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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함께 가는 동반자의 행복한 2박 3일
황기수  |  hwang-gis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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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5월 09일 (화) 03:37:24
최종편집 : 2023년 05월 12일 (금) 13:24:05 [조회수 : 1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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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피크선교회와 소속 목회자 부부와 낙도선교회 소속 교회의 목회자 부부, 가족들이 하늘가족교회에서 진행한 세미나를 마치고 교회 앞 계단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 라피크선교회, 낙도 목회자 가정 초청
- 첫날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역 돌아보고, 세미나 진행

라피크선교회(회장 이현식 목사, 고문 방원철 목사)가 ‘신바람 낙도선교회’(회장 김용태 목사) 소속으로 낙도의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회자 가정을 서울로 초청해 5월 8일(월)부터 10일(화)까지 2박 3일 동안 쉼과 회복의 시간을 선물했다. 

이번의 만남은 라피크선교회 부회장 최재선 목사와 신바람 낙도선교회 회장 김용태 목사의 인연으로 성사됐다. 두 사람은 감리교신학대학교 83학번 동기로 절친이다. 20년 전 낙도선교에 헌신하며 힘든 가운데서도 묵묵히 사역을 이어가는 친구를 보면서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최재선 목사가 몇 년 전부터 라피크선교회 회원들에게 건의했고 이를 선교회원들이 받아들여 준비하게 된 것이다. 

2박 3일 동안의 일정은 ▲첫날(월) 14시 용산역 도착(KTX 이용) →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역 참배, 설명 → 하늘가족교회로 이동 → 세미나(이종훈 목사/이현식 목사) → 저녁식사(하늘가족교회) 후 호텔로 이동하는 것으로 했고 ▲둘째날(화)은 오전 창덕궁 방문, 오후 하남 스타필드 방문, 저녁 롯데타워 관람으로 하루종일 쉼과 힐링의 시간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마지막날(수)에는 아침식사 후 용산역으로 이동하여 여수로 귀가하는 일정이다.

이번 일정에 함께 한 낙도선교회 소속 목회자들은 6개 섬에서 참여했다. 금오도 신포마을 신리교회 이상봉 목사 부부, 자봉도교회 최상용 목사 부부, 중도교회 노상호 목사, 남도교회 여은복 목사 부부, 가장 작은 섬 여자도교회 김신선 목사 부부, 금오도 남면교회 신동남 목사 가족(자녀 동반), 그리고 김용태 목사와 함께 낙도선교회를 섬기는 조은혜 전도사와 허영주 권사 등 18명이 참여했다. 

   
▲ 김용태 목사가 낙도선교회의 사역을 소개한 후 소속 목회자들이 인사하고 있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 둘러보기 ... 이종훈 목사

일정에 따라 방원철 목사와 최재선 목사 등 라피크선교회 회원들은 첫날인 8일 오후 2시 낙도에서 올라오는 목회자 가정을 맞이하기 위해 양화진외국인선교사 묘역에 모여들었다. 시내 교통상황으로 예정보다 다소 늦어진 시각에 김용태 목사를 비롯한 낙도 목회자 가정들이 도착했고 방원철 목사가미리 대기하고 있던 이종훈 목사(장로교, 선교역사 전문강사)를 소개하여 주요 선교사들의 묘비에 들러 그들의 삶과 사역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종훈 목사는 해박한 지식으로 조세핀 캠벨(Josephine Eaton Peel Campbell, 남감리회 선교사, 여성교육, 배화학당•종교교회•자교교회 설립)을 비롯해 엘러스(Annie Ellers)와 그의 남편 벙커(Dalzella Bunker, YMCA 창설, 묘비에 '날이 새고 흑암이 물러갈 때까지'가 새겨져 있음), 밀러(Fred. S. Miller, 우리말에 탁월해 찬송가 작사, 교육선교), 셔우드 홀(Sherwood Hall, 결핵퇴치운동) 등의 묘비를 둘러보며 선교사들의 복음정신과 조선사랑의 삶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고 일동은 선교사들의 사랑과 헌신을 마음에 새겼다.

