고백(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A.D. 1566 )에서 “하나님 말씀의 선포는 바로 하나님 말씀 자체이다”라고 했다. 즉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설교는 경험적 사실이 아니라 성경자체를 증언하는 것이다.
 
도구로서의 설교자
 
여기서 설교자는 수단으로서 역할을 한다. 성경이나 설교가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설교자가 도구이다. 보다 세밀하게 접근하면 설교자의 목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이다. 칼빈은 "설교는 그리스도와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주님의 선물이며, 그 자체는 죽어야 할 인간의 목소리가 영생을 얻도록 교통할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하심이라"고 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영감, 즉 하나님의 호흡(God -breathed)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성경이 도구가 될 수 없고 성경에 농축된 하나님의 호흡의 기운을 청중들에게 가져가는 설교자의 목소리가 도구가 되는 것이다. 도구로서 설교자의 목표는 교인들이 성경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영감의 바다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호흡을 마음껏 마시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정신을 만끽하여 구원의 은혜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의 덩어리
 
성경은 단지 하나의 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이 문자 안에 농축되어 있는 영감의 덩어리이다. 그 영감은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문자라는 방식을 택했을 뿐이다. 하나님이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인간의 몸을 입고 예수로 나타낫듯이 말이다. 그래서 문자이면에는 하나님의 호흡이 있고, 예수 이면에는 하나님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의 결집체이기 때문에 설교의 도구나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의 목적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감의 결집체는 설교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는 것이다. 설교학자 루돌프 보렌은 “성서에 관해서 설교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 책을 덮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서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침묵을 깨려면 성서자체가 말을 하고 그 말씀이 들려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설교의 행위가 있을 때 성서의 영감이 흘러나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존 칼빈, 설교자는 하나님의 입, 바르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복음이 선포될 때” 즉 설교할 때, 칭의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칼빈은 설교자를 하나님의 입이요, 하나님의 대변자라고 말하였다. 바르트는 설교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 말씀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것은 위탁에 따르는 교회의 장소에서 이를 위하여 부름받은 자에 의해 자유로운 언어로 행해지고, 또한 현재의 인간들에게 관계하며 성서 본문의 해명과 봉사의 요청 아래서 행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지위를 성경으로부터 가져오는 것이며 설교가 인간의 주관적 얘기나 하나의 목소리가 아닌 이상, 하나님의 메시지, 즉 성경의 말씀을 선포하는 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칼빈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 씌어진 말씀 성경, 선포된 말씀인 설교였던 것이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칼빈은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입이며 그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고한 신앙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한 설교란 성경이 충실히 그 본래의 의미를 찾아 설명되어지고 가르쳐질 때, 하나님의 권위를 갖는 하나님이 말씀이 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성경강해를 최고의 영광으로 알았던 것이다. 칼빈은 설교할 때 스스로를 하나님의 대사로 여겼다. 그러므로 설교는 단순히 예배의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든가 교회의 임무들 가운데 하나 정도가 아니라, 그것은 일종의 하나님의 현현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복음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포될 때, 그것은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고 선언했다.  
 
쉴라이마허의 설교관, 설교는 거룩한 감정을 청중에게 이입하는 것
 
그러나 쉴라이 마허의 설교관은 좀 다르다. 그에게 설교는 개인적으로 경험된 그리스도와의 삶의 교제를 전달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의 속성이 설교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과 신뢰가 설교에서 설명된다.
 
쉴라이마허는 “설교자가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 감동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다른 사람에게 공통된 명상의 한 대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이며, 또한 그들을 자기가 귀화한 종교의 땅에 이끌어 들이고, 그와 같이 해서 그들에게 자기의 거룩한 감정을 이입(移入)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신적인 것을 말하고, 회중은 거룩한 침묵 속에 그의 영감을 받은 말씀 뒤를 따른다”고 주장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설교자는 모든 공통된 감정에서 움직이기 시작하고, 종교의 현실과 신비에 관하여, 자기의 고향에 관하여, 또한 감정의 주관적 요소와 직관의 객관적 요소와의 결합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고 주장하였다.
 
