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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칼럼] 내적 감수성과 연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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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6월 08일 (목) 15:50:32
최종편집 : 2023년 06월 08일 (목) 15:56:12 [조회수 : 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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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 감수성과 연대의 힘

 

쓰즈키 스미에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한국인 외할머니와 일본인 외할아버지

   
▲ 스즈키 쓰미에

올해 칠순, 돌이키면 젊은 시절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자신이 있다. 재일 코리안 외할머니를 둔 나는 일본 사회에 유무형으로 존재하는 조선인 차별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외할머니는 식민지 시기 조선으로 건너온 일본인 할아버지와 결혼했다. 양측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그들에게 태평양전쟁과 일본의 패전, 일본으로의 이주 등 험난한 생활이 이어졌지만, 조선인이었던 할머니에게는 더욱 가혹했다. 일본 사회 속에서 민족차별을 당하면서도 조선민족의 긍지를 잃지 않았던 외할머니를 나는 존경하고 사랑했다. 그녀의 생활 방식은 꼿꼿하면서도 유연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과 결혼해 식민지 시기부터 평생 일본 국적이었던 외할머니는 어떨 때는 자신을 조선인이라고 하고, 또 어떨 때는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하며 민족과 국적을 교묘하게 구분해 썼다. 몸에 가해지는 차별의 무게를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덜려 한 것이 아닐까? 이는 그녀가 일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지혜였는지도 모른다.

 

조선인 차별

어려서부터 조선인 사회와 일본인 사회를 오가던 어머니에게서 어느 특정의 민족 정체성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춘기에 도일한 그는 조선민족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에 조선인 차별이 횡행하는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야 했다. 일본인 외할아버지는 자유주의자로 외할머니의 조선인 민족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온후한 성격으로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을 지탱했지만 한편으론 전쟁이란 쓰라린 경험을 한 ‘특공대 생존자’이기도 했다.

 

“조선인의 어디가 나쁘냐!”

어린 시절의 강렬한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동네 아이들은 내게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조선인’이라는 말을 던지곤 했다. 이를 알게 된 할머니가 열화와 같이 화를 내며 그 아이 부모에게 “조선인의 어디가 나쁘냐!"고 항의하곤 했다. 부조리한 일에 참지 않고 항의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나중에 나와 연결되는 피차별 부락 사람들이나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자, 여자 근로정신대 피해자, 한센병 회복자, 한국인 피폭자들이 부조리와 싸우는 모습과 겹친다.

 

조선인에 대한 긍정과 부정

이러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나는 외할머니가 보여주는 민족성(조선 요리나 옛날이야기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조선인 차별에 오염되어 간 것 같다. 조선인을 비하·배제·차별하는 차별관은 사람들의 대화나 대중매체 등 여러 문화적 매체를 통해 유무형의 형태로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자리잡았으며 그런 공기를 마시면서 내 속에도 조선인에 대한 인식이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채로 복잡하게 자리잡았던 것 같다.

 

친구관계에 선을 긋다

나는 스포츠를 잘하고 활발했지만 친구는 많지 않았고 고등학교 시절까지 절친이라고 말할 친구는 없었다. 어느 정도 친해져도 밖에서는 가족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조부모님은 고깃집을 운영하셨고 나도 가끔 도와줬기 때문에 우리가 조선인 가족이라는 것은 자명했다. 당시 일본에서 고깃집이나 파친코 등은 대부분 조선인이 했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 나는 이웃이나 동급생, 그 부모들도 내 가정환경을 알고 있으리라 넘겨짚고 친구 관계에 무의식적으로 선을 그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타자화하다

또한 조선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끊임없이 마주하며 나는 피차별자로서의 자기 입장을 의식함과 동시에 동급생들보다 공부를 조금 잘하거나 스포츠를 잘한다는 우월의식을 가짐으로써 스스로를 타자화 하였다. ‘차별은 자기가 약하기 때문에 받는 것이고, 나만 정신차리면 상관없다’라는 생각이 마음의 바탕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습성’때문에 나는 친구가 적었던 것 같다.

 

조선인에 대한 차별관이 자리잡다

조선인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뒤섞인 나의 복잡한 태도에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73년 내가 대학 3학년 때였다. 교육사회학 교수가 수업 중에 "조선인은 도둑이 많다"고 차별 발언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내심 섬뜩함을 느꼈다. 직접 내게 한 발언은 아니더라도 다른 지역 출신 동급생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가능하면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 - 나는 조선인의 혈통이라는 당사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상반된 두 가지 생각이 빙빙 돌면서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그렇지 않다. 우리 할머니는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오셨다’고 생각하며 그 발언을 부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무런 근거 없이 “조선인 일반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그 발언에 영합하는 마음도 있었다. 공기를 마시듯 일본사회에 자리매김한 조선인에 대한 차별관이 내 안에도 자리잡아 스스로를 제3자처럼 타자화하는 시선을 가졌다.

 

한 친구의 단호한 지적

그 순간 한 친구가 "선생님, 지금 그 말은 차별 발언이에요" 라고 단호하게 지적했다. 그 학생은 교내 해방연구회(부락차별 등 인권문제를 연구하는 동호회) 멤버였다. 그 이후 나와 그녀 부부는 50년이 넘게 인연을 맺고 있다. 대학 측에 대한 규탄회와 부락해방동맹(부락차별을 없애기 위한 운동단체) 활동가를 강사로 한 교내 학습회나, 이후 인생의 반려자가 된 2년 선배이자 해방연구회 멤버였던 남편과의 만남 등의 기회를 통해 나는 부락해방운동이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우며 사회 모순인 차별구조를 없애고 민주적 사회를 지향하는 대중운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 존엄성을 내세우는 부락해방운동

부락해방운동은 차별을 개인이 가진 사고방식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모순으로 보고, 피차별자가 스스로 일어섬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되찾자고 주장했다. 이 때의 경험은 자기 정체성을 갖지 못하고 사회에 등을 돌렸던 나 자신에게 혹독한 질문을 던졌다. 왜곡된 우월감에 의지해 삶을 살아가려던 나의 가치관을 크게 흔들어 사회와 자신의 관계를 다시 숙고해보려는 자기변혁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나서다

이후 나는 히로시마에서 교사가 되어 인권·평화 교육을 적극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피폭지 히로시마의 전쟁 피해 면모만이 아니라 아시아 침략 거점이었던 군도 히로시마의 문제도 교재화하면서 한국인 피폭자와의 교류를 하였다. 인권이 바탕이 되는 성교육 과정을 하며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과의 교류도 시작됐다. 감염병 교재화 과정에서는 한센병 회복자들과 교류하며, 한국 회복자들과도 연결됐다.

 

자기 변혁 과정

수요시위에서 일본 정부에 공식 사과와 배상을 호소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조선인 차별의 부조리를 호소하는 내 외할머니의 모습과 겹쳤다. 사회구조의 모순, 잘못된 정치판단에 대해 인간의 존엄을 걸고 싸우는 모습에서 인간의 숭고함을 보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함께 하고 배우며 살아온 동안 많은 친구들이 주변에 있었다. 일본에도, 한국에도. 때로는 의견이 엇갈려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러면서 우리의 결속이 강해지기도 하였다. 지금 나는 한국의 성공회대학교에서 그간의 자기 변혁의 과정을 다시 돌이켜 보며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기사는 계간 ‘치유’에 실렸습니다>

https://blog.naver.com/yunhichoi1/223082137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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