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 > 새패러다임신학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이유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친 욱성이다.
김주범  |  iamoknapo@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3년 05월 12일 (금) 11:41:07 [조회수 : 2286]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이유

 

 

신학적 의의

하나님의 육성으로서의 4복음서44)

독생자라 믿는 믿음이 중요한 이유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증거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지 않는 증거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신학적 의의

 

삼위일체 신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임을 증거하는 것이다삼위일체 하나님곧 성부 하나님성자 하나님성령 하나님은 동일한 한 하나님이시다삼위일체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임마누엘 하나님으로즉 주시오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에서 출발한다구원을 약속하시고 이를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은 당신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게 해 주신다삼위일체론은 성서 안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신앙 고백을 다루는 신학적인 해석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고 이루어진 궁극적인 진리와 실재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37)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 본질한 실체임을 강조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계시의 현실이 곧 신적인 본질과 동일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38) 삼위일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사건 가운데 밝혀지는 신앙의 새로운 현실을 알려 주는 언어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예수라는 인간의 구체적인 실재 가운데 인간과 스스로 연관적이게 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계시의 언어임을 의미한다.39)

인간의 인간성은 결코 그 자체로 그 존재의 근거와 목적을 갖지 못하며 철저히 하나님의 신성을 통해서 새롭게 근거와 참된 완성을 발견하게 된다인간의 인간성은 비록 창조의 사건을 통한 하나님과의 연관 속에서 이미 긍정되고 우리에게 수여되었다고 할지라도 또 한 번 육신이 된 똑같은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본래적인 의미와 완성을 알게 된다그리하여 죄로 어두워지고 파괴된 상태에 있는 인간의 인간성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자유로운 사랑과 은총 가운데 그분의 신성에 용납되며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으로서 결정적으로 그분이 계시하고 정한 바 새로운 실재 가운데 알려지고 개방된다.40)

성육신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 하나의 이름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자기전달이다.41) 삼위일체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가운데 드러낸 사건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알려진 하나님 자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유의 완전성과 전체성(totus Dei 가 아닌 totum Dei)을 증거하는 신앙의 언어이다.42) 하나님 자신의 사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삼위일체는 역사 안에 나타난 하나님 자신의 궁극적인 자기전달이다.43)

 

 

하나님의 육성으로서의 4복음서4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인간이시다하나님 자신의 궁극적인 자기전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말씀을 기록한 것이 4복음서이다따라서 4복음서는 신의 말씀곧 하나님의 육성이다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성육신이시다비록 부족한 제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것이지만하나님의 육성과 그 흔적은 4복음서에만 있다따라서 4복음서는 하나님의 최종적이며 유일하신 말씀의 권위를 가진다. 4복음서를 구약이나 신약중의 하나의 성경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을 바꾸어모든 말씀의 최종최고 권위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에 한정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한다바울은 십자가 대속으로 오는 은혜를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을 복음이라 하였으나복음서 기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만을 복음이라 하였다.

바울을 중심한 초기교회에서는 주후 33년 이후부터 70년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말씀된 복음이 교인들에게는 전혀 들려지지 않다시피 하였다신약성서 가운데 복음서가 맨 앞에 등장하지만 가장 먼저 저작되고 교회에 유포·회람된 책은 바울 서신이다신약성서 27권 중 바울 서신이 기록된 시기는 48년부터 58년 사이로 성서비평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그 뒤를 이어 마가복음이 6070년경마태복음7080년경누가복음 과 사도행전 8090년경그리고 요한복음이 90100년경에 쓰였다따라서 바울 서신은 복음서보다 앞선 교회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주로 이방인들이 주축이 된 교회들 사이에 회람된 바울서신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강조하는 선교 신학이다이는 믿지 않는 자들을 교회에 입문시키는 기초 신학이라 할 수 있다이 바울이 정립한 바울의 복음이나 바울의 사상이나 신학이나 바울의 신앙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처럼 동일시되었다.

