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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 같은 이야기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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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5월 14일 (일) 01:49:43
최종편집 : 2023년 05월 14일 (일) 11:03:49 [조회수 : 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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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에 편집을 끝낸 <믿음 장로>는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다. 4년 전에 소천하신 어머니는 자신의 삶의 절반을 깨알 같은 육필로 기록하였다. 이야기의 주요 흐름이 교회와 신앙생활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다. 고향 이야기와 성장 과정은 물론 자신의 삶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가정, 자녀, 먹고 사는 일 등 모두가 어머니의 신앙과 연결되어 있어서, ‘생활신앙서’라고 불릴만하다.  

  어머니의 글에 같은 분량만큼의 주석을 붙여 계간 <성실문화>에 12회 연재한 바 있다. 돌아가신 2019년부터 꼬박 3년이 걸렸다. 마치 삼년상을 치루듯 어머니의 생애와 동행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공개적인 지면에 어머니의 인생 내력을 시시콜콜 적으면서 무안하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용기를 낸 것은 그 시절 여성 그리스도인의 삶을 역사화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남긴 자전적 기록이 공개해도 좋을 만큼 의미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기록을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어머니 세대 여성들의 이야기로 객관화하였다. 당시 믿음의 길에 들어서고, 즐거이 교회 생활을 하며, 은혜를 받은 이야기가 꿀맛 같다. 여성들의 기록문화가 귀한 시절의 드믄 증언이고, 수정이 불가능한 고인의 유산이어서 널리 나누어도 누가 되지 않을 듯싶었다. 어머니는 이외에도 4년 치(1987, 1990, 1997, 2003년) 일기와 여러 가지 설교문, 기도문과 메모를 남겼다. 성경도 두 번 옮겨 쓰셨다. 

  주석을 다는 입장에서 어머니의 생각을 직접 물어볼 수 없으니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그래서 두 형님에게 자문을 구해 미완의 상태나마 전후 사정을 기술할 수 있었다. 평소 성경을 사랑하고, 늘 신문 읽기와 독서를 즐겨하신 어머니는 시대와 역사에 대해 분별력이 있고, 교회 안팎에서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셨다. 그래서 붙인 제목이 <믿음 장로>이다. 볼수록 평소 심지 굳은 어머니의 정정한 음성을 다시 듣는 듯하다.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세상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만화 <내 어머니 이야기>(애니북스)의 작가 김은성은 북청 사람 어머니의 입담을 그대로 옮겨 자기 어머니의 시대를 재구성하였다. 일제강점기 함경도 마을에서 일어난 어느 가족의 풍경은 예스럽고, 구술을 그대로 옮긴 듯한 말투에는 중독성이 있다. 흑백 슬라이드처럼 구성한 만화와 함께 낯선 사투리를 입술에 묻혀가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깨알 같은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작가 외할머니 이초샘의 ‘예수 입문’ 이야기는 압권이었다. 북청 산골 미산촌 시골 동네에 처음 교회가 세워지는 동기를 생생히 들을 수 있다. 신앙생활이 이야기를 이끄는 주요 흐름은 아니지만 간간이 주인공 이복동녀 권사님의 말꼬리는 만화를 감칠맛 나게 한다. 무엇보다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딸로 이어지는 여성의 삶과 연대감은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지내놓고 보면 내 어머니의 이야기도 옛날 옛적으로 거슬러 오른다. 듣고 싶어도 더 이상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전적 기록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뜻밖의 보물이었다. 어머니가 손으로 쓴 30쪽 문서였다. 철들 무렵 기억부터 40대 중반인 1981년까지 정리한 글인데, 나머지 절반은 찾지 못했다. 아마 이어 쓰는 것을 잊어버리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노인이 그렇지만 어머니 역시 치매(癡呆)를 두려워하셨다. 마지막 시간은 종종 두 개의 세상에서 사시는 듯하였다. 꿈의 세상과 현실의 세상 사이에서 자주 흔들거려 우리 자식들까지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60세 무렵부터 이렇게 기도하셨다. “죽을 때까지 제 정신을 갖고 장로로서 부끄럽지 않게 해주세요.” 그런 간구대로 어머니는 비교적 깨끗이 자신을 마감하셨다. 

  어머니의 일기를 보면 시골 아낙이라고 무시하면 오산이란 생각이 든다. 시골교회 나이 든 여성이 품은 당시 시국에 대한 생각을 엿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어머니는 민주주의와 평화의 소리 없는 지지자였다. 

  “장날이다. 시장에도 안 갔다. 뉴스에 박종철 사건 또 다시 세 사람이 입건되었다.”(1987.5.29.)

  “오늘은 제헌절이다. 정부는 말이 아니다. 이 나라가 어떠케 될랴고, 이렇게 엉망인지 한심하다. 학생은 학생데로 정부는 정부데로 각각 나된다.”(1990.7.17.)

  “새벽 3시에 일어나 퇴레비 튼이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많은 고난 끝에 대통령까지 됐다. ... 000 집사가 김대중 씨 대통령 됐다고 5년 동안 어떻게 보느냐고 질알이다.”(1997.12.19.)

  세상 모든 어머니 이야기에는 깨알처럼 보존되어야 할 금쪽같은 사연들이 있다. 기록하여 기억할 일이다. 어느새 4년이 훌쩍 넘었지만 “세상에서 사라져서는 안 될 이야기”가 있어 오늘 새삼 마음에 품어두고 싶었다. 어머니의 이름은 이해남(1935~2019) 님이다.

송병구/색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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