   
▲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에서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이종훈 목사와 경청하는 참석자들
   
▲ 호남지역, 특히 광주와 목포에서 사역했던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에 대해 강의하는 이종훈 목사

양화진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하늘가족교회로 이동해 두 차례의 세미나를 진행했다. 먼저 양화진에서 미처 보고 듣지 못한 호남지역, 특별히 전라남도 지역을 무대로 사역했던 선교사들에 대해 들었다. 역시 이종훈 목사가 1시간 동안 P.P.T. 자료를 이용해 선교사들이 조선에서 어떻게 살며 사역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호남지역에서 사역한 선교사들은 감리교회에 덜 알려져 있어 낙도 목회자들 뿐만 아니라 라피크선교회원들에게 귀한 공부가 됐다.     

이종훈 목사는 특별히 ‘4대째 이어진 한국사랑’의 주인공인 유진 벨 가문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유진 벨(Eugene Bell, 1868-1925)은 한국명으로 배유지이며, 광주와 전남지역에 많은 교회와 학교를 설립했다. 1898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목포에 정착하여 사역을 펼치기 시작했고, 그해 5월 15일 공식예배를 드림으로써 목포와 전라남도에서의 최초 교회가 시작됐다. 그는 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하는 한편, 학교와 병원을 세워 근대 서양 문화 문물을 함께 전파했다.

그의 사위 ▲인돈(William A. Linton, 1891-1960)은 교육선교에 집중해 한남대학교 전신인 대전대학을 설립하는 등 40여 년의 사역기간 동안 군산, 전주, 목포, 대전 등에 여러 학교를 설립하며 전라도 지역의 선교사역에 힘썼다. 

3대 ▲인휴(Hugh M. Linton, 1926-1984)는 인돈의 셋째 아들로 군산에서 태어났고 별명이 '검정고무신'일 정도로 고무신을 좋아했다. 구멍이 나면 메꿔서 신을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광주에 결핵요양원과 진료소를 세워 결핵 퇴치에 앞장섰고 후에 광주 결핵요양원은 지역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여수 애양원으로 옮겨갔다. 

마지막 4대는 ▲인세반(Stephen W. Linton, 1959-생존)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인요한이다. 1895년 조선에서의 사역을 시작한 유진벨의 100주년을 기념하여 1995년 유진벨재단을 설립했다. 전주에서 테어났지만 곧바로 순천으로 이주해 자랐기에 순천사랑이 남달라 은퇴 후에는 순천에서 살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 끼친 공로(한국형 구급차 앰뷸런스 개발 등)를 인정받아 2012년 '특별귀화'하여 한국과 미국의 국적을 모두 가진 복수국적자가 되었다. 그는 대한민국 특별귀화자 1호가 됐다.

호남지역 선교는 유진 벨을 시작으로 오웬, 레이놀즈, 포사이드 윌슨, 토플 등 수많은 미남장로회 젊은이들이 ‘미지의 나라’ 조선에 들어와 자신을 죽여 ‘영원한 생명’의 씨앗을 심었고, 하나님나라 구원 사역과 소망의 역사를 전개했다.

   
▲ 꿈을 매개로 하여 목회자들이 궁극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복음의 핵심은 구원론으로, 천국 소망을 강조해야 한다고 강의하는 이현식 목사

복음의 핵심에 집중해야 ... 이현식 목사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만큼 풍성한 선교사들의 이야기로 사역의지를 불태운 일동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이현식 목사의 강의가 이어졌다. 이현식 목사는 모든 사람들이 갖는 꿈에 대해 언급한 후 신앙의 영역 안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일까를 물었다. 그것은 세상적인 의미의 성공을 향해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here & now)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삶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력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성경 <왕하 24:5~6>(“여호야킴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야킴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여호야킨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의 본문을 소환했다. 위 본문에서 세 가지 단어에 주목한다며 ‘❶기록 ❷자매 ❸대신’에 대해 차례로 설명했다.