 

이런 구약적 회귀와 바울적 복고와 영지적 역행의 혼란 속에서 복음서 기자들은 대단한 용기와 각오와 수고로 바울이 말하는 복음과는 전혀 다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한 복음서를 내어 준 것이다그러므로 이때부터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별되었다복음서 기자들은 바울처럼 유추하거나 스스로 정리한 것이 거의 없이 사실적이며 역사적인 복음을 중시하였다.45)

하나님이 바로 성육신 하시어 친히 말씀하시며 새로운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과 진리와 생명의 복음이 온 인류와 모든 만물을 멸망치 않고 영생하는 유일한 구원의 원리와 법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없이도 되는 기독교와 교회는 어불성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영원무궁하시고 영원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인류의 마지막 구원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다.46)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동일시하면서교리와 신조와 신경으로 애를 썼으나 무리와 억지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은 역사성과 사실성에 대한 책임이 없다말하는 자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이런 것을 복음 과 구분치 못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달리 추가를 하거나 수정을 하거나 보완을 할 수 없다그렇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될 수 없다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하신 말씀곧 하나님의 유일하신 말씀이다이것은 구약과 바울의 가르침과 혼합될 수 없다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복음과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다때문에 구약과 바울의 기초하에서 2천 년간 지탱되어 온 기독교를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새 기초를 놓아 새집을 지어야 한다.47)

신앙을 위한 예수에 대한 복음은 얼마든지 말할 수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역사적으로 말씀되어진 대로 사실대로 기록되어 있는 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그렇지 않으면 소설이나 공상이나 유령이나 영상으로 말하여도 무방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복음서가 나온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으로 망각되고 제외되고 실종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되찾기 위함이다그리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구원 역사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48)

예수가 구약의 왜곡을 걷어내기 위해서 오셨듯 이제는 복음서가 바울을 걷어내야 한다바울은 복음서가 나오기 이전에 이미 교회와 서신서 들을 통하여 기독교를 만들고 형성하였다그래서 복음이 높이 올려진 것이 아니라 유대교적 기독교 종교가 만들어진 것이었다구약과 바울로 가려지고 덮혀지고 묻혀져서 보이지도 않게 되고 들리지도 않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바울의 복음이 이제는 기력을 완전히 잃었다가감할 수 없는 복음만이 교회와 기독교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친히 주신 인류 구원의 참 길과 진리와 생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그 나머지는 예비요준비며 서론일 뿐이며 부수적일 뿐이다그러니까 오직 성서” 안에 들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근원의 복음이다.49)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다길이라는 말은 곧 도를 말한다도는 진리와 생명의 도를 말한다도는 이치(理致)를 말한다예수 그리스도의 도는 어떤 제한적인 전제가 전혀 없는 우주 만물의 객관성을 말씀하신 것이고인류가 멸망치 않고 영생하는 도를 말씀하신 것이었다예수 그리스도는 객관적인 원리를 말씀하신 것이지 주관적인 교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도에는 자기 욕심이나 사심이나 이기심을 버리는 것이나지위고하성공실패전쟁대적승리 같은 것이 없다.50)

유대교나 로마교나 기독교는 그런 도에 이르지 못하였다진리를 알기 원하기보다 자기 구원을 위하여 열심을 다해서 빌고 바라고 바치며 안간힘을 쓰며 혈기를 부리며 집단적인 행패를 부리고 폭력을 불사한다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죽거나 없어지거나 줄어들거나 실패하거나 죄를 지으면 안 되는 것과 상관없이 더 강하여야 하고 언제나 이겨야 하며 전능하신 신과 함께 사는 신앙인들을 말한다아플 때는 낫기를 바란다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그러다가 죽음이 오면 죽지 않기를 바라서 기도하고 애쓰며 정한 이치로 돌아가는 순리와 정도를 역행한다.51)

