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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몇년동안 읽었던 성경책 이야기...
김형희  |  kkkk000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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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1월 12일 (금) 00:00:00 [조회수 : 2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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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어머님이 성경책을 한 권 보내 주셨었다. 술에 취해 사고를 치고난 후 수인이 되어 엄청난 충격속에 고통스러워 하면서 잃어버리고 살던 주님을 다시 찾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보고 싶을 때 마음껏 볼 수있는 성경책을 한 권 가지고 싶어서 어머님께 성경책이나 한 권 보내 달라고 하였었다. 찬송가가 함께 들어 있는 성경책을 보고는 기쁘기도 하였었다.

   
▲ 제가 십 몇년동안 읽던 정들었던 성경책입니다..
그런데 구치소에서는 구경조차 할 수 없없던 성격책들이 교도소로 가게되니 천지에 널려 있었다. 물론 가장 싼값에 만들어진 성경책들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 성경책을 거들떠도 보지 아니했으며, 대부분이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을 여러차례 목도 하였었다. 어떤 교인은 성경책을 버리면 벌받는다고 하면서 아무도 거들떠도 보지 않아 사물함만 가득 채우는 성경책 때문에 불신자들과 티격태격하기도 하였다.

그곳에서 신앙생활하던 사람들 대부분은 개인소유의 성경책들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가죽으로 된 찬송가가 함께 실려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성경책들이였다.어떤 친구들은 두권 세권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초신자가 성경책이 필요하다고 재차 이야기 하길래 나는 어머님이 보내준 성경책을 그 친구에게 줘 버렸다. 지천에 성경책이 널려있는데도 굳이 가죽성경책을 가지고 싶어 하길래 줘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흔하게 널려 있는 표지가 비닐로 만들어진 성경책 중에 아무거나 꺼내서 읽고 싶을 때 읽었다.

그리고나서 얼마 후에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 내가 성경책을 아니 가지고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보고 난 후에 왜 예배에 성경책을 가지고 다니지 않느냐고 하면서 나에게 가죽으로 된 성경책을 한 권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후에 다른 사람이 성경책이 필요하다고 하길래 주어 버렸다. 그러기를 몇번을 한 것 같았다

나는 책 사물함에 가득 차 있는 단순하고 멋스러움이 없는 성경책을 도외시 하고 가죽성경책만을 보물인양 끼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성경책은 그져 장식품이였을 뿐이였다. 교회예배에는 신주단지라도 되는양 챙겨들고 가면서도 돌아와서는 아예 성경책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 사물함에 보관해 놓기만 하는 것이였다.

보지도 않을 성경책을 왜그리 욕심을 내는지, 미련없이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낭비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였다. 더구나 한 권만 가지고 있으면 그나마 약간은 이해가 가련만, 두권 세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번도 보지 않고 보관만 하면서, 남에게 나누어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욕심이란 것은 신앙심에도 많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출소하면서, 오랜동안 읽어오던 성경책을 가지고 나왔다. 사람들이 쳐다보지도 않아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수 밖에 없던 가죽이 아닌 비니루로 만들어진 성경책이였다. 나는 그 성경책에다 여러가지 메모도 하고 그 성경책을 베고 낮잠도 자고 여기저기 색인도 하고 체크도 하고, 머리도 긁적여 머리카락이 떨어지기도 한 너덜너덜 헤진 꽤나 정들었던 성경책을 이제 버리려고 하고 있다. 몇군데 찢어 지기도 하였지만 라면국물이나 김치국물도 떨어져 지져분하기도 한 책이다.

이 세상의 물질을 가지고 나의 욕망을 채우거나 간직하려고 하는 행위는 하느님의 뜻을 져버리는 짓이다.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물질을 향하게 만드는 것이 불필요한 자원의 낭비를 막는 것이다. 교회에 가면 스크린으로 다 보여주고 목사가 다 읽어주는데 읽지도 않는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교회에 가는 것은 위선의 극치인 것이다. 불필요한 행동이요 낭비라는 것이다. 교인들과 목사가 다 읽어주는데 굳이 성경책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 묻고 싶다. 오히려 남들이 읽어주는 성경귀절을 눈을 감고 듣다보면 더 또렷하게 이해되어 지기도 한다.

성경책은 교회 갈 때에 폼잡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읽고 싶을 때에 읽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처음에 나 또한 성경책을 끼고 예배보러 가면서 폼잡고 웬지 모르게 가슴뿌듯하던 느낌이 들었던 적이 있으니 생각하면 심히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참으로 인간이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자신의 몰염치한 모습을 되돌아 볼 길이 없는 것이다. 다 헤져버린 성경책을 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니 성경책을 몇 번 읽는 것보다 더욱 귀한 것이 아닐 수없다.

성경책이 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만이 귀한 것이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성경책은 예수님을 죽이는 종교적 욕망의 배출구로 이용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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