먼저 ‘기록’은 ‘평가’를 의미하며 이는 자평과 타평, 하나님의 평가로 나누어진다고 구분해 설명했다. 자신은 기록이라는 단어를 대할 때마다 하나님의 평가를 떠올리며 하나님나라와 상급에 대해 생각하면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신하여”의 ‘대신’에 대해 설명했다. 나보다 잘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나를 사용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자매”는 죽음을 의미한다며 한자어 ‘죽을 사’(死)는 ‘하루 저녁에 날아가는 비수와도 같다’는 뜻이라고 풀이하면서 언젠가 불현듯 죽음이 찾아올 것을 대비하여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최선의 삶을 살았던 성령의 사람으로 사도 바울을 소개했다. 성경 <딤후 4:6~8>은 바울이 인생을 마감하기 직전 고백했던 내용으로써 그가 늘 하나님나라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수께서 부활 후 마지막으로 보여 주신 것은 하늘(하나님나라)로 올라가는 모습(눅 24:51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이었다며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라고 강조했다. 

소천하기까지 하나님나라를 마음에 품었던 진관교회 어느 권사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한 후 강의를 정리하면서 “한국교회가 강단에서 잃은 말씀-천국과 지옥을 다시 강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목회자들이 구원의 기본 교리를 강조하면서 선교와 전도의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외롭고 힘든 낙도에서 한 사람의 영혼을 위해 헌신하는 목회자와 사모들이 이것 때문에 그곳에서 살아가는 줄로 믿는다며 복음의 핵심에 더욱 더 집중하여 목양일념하기를 바란다고 축복했다. 

 

   
▲ 인사와 함께 나가노 목사와 가가와 도요히꼬 목사 이야기를 전하는 방원철 목사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 방원철 목사

이현식 목사의 강의 후에 마지막 순서로 방원철 목사가 인사를 겸하며 이재철 목사(전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담임)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나가노 목사와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에 대해 전하며 “한 사람이 중요하다.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그 한 사람을 목표로 참된 목회를 감당해 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 나가노 목사와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 이야기

20세기 초, 일본에서 갓 안수 받은 나가노라는 젊은 목사가 있었다. 그 당시의 일본은 기독교인이 거의 없었으므로 그는 어느 곳에 가서 교회를 개척할 것인가 일본 지도를 펴놓고 기도했다. 기도하면서 동서남북 100km 이내에 단 한 명의 교인도 없는 곳을 찾고 보니 북쪽 가나사와라는 지역이었다. 이 젊은 청년 목사는 곧 그 지역으로 가서 텐트를 치고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아내와 아이 둘을 놓고 창립예배를 드렸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는데 교인이 오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났다. 기도할 때는 열심히 "믿습니다." 라고 하지만, 6개월 동안 교인이 오지 않으면 "하나님 뜻이 아니구나" 하고 옮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나가노 목사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 곳에 보내 주신 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 있다고 믿었다. 그 자리를 무려 5년 동안 지켰다. 아내와 아이만을 데리고. 

5년이 지난 어느 수요일 저녁에 장막의 커튼을 젖히고 첫 번째 교인이 들어왔다. 청년이었다. 나가노 목사가 얼마나 감격했겠는가? 5년 동안의 그 어떤 설교보다 열정적으로 설교했다. 설교가 끝난 뒤에 그 청년을 데리고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 도중에 이 청년이 '욱'하더니 피를 쏟나냈다. 폐병 환자였다. 나가노 목사의 마음에 순간적으로 갈등이 일었다. 
'이런 괘씸한 사람이 있나? 이 사람을 지금 당장 쫓아 버려야 하나, 아니면 내가 이 핏덩이를 쓸어 내고 계속 함께 밥을 먹어야 하나?' 
그때 주님의 음성이 이처럼 말하는 듯 했다. '내가 너에게 처음 보내 준 사람인데...' 
나가노 목사는 자기 손으로 핏덩이를 치웠다. 그리고 음식을 다시 가져와서 청년과 먹었다.  