구속신학은 인간들의 최대 염치없는 사리사욕이며 이기심이다자기가 자기의 죄 값을 떳떳이 치루지 못하는 비열한 인간들이며죄 없는 짐승을 잡아서 신에게 바치는 것은 짐승의 원한을 살 일이며 하나님을 물질로 보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죽음으로 주홍같이 붉은 죄일지라도 사하심을 받아 전에는 죄인이었지만 자기가 이제는 의인이 되었다는 대속론은 참으로 뻔뻔한 인간들의 망연자실이다도를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도에 이르고 도에 거하기를 바라시는 그 이상이 없는 것을 모른다.52)

 

 

독생자라 믿는 믿음이 중요한 이유

 

복음은 하나님의 최후 계시이며 말씀이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브리서1:1-2)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다시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그의 다른 아들을 결코 주시지 않을 것이다하나님은 그의 모든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일을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끝내셨다(요한복음19:30).

복음은 아들에 관한 말들(words about the Son)”이 아니라, “그 아들의 말씀(Word of the Son)”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모세와 토라는 유대교를 위한 기초이다교황과 법규집은 로마 카톨릭의 기초이다바울의 신학은 개신교의 기초이다코란과 모하메드는 이슬람의 기초이다더하여포스트모던 신학의 기초는 좋게 들리는 모든 것을 결합하는 것이다그러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뿐이다.53)

복음은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모든 신학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신학교회신학성서신학들은 너무나 많은 이론들과 교리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고 꾸미고 수정하였다다른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율법과 교리와 신조와 신학들로 교회 밖에서보다 교회 안에서 가려졌고 매장되었고 무시되었다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은 사람들에 의해 편집되고 이서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길과 생명과 진리일 수 없다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은 사도들과 사도 적 교부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수립하고 체계화한 것이다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을 만한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다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 그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복음은 다른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교부들이나 목사들이나 종교개혁자의 것이 아니다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다바울의 서신도사도 신조도초기교회의 교리도로마 캐톨릭의 규범집도어떠한 개신교 신학들의 것도 아니다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인들과 덕인들 간에원수와 친구들 간에신자와 비신자간에세리와 매춘부들살인자와 강간범들 간에가난한 자와 부자들 간에 어떠한 구별도 하지 않는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은 복음을 듣고 깨닫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다.

예수를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믿으면서도 사실은 전혀 그렇게 믿지 않은 기독교이다삼위일체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육성이다이 육성의 복음은 바울 이전에 이미 가르쳐진 복음이다바울과 상관없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다대속과 상관없는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 복음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육성인 4복음서가 바울 복음 앞에 숨을 쉬지 못했다대속론을 대표로 하는 바울신학이 구약과 4복음서 해석의 중심 원리가 되어 버렸다모든 성경이 바울의 대속론을 위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4복음서가 하나님의 본질 메시지인데도 바울신학을 위한 부교재(副敎材정도로 사용되고 있다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가르침과 상관없는 바울의 가르침이 기독교를 점령해 버렸고 정통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이 바울 기독교가 바로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방해하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건설적인 모든 가치를 왜곡시켰다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원리를 왜곡시켰다억지 종교 교리만 남아 있는 기독교를 만들고해독을 뿜어내는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

 

때문에 시대를 위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곧 하나님의 친 육성을 바울 신학과 분리하여야 하며더 나아가 4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바울의 신학과 상관없이 오직 4복음서의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이것이 하나님의 원래 복음을 발견하는 길이다하나님은 그냥 신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친부인 것을모든 인간들은 신의 피조물로서 신의 도구가 아니라친부 창조주의 친 자녀들이며형상이며 생명의 존재들이어서 창조주의 가능성을 그 영에 가지고 있는 존재들인 것을그래서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임을용서는 대속을 통한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용서하고 화해하고결국 죄사함 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 되는 것을그리고 내세 천국 구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창조 목적을 위하여 인간들 간에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여 원수까지 한 형제와 가족으로 사랑하여 아버지의 가정을 이룩하는 사랑의 나라인 것을 예수 그리스도는 말하였다.

