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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잔운동의 역사와 신학
최창균  |  onnuree@mensa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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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5월 11일 (목) 13:36:32
최종편집 : 2023년 05월 11일 (목) 13:43:11 [조회수 :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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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선교횃불에서 2013년에 발간한 [세계복음화를 위한 로잔운동의 역사와 신학]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로잔운동의 지나온 발자취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한국에서 제4차 로잔대회가 열림으로 인해 그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데, 로잔대회가 무엇인가에 대해 그 역사와 신학적 의의에 대해서 수십 년간 로잔을 이끌어오신 분께서 명쾌하게 설명을 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로잔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이 풀리고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알고 보니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로잔대회를 쉽게 얘기하자면 선교 한마당, 선교 축제, 선교 페스티벌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학적 깊이보다는 온 세계의 모든 선교를 다 모아보는 장터와 비슷하다고 할까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전세계의 크리스찬들이 모여 이전의 선교를 돌아보고 지금의 선교를 이야기하고 미래의 선교를 함께 꿈꾸는, 그야말로 꿈의 장마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깊이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도 많이 보입니다.  게다가 사회 각분야의 실질적인 참여를 시도하는 노력들도 보입니다.  로잔운동은 근본적으로 사회참여를 통한 정의실천을 중요한 축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선교위주로만 하고자 하는 쪽과 다소 갈등을 빚기도 한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복음의 순수성을 위한 일환으로 배제, 배격, 단호히 거부 등의 용어가 종종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근본주의 성향도 느껴질 정도입니다.  “WCC 신학과는 다른 점이 이러한 측면” 이라는 표현을 통해 로잔 참가자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도 느껴집니다.

로잔대회는 1차에서는 로잔 언약이라고 했고, 2차에서는 마닐라 선언문이라고 했으며, 3차에서는 케이프타운 서약이라고 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발표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그러다 보니 매우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소 전체주의적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로잔언약문을 보면 “우리 선교단체들 중에는 현지 지도자들이 그들의 마땅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격려하는 일에 매우 소홀했음을 인정한다.” “복음에 대한 반응에만 열중한 나머지 우리의 메시지를 타협했고, 강압적 기교를 통해 청중을 교묘히 조종했고” 등의 구절들이 나옵니다.  이런 일을 하신 분이 얘기하는 것이라면 매우 값진 고백 및 사과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난 이런 적이 없는데, 내가 로잔 참가자가 되고, 이런 선언문에 동참해야 한다면?  로잔대회는 이렇게 몇몇 사람의 개인적인 고백을 전체의 고백으로 만듭니다.  로잔에 참가하려면 WCC와도 선을 그어야 하고, 어떤 입장들에 대해서는 배제, 배격, 거부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로잔대회에 정식으로 참가하고 선언문에 이름을 올리기가 꺼려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입장과 조금 달라도 함께 연대하는 마음으로 쿨하게 동참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신앙 양심에 따라 조금이라도 동의가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참여하지 않을 것인가는 개인의 취사선택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둘 다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외면하기에는 좋은 것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인종, 종교, 피부색, 문화, 계급, 성 또는 연령의 구별이 없다는 내용, 추수감사절을 미국과 똑같이 11월 하순에 지키는 것은 성서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내용, 모든 국가는 평화와 정의와 자유의 상태를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 등등의 보배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좋은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공존하는 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내년 대회 때 5,000명 정도가 참가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런 로잔 참가자와 선언문 참여자를 분리하는 타협안이 제시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종 선언문에 진심으로 동의하는 분의 숫자를 정직하게 따로 표기한다면 갈등이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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