쉴라이마허 설교에는 텍스트가 필요 없어
 
여기에는 텍스트가 필요 없다. 주관적 감정이나 해석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텍스트가 필요하다면 자신의 주관적 설교를 도와주는 수단으로서 작용하는 것이다. 자기가 느낀 생각과 감정을 청중들에게 이입시키면 설교의 목적을 다 수행한 것이다. 이럴 때 성경은 설교의 도구로서 역할을 한다. 바르트는 슐라이에르마허의 설교의 정의에 대해 이렇게 질문한다.  “그렇다면 감정이라는 이 내재적인 바다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어디에 의연히 있는 것일까" 자기에게서 나와서 또한 자기에게로 돌아간다는 일은 인간 세계의 일이다”고 말이다. 이처럼 자기 주관적이고 자기 감정이입은 더 이상 설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말장난에 불과할 따름이다. 
 
김동목사의 설교관, 성경은 설교의 도구
김동호 목사의 설교관으로 성도들이 술렁이고 있다. 김목사는 2월 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자신의 설교관을 피력하고 있다.
 
“나는 설교를 성경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으로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말씀하는 것과 성경으로 말씀하는 것은 다르다. 성경은 설교의 목적이 아니라, 설교의 도구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이다. 때문에 나는 설교 중에 성경을 설명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김목사는 자신의 설교로서 성경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성경이 설교의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설교 중에 성경을 설명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있다고 고백한다. 설교의 자기 주관화이다. 그는 자신이 성경에 대해서 느낀 주관적 감정이나 체험담을 성도들에게 이입시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성경을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교인들에게 그대로 이입시키는 것이다.
 
김목사의 주관적인 성서관
 
그의 책 ‘생사를 건 교회개혁’(49쪽)에 보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 40년 만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지를 않고 싸워서 일주일 만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 싸움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싸움이고 내가 싸우려고만 하면 힘과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기 때문에 담대히 싸우려고 한다”고 했다. 여기서 성서해석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하나님의 뜻에 입각하여 모세도 못들어 간 땅을 자신은 일주일 만에 들어가고 그 싸움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싸움이며 자신이 싸운다면 하나님이 힘과 능력을 주신다고 주관화하고 있다. 이러한 김목사의 감정과 느낌이 그대로 성도들에게 이입되는 것이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말씀에 대해서도 김목사는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를 가졌기 때문에 천국문을 그가 닫기도 하고 열기도 한다고 해석을 하였다. 뿐만아니라 그는 그 열쇠를 우리도 가지면 우리도 이 땅에서 천국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고 주관적으로 해석을 한다. ”그와 같이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상으로 주시는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열고 닫으며 사는 복을 받고 사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기독교 사상, 2003년 11월호).
 
김목사의 설교는 모순적, 비성서적, 주관적인 해석
 
지면부족으로 더 언급할 수 없지만 김동호목사 설교는 모순과, 비성서적이며, 자의적이며 주관적인 해석 투성이 이다. 이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성경을 자신의 설교도구로서만 활용하기 때문이다. 결코 성경이 목적이 아니다. 김목사가 성경을 목적으로 두지 않고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한, 김목사의 모순적이며, 비성서적인 설교내용은 계속 흘러나올 것이다. 그의 관심은 자신의 주관적이며 어설픈 해석을 아무것도 모르는 교인들에게 이입시키는 것이다.
 
이는 김목사의 설교관을 자유주의 신학자인 슐라이마허에서 찾을 수 있다. 슐라이마허에게 성경이라는 텍스트가 필요 없었다. 그에게도 성경은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청중들에게 이입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 김목사는 방향성과 내용 없는 주관적 감정에 입각한 성서해석을 멈추고, 성경을 도구가 아니라 목적으로서 대하여 할 것이다.
 