바울이 말한 대속 구원은 전혀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이 아니다내세 천국 구원의 유일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유일하다고 믿고 가르치기 때문에 모든 오해들이 발생하였다종교적이며 신학적인 문제가 발생하였고인류의 평화로운 공존 공생에 문제를 발생시켰다내세 천국은 현재 인간들이 사는 삶에서 단지 육체만을 벗는 의미의 삶이다육체 없는 삶이 죽은 후의 삶이고 내세의 삶이다따라서 이 땅에서 천국을 살 수 없는 실력이면 내세 천국에서도 천국다운 천국을 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천국 가는 오직 유일한 대속의 제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친히 말씀하신 신의 육성으로서의 유일성이다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은 신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는 절대 권위의 말씀으로서의 유일성이다누구도 절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변개, 변조 시킬 수 없다친부친자인간의 본 생명인간에 대한 아버지의 희망아버지의 방식대로 원수까지 서로 사랑하며결국 아버지와 같은 형상으로 완성되는 구원에 대한 가르침은 절대로 인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창조주 신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다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어야 하며그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지 않으면그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을 수 없으며그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 것은 곧 그가 하나님의 독생자요하나님이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예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는 것은 진실로 믿음이 필요하다다른 모든 가르침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하는 문제이다.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으며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말씀하신다는 자기 증거를 살펴보자.

 

우선 그는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한다그는 진리곧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셨으며54) 그는 오셔서 진리를 말씀하셨다.55) 그래서 요한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다고 한다.56)

진리는 무엇에 관한 것인가그것은 바로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는데그것은 아버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57) 그는 아버지를 아는 유일한 분이시다그를 통하여 그 아버지를 알 때 우리는 우리가 영생을 이미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때문에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이 100%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 것이라고 하신다.58)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영생을 가지는 방법이라고 하신다.59)

이 진리는 처음부터 아버지 그 자신의 말씀이셨다그 말씀은 100% 그분 자신이셨다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60) 말씀이 인간의 육체로 변형되셨다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위하여 한 육체를 준비하시고 그 육체 안에 직접 오심으로 그 육체를 말씀의 완전한 표현을 위한 장치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그 말씀 안에는 완전한 아버지에 관한 지식과 이해가 있고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한없는 경륜과 지식이 완전하게 들어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개역한글요한복음1:14)

 

이 말씀은 아버지께서 말하라고 하신 바로 그 말씀이셨고그 말씀을 알면 영생을 가지게 되는 말씀이셨다.61) 그 말씀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 자체이다그는 그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전혀 없으시다.62) 그는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것만을 말씀하신다.63) 아버지께서 말하라고 이르신 것만을 말씀하신다.64)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이 인치신 말씀이다.65) 그분의 말씀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66)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가르침이 그의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분의 것이라고 하신다.67)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싶어 하시는 말씀 그 자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그분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것을 믿어야 한다그분의 말씀은 육체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하나님의 친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삼위일체 신앙의 핵심이다모든 성경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최고 최종 권위를 가진다.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배우고 이해하여야 한다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말씀은 아무 소용이 없다그분이 아버지를 말씀하신다왜 그분이 아버지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가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생그리고 신의 삶을 사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지 않는 증거

 

어떤 책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가로마서인가아니면 레위기인가만약에 이같이 4복음서특별히 요한복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믿지 않는 것이다왜냐하면 하나님의 독생자의 친(말씀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다른 모든 성경이 감동으로 기록되었지만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친히 하신 말씀이 첫 번째로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김주범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3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소리 (182.224.171.14)
2023-05-15 10:33:18
신약성경에서 바울 서신을 빼자는 이야기는 아주 도전적이군요. 루터가 야고보서를 정경에서 빼자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많은 신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정경에서 기독교 신학의 정초를 놓은 바울 서신을 빼자는 것은 기독교 신학의 토대를 흔드는 것 아닌가요? 어거스틴을 비롯해서 개혁자들과 샌더스나 던 같은 새관점의 현대신학자들이 모두 바울 서신을 중시하고 있는데, 그들의 신학을, 교회가 지금까지 가르쳐 온 것을 부정하기로 작정한 도전적인 주장입니다. 새로운 교회를 세우기로 하셨나요? 혹시 새로운 교회를 이미 세우셨나요?
리플달기
1 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