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콩 심을 준비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3년 06월 08일 (목) 00:20:21 [조회수 : 379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콩과 들깨를 심을 시기다. 이주 전 초파일 연휴 전날 급하게 밭을 만들었다. 봄이 오고 몇 번의 비를 맞은 뒤 풀과 야생초는 숲을 이룰 정도로 밭 전체를 뒤덮었다. 올해는 망초가 많이 피었다. 잎이 여릴 때는 뜯어서 무침을 해 먹기도 하는데 내 입에는 잘 안맞았다. 이웃들은 수시로 뜯어다 먹는다고 하는데 시금치도 아니고 취나물도 아닌 것이 잘못 삶으면 풋내가 나거나 질겨져서 거의 양념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한시간 동안 트랙터를 몰았다. 밭이 워낙 경사진 곳이라 까딱 정신을 놓으면 옆으로 쓰러질 것만 같다. 한참 비가 왔어도 트랙터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올라왔다. 가뭄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강수량이다. 트랙터가 지나갈 때마다 밭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중간에 봉긋 솟아오른 돌들을 찾고 줍기 위해서다. 수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돌들을 고르고 골랐어도 여전히 돌들 천지다. 

간혹 큰 돌들이 트랙터 날에 갈리었다. 그럴 때마다 텅텅 소리가 났다. 그러면 여지없이 밭으로 달려간다. 방금 간 땅이라 흙 표면은 포실포실하다. 고운 흙이 10센티 정도 만들어졌다. 돌을 주우러 달려가면 고운 흙 속으로 발이 푹푹 빠졌다. 이럴 때 축지법(?)을 쓴다. 가능한 가볍게, 발가락에만 힘을 주고 발바닥은 최대한 세운다. 그리고 달리면 발이 빠지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돌의 크기는 다양하다.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손에 잡힐 만큼 충분히 줍는다. 큰 것을 먼저 집고 그 위에 비슷한 돌들을 차례대로 올려놓으면 손은 두 개지만 다섯 개 정도는 주워올 수 있다. 돌무게가 있어 걸을 때마다 흙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조심, 돌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느라 신경을 쓰다보니 더 줍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 트랙터가 지나가는 자리를 한참 뒤쫓다보면 어느새 이마에선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린다. 

풀숲을 이뤘던 억센 풀들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면 밭은 충분히 갈려진 것이다. 그런 다음 위에서부터 아래로 두둑을 만든다. 좌우로 골을 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것은 아까도 말했듯이 경사가 심한 밭이라 트랙터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질 수 있어 상하로 만든다. 또 경사가 있는 밭은 상하로 이랑을 만들어 물길을 터주는 효과도 주는 셈이다. 그런데 매우 아쉬운 것이 있다. 위아래로 두둑을 만들면 매번 줄이 삐딱했다. 어떤 것은 초승달이 되려다 말았다. 활처럼 휜 두둑에 비닐을 덮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아찔하다. 그래도 올해는 신경을 조금 더 썼기에 덜 휜 두둑이 만들어졌다. 남의 손을 빌리는 마당이라 이것도 감지덕지다. 

콩 심을 준비, 들깨를 심을 준비가 되었다. 이제 비닐을 씌우면 된다. 초파일이 토요일이었고, 주일과 대체 공휴일까지 농사짓기 아주 좋은 연휴였다. 그런데 이게 웬 말인가! 비가 삼일 내내 내렸다. 쉬지 않고 내렸다. 때로는 세차게, 때로는 가늘게, 때로는 후두둑, 쉼 없이 내리는 빗줄기는 나의 속을 태웠다. 짜증이 제대로 밀려왔다. 삼일의 황금 같은 연휴에 힘을 써서 비닐을 씌우고 콩을 심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쯤 그 밭엔 콩이 노랗게 올라와 춤추고 있었을 것이다. 아, 이런 상상이 비로 인해 확 깨졌다. 우울했다. 하늘을 쳐다보면 이마가 저절로 일그러졌다. 입에서는 한숨이 나왔다. 비가 소강 상태일 때 밭으로 올라갔다. 고랑에 발을 들였다. 발이 움푹 꺼졌다. 발을 빼고 뒤로 물러섰다. 발자국만 남겼다. 속상했다. 

하늘이 맑은 날이 찾아왔지만 공교롭게 그 주간은 훈련원 일로 밭은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나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시려고 소속교회의 목사님과 사모님이 맛있는 식사로 나를 위로해주시기까지 했다. 결국 비닐은 이번주 주일부터 어제 수요일까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부터 어둠이 밀려오기 전까지 열심히 씌었다. 초인의 힘이었다. 현충일에는 목사님과 사모님이 오셔서 도와주신 덕분에 그나마 어제 마칠 수 있었다. 혼자 할 때는 3시간 동안 4개를 덮었는데 셋이 하니 눈 깜짝할 정도로 진척이 빨랐다. 아, 혼자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두셋이 협력할 때의 일은 세 배가 아니라 거의 열 배 이상 차이가 나는 듯 느껴졌다. 두 분의 손길이 천군만마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였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다. 비가 내리기 전에 부리나케 콩을 심을 예정이다. 심고 난 뒤 비를 맞으면 다음 주에는 500평의 너른 밭에 콩이 머리를 내밀지 않을까.         

황은경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9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