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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이상(理想): 성 프랜시스와 웨슬리
노종해  |  ro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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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11월 13일 (월) 10:29:24
최종편집 : 2023년 11월 15일 (수) 23:09:53 [조회수 :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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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슬리의 이상은, 신약성서 시대의 "최초 성도의 모임 공동체

     웨슬리는 어떠한 교회를 바람직한 교회로 보았을까? 웨슬리는 교회의 이상(理想)이 신약성서 시대 교회인 “최초교회”(Primitive Church)에 있었다. 웨슬리는 3-4세기의 교회인 “초대교회”(Early Church) 보다 더 근원적인 “최초교회”에 초점을 맞추었다. 즉 사도행전 적인 신약시대의 교회로 그 영적인 특성(Spirit)뿐 아니라, 교회제도(Order)와 형태(Form)까지도 “교회의 이상”으로 삼았다.

     호와드 신더(Howard A. Snyder)는 웨슬리가 죠지아에서 원초주의(Primitivism)로 변천 되었고, 특히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회심체험 이후에 “최초교회”(Primitive Church)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지적하고 있다.(H.A. Snyder, “The Radical Wesley and Patterns of Church Renewal”, Intervarsity,p79.)

 

성  프래시스는 웨슬리의 이상(理想)

 

   
▲ 노방 전도 설교하는 성 프랜시스!

 

최초교회적인 감리교회의 이상은 기독교 역사 속에서 꾸준히 일어났다.  특히 중세기에서 감리교의 이상적인 운동으로, 성 프랜시스(St. Francis)의 운동에서 교회의 이상으로 보았다. 성 프랜시스의 운동은 바로 웨슬리의 이상(理想)이었다.

즉,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설교하며, 평신도운동과 순회전도, 작음 모임을 통해 완전(Perfection)의 길을 찾고, 병든 자, 가난한 자, 감옥에 갇힌 자, 눌린 자들도 정상적인 기독교인(Normal Christian)의 생활로 채우게 하도록 한 점에 있다.

데이비스는 웨슬리에 있어서, 프랜치스칸(Franciscans)이 중세 Methodism의 실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은 “형제단교회”(the Church of the Brethren)를 일으키게 하였고, 후에 보헤미안의 후스(Hus)에 영향을 주어 모라비안 형제단 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참조,Davies, pp16-23)

 

웨슬리의 캐토릭에 보낸 편지

 

   
▲ 포루지웅콜라-프랜시스의 "작은 형제회"가 출범 된 곳-아씨시의 성 마리아 성당 내!

 

웨슬리는 1749년 “로마 카토릭에 보내는 편지”에서, “참된 개신교도는 하나님을 믿으며, 그의 자비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자녀로서의 경외심을 가지고 두려워하며, 전심전력으로 그를 사랑하는 자이다. 그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그의 입술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를 부르며,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그의 성호와 말씀을 높이며, 그의 평생동안 그를 진심으로 섬기는 자이다”고 하였다.(p395) 또한 “참된 개신교는 그 이웃을 사랑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며,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신 것처럼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가진 자“라고 토로하였다.

      웨슬리는 천주교에 대해서 ”나의 형제여“라 부르며, ”우리는 무엇이나 피차에 천국으로 인도한다고 믿는 일에 서로 협조하자,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하나님 안에서 서로 격려하여 주는 것으로 기쁨을 삼자, 뿐만 아니라 우리 서로 삼가 해서 사랑의 종교까지 못 미칠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그릇됨은 없는 가 살피자.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하나님께서 위로 향하여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얻기 위하여 달려가며,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믿는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 더불어 평화를 유지하며, 우리의 속죄주가 되신(롬5:1-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며, 또한 우리에게 내리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고루 비춰지기를 절원하는 바이다“고 간곡히 당부하였다.(상게서, p399)

 

나가며:우리는 구원의 사자(嗣子)

 