언어의 오염을 멈추고 성서의 말에 귀를 기울이어야
 
우리시대는 대통령으로부터 학자까지 비상식적인 언어의 남용으로 국민들은 심각한 언어의 오염속에 빠져있다. 목사까지 가세해서 말로 교인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면 우리시대는 언어의 홍수에 숨이 막혀 헤어날 길이 없게 된다. 따라서 김목사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언어의 유희나 트릭, 수사학, 주관적 성서해석으로 설교할 것이 아니라 내면의 성찰이나 깊은 신학사상, 성경의 원칙에 입각하여 대형교회의 목사답게 무게있는 설교를 해야 할 것이다. 성경이외의 얘기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성경은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기 때문이다. 김목사의 설교를 위해서 성경이 도구로서 존재할 수 없고 하나님의 호흡의 결집체인 성경의 전파를 위해서 김목사가 도구로서 존재해야 한다. 칼빈의 얘기는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나는 성경이 가는데까지만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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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언자 (121.142.65.104)
2007-02-10 10:23:56
'높은뜻숭의교회'의 교인들이 과연 성경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높은뜻숭의교회'에서 김동호 목사님에게 3-5년 동안 성경으로 가르침을 받은 교인들이, 과연 성경은 얼마나 많이 바르게 깨달아 알고 있는지, 한번 성경 말씀으로 질문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나 '신천지예수교(재림주 이만희)'의 교인들과 성경으로 대화를 나누면, 성경을 아는 지혜와 구재로 능히 물리칠 수 있는 수준이 되는지 어떤지, 한번 성경 말씀으로 질문하여 알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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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언자 (121.142.65.104)
2007-02-09 11:24:17
“말씀(성경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나는 설교를 성경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으로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말씀하는 것과 성경으로 말씀하는 것은 다르다. 성경은 설교의 목적이 아니라, 설교의 도구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이다. 때문에 나는 설교 중에 성경을 설명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라는 목사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과 예수님 앞에서 단언하건대, 이런 목사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증인이 결단코 아닙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의 거짓 증인이며, 거짓 목사입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성경에는 “말씀(성경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신 말씀(성경 말씀)을 “성경(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의 목적이 아니라, 설교의 도구이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이다.”라고 하며 목사가 하나님의 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분은 말씀(성경 말씀=하나님)보다 자신의 생각을 더 높이는 목사입니다.

교만한 생각에서 돌이키시고 바르게 깨달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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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언자 (121.142.65.104)
2007-02-09 11:06:56
잘들 설교하십니다.
잘들 설교하십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의 모세도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말씀은 도구일 뿐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말씀(모세의 율법)과는 다르게 전하여야 한다.”라고 해야 옳았습니까?

그리고 신약시대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 받은 말씀(복음=지금은 성경 말씀)은 도구일 뿐이고, 우리는 다르게 전하여야 한다."라고 하여야 옳았습니까?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이런 말씀들은 어떻게 해석할 것입니까?

계22: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계22: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갈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1:8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갈1: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그러나 우리나(사도 바울과 동역자들이나=지금은 성경을 전하는 목사와 장로와 전도사와 신학교수 등)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교파의 교리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등)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사도 바울과 동역자들이)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사도 바울이)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지금은 목사와 장로와 전도사와 신학교수 등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교파의 교리와 세상 철학과, 세상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이야기와, 예화집에서 뽑은 예화 설교 등)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성경을 전하는 목사와 장로와 전도사와 신학교수와 모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지 않고 복을 받으려고 하신다면, 성경 말씀을 깊이 상고하여 설교와 성경을 가르치는 것에 삼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예수님께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책망을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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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61.41.60.29)
2007-02-09 08:23:06
황 목사님에게
“나는 성경이 가는데까지만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서 멈춘다.”의 원조는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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