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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틈으로 보이는 영원의 빛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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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5월 12일 (금) 05:01:03 [조회수 : 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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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틈으로 보이는 영원의 빛

일상은 나른하고 권태롭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을 즐기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순환하는 시간은 우리 삶이 모호함 속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지켜주는 거멀못이지만 동시에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게 붙들기도 한다. 삶의 불안정함에 지친 이들에게 순환하는 시간은 고향과 같지만, 삶이 너무 평온한 이들에게는 족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부질없는 꿈으로 그칠 때가 많지만 그 꿈 자체가 일상을 견디는 힘이 되기도 한다.

무료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여행지에서 내가 빼놓지 않는 것은 미술관 순례이다. 펜실바니아의 채즈 포드에 있는 브랜디와인 리버 미술관에서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Wyeth)의 그림과 만났다. 전시된 그림과 화보를 보다가 그림 한 점이 내 눈길을 잡아챘다. ‘짓밟힌 잡초’. 무거운 중력에 시달리듯 천천히 풀밭 위를 걷는 사람이 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의 하반신뿐이다. 시점은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것 같은데 인물의 상체는 보이지 않는다. 극단적인 외로움이 느껴진다. 녹색을 다 잃고 누렇게 변한 풀과 단색 톤에 가까운 색채가 늦가을쯤임을 알려준다. 두터운 옷과 부츠 또한 같은 사실을 가리킨다. 조금 들린 왼발 뒤꿈치는 그가 앞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거움이 절로 느껴지는 걸음걸이이다. 이 그림을 그릴 때 앤드루 와이어스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죽음의 세계에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생명 세계를 향해 돌아오고 있는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 경험 때문인지 그는 자기가 살던 마을의 낡은 건물과 거기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애잔하게 드러내곤 했다. 그의 정서와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장소들을 직수굿하게 바라보며 마치 시간을 기록하듯 그것을 화폭에 담았다. 허름한 집들, 뒤척이는 풀잎, 벽에 기댄 채 쉬고 있는 자전거, 가지가 부러진 나무들, 바람과 햇빛 그리고 고독까지. 그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풍경의 일부로 녹아들어 있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대개 뒷모습이거나 나무에 기대거나 풀밭에 누워 느긋한 오수를 즐기고 있다. 화가는 관조적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인물들은 도무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개들조차 짖지 않는다. 도시의 분잡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적인 평화가 거기에 있다. 화가가 시간 속에서 스러져가는 것들 속에 깃든 영원성을 본다고 말하면 과장이 될까?

그의 그림 중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삶을 긍정하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오롯이 드러난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풀밭의 맨 위쪽에 몇 채의 집들이 보인다. 풀밭 사이로 마차 바퀴 자국인 듯 보이는 선이 사선으로 흐르고 있다. 풀밭에 비스듬히 엎드린 채 그 집을 바라보는 한 여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바람 때문인지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지만 화사한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풀밭을 딛고 있는 두 팔은 바짝 말라 있다. 여인의 두 팔은 앞으로 내딛는 발처럼 보인다. 말라 있는 팔에 비해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손은 여인의 처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작품의 모델인 크리스티나는 하반신이 마비된 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휠체어에 의지하기보다는 천천히 자기 속도대로 두 팔로 기어 다니는 것을 더 좋아했다. 삶에의 의지가 강렬하다. 자기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과 언제 화해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티나는 불운처럼 보이는 현실에 굴복하지 않았다. 화사한 원피스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따뜻하고 옹골찬 의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저마다 지고 가는 삶의 무게가 무겁다고 아우성을 친다. 권태와 무력감은 우리 일상을 무채색으로 물들여 시간 속에 깃든 영원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들은 쇠락하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비애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들을 부당하게 무시하면서 다른 삶을 갈망하는 것은 약자의 버릇이다. 시인 구상은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의 백태가 벗겨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라고 노래했다. 기적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뜬 이에게 나타나는 현실이다. 일상 속에서 삶의 신비를 볼 눈을 뜬 사람은 지긋지긋한 욕망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맛보게 마련이다.  

(* '월간 에세이' 5월호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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