   
▲ 시장사거리에서 야외 복음전도 설교하는 웨슬리


     웨슬리는, “나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교회를 그 앞에 모으신 것을 믿는다. 그리스도는 구원받을 자들을 계속적으로 이 교회에 증가하게 하셨다. 이 우주적 (공)교회는 모든 시대에 있어서 모든 나라에 확대되는 기관인데, 모든 교인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의 사귐으로 인해 거룩하게 된 존재들로서, 그들은 구원의 사자(嗣子)들을 끊임없이 봉사하는 천사들과 이 땅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산 지체들과 또는 믿음 안에서 두려운 가운데 세상을 떠난 성도들로 교제를 가진다”고 하였다.(웨슬리, “A Letter to Roman Catholic”, 논문집 pp394-395)

(* "사자(嗣子)"는 "대를 이을 아들"이라는 뜻)

 

   
▲ 웨슬리의 감리회(Methodist Society), 성도의 모임. 신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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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8.48.116.237)
2023-11-13 12:30:19
웨슬리 비판 - 原始敎會(Primitive Church)는 완전 理想鄕(유토피아)이다!
기독교 形式의 기초는 바울에서부터 출발한다. 기독교는 사실상 바울敎라고 하기도 한다. 웨슬리가 바울敎의 형식에 뭔가 답답함을 느껴 바울 이전의 형식을 찾고자 노력했는데 그가 찾고자 노력한 것만큼은 인정한다.

원시교회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막연하고 추상적인 느낌은 있었던 것 같은데 웨슬리가 무엇을 찾았는지 확실하게 釋明하지는 못했다. 바울과 웨슬리는 인격이 다른 만큼의 차이 이외에는 하나님이나 예수님을 바라보는 시각도 별 차이가 없다. 강조점만 조금 차이 날뿐이다. 그가 하는 말도 바울의 말, 느낌 등과 별 차이가 없다.

그가 찾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하는 데 대해서는 우리에게 명백한 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은 있다. 그렇다면 그 결과물로 유추해볼 수밖에 없다.

웨슬리가 靈感을 주었다는 모라비안 형제단의 경우 천주교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했는데 예수님 역시 율법추종자(유태교)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했다. 율법추종자(유태교)에 대해선 사랑은커녕 “벳세다야, 고라신아!”와 같은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예수님 역시 아무나 사랑하라고 한 게 아니었다. 독사새끼마저 사랑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예수님은 ‘일반사람’을 사랑하라고 했으나 ‘독사새끼’ 등에는 예외를 두었고, 모라비안 형제단 역시 그들과 믿음이 전혀(?) 다른 천주교에 대한 적개심도 대단했다. 웨슬리 가르침의 결과도 바울 가르침의 결과와 다를 바 없다. 물론 현재 감리회의 지중지란도 결국 웨슬리 가르침의 결과다.

원시교회에서 설교한 예수님이 무조건 사랑을 추구했다는 건 예수님에 대한 오해다. 어느 누가 지어낸 게 아니라 성경책에 그대로 적혀있다. 예수님은 마음에 들지 않는 율법주의자 등에게 독사의 새끼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인간은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인간 사이에서 학살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는 게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이게 진실인데 그저 예수님은 무조건 내리 사랑이라고 예수님을 심히 왜곡하고 있다.

웨슬리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모라비안 형제단의 경우 예수님이 율법주의자에게 이를 간만큼이나 천주교에 이를 갈았다. 즉 웨슬리 역시 예수님의 한 측면인 인류 사랑을 무척 강조했지만 그 결과는 모라비안 형제단... 바울의 천주교나 별 차이가 없다.

예수님의 다양한 측면 중 인류 사랑이라는 한 측면에 푹 빠져 기독교인이 입만 열었다하면 날이면 날마다 인류 사랑을 노래 부르지만 그 결과는 학살이요 전쟁이다. 결과가 이렇다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바울이다, 웨슬리다 하면서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알면 알수록 모순점만 늘어나고 더욱 더 갑갑할 따름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닥치고 믿어! 이게 답인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 예수님은 ‘무조건 사랑’이라고 나팔 부는 종교인이 아주 이상하게 보인다. 예수님의 여러 측면 중 어느 하나만을 딱 골라서 이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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