그 청년은 일본의 유명 정치인의 사생아였다. 태어날 때부터 출신이 그랬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괴로움 속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복음을 접하게 되어 신학교에 들어갔다. 신학교를 다니는 도중에 폐병 환자가 되었다. 학교에서 정학을 맞았다. 다니던 교회에서는 파문당했다. 나으면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자 청년은 생각했다. '성경은 거짓말이구나, 예수도 거짓이다. 나는 누구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 나의 치료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누구에게 나의 폐병을 옮길 만큼 경솔한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폐병 환자인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대해 주지 않는다. 나는 참된 그리스도인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없었다. 한 사람도 없었다. 결국 청년은 자살을 결심했다. 그런데 자살 전에 우연히 한 사람이 이야기했다. 북쪽 가나사와 지방에 가면 나가노라고 하는 목사가 있는데, 거기에 한 번 찾아가 보라는 말이었다. 청년은 죽기 직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나가노 목사를 찾아갔던 것이다. 그 날 저녁에 밥을 먹다가 피를 쏟았고, 나가노 목사는 피를 닦아 내고 다시 밥을 차려 왔다. 그 순간에 이 청년이 다시 주님을 만났다. 주님은 살아계셨다. 주님의 은혜로 청년의 폐병이 나았다. 그리고 청년은 신학교를 졸업한 뒤에 목사가 되었다. 그가 바로 유명한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다. 

목사가 된 그는 고베와 도쿄에서 수없이 많은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을 섬김과 봉사의 삶으로 내어놓았다. 빈민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변비다. 항문에 변이 차돌처럼 굳어 있어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면 장갑을 끼고 손으로 후벼낸다.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그 빈민들의 항문을 손가락으로 후벼 주었지만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항문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고 차돌같이 굳어 있는 변을 침으로 녹여서 빨아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일본 기자가 도요히코 목사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가?” 그는 대답했다. "나는 배운대로 합니다. 나의 선생님은 내가 각혈한 핏덩이를 닦아 주셨습니다. 
그 분이 하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가 중국으로 건너갔다. 중국의 빈민들을 위해서도 똑같은 삶을 살았다. 장개석 총통의 부인인 송미령 여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와 함께 개인적으로 성경공부도 했다. 1945년에 일본이 패망했다. 일본 군대와 함께 민간인들이 철수할 때 현지인들로부터 테러를 당하는 사건이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오랜 세월동안 착취했기에 테러를 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가장 지독하게 당한 곳이 사할린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일본 패망 당시에 중국 땅에 있던 일본인의 숫자는 200만 명에 달했으나 그 중에 단 한 사람도 테러를 당하지 않았다. 천황의 항복 성명과 동시에 장개석 총통이 포고령 제1호를 내렸기 때문이다. 철수하는 일본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자는 중형에 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이 종전 이후 포고령 1호다. 그 배후에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의 감동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나가노 목사는 평생에 한 명의 그리스도인 밖에 배출하지 못했다. 경제 논리로 보면 실패한 목사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나가노 목사가 없었더라면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는 없다.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빈민들의 항문을 빨아줄 때 그 심중에는 나가노 목사도 함께 있었다.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가 중국 빈민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칠 때 그 속에는 나가노 목사도 함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빙점’으로 유명한 여류 소설가 미우라 아야꼬는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도 위대하지만, 그 한 사람을 배출한 나가노 목사가 더 위대하다”고 썼다.   

 

   
▲ 최재선 목사가 라피크선교회를 소개한 후 회원들이 각자 소개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라피크선교회

아랍어인 라피크는 ‘먼 길 함께 가는 동반자’라는 뜻으로, 방원철 목사와 이현식 목사가 시작한 모임이다. 서울연회 안에서 정치적인 색깔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목회 지향적인 자세로 서로 격려하며 공부하는 모임으로 출발했다. 그처럼 의미있는 일에 한마음으로 함께 하며 ‘목회와 인생이라는 먼 길을 동반자로 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영어 속담에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가 있다.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은 함께 난다'는 뜻이다. 

방원철 목사와 이현식 목사의 순수한 뜻에 공감한 후배 목회자들이 한 명 한 명 모여 들었고 어느새 회원 수가 11명으로 늘었고, 목회지를 이동한 회원이 있어 지금은 서울연회와 중부연회, 경기연회로 확대됐다. 회장은 이현식 목사(진관교회)가 맡고 있으며 직전회장인 방원철 목사(하늘가족교회)가 고문이다. 장석주 목사(양광교회)가 실무총무를 맡고 있다. 그밖에 부회장 최재선 목사(한서교회), 김원만 목사(귤현교회), 김민영 목사(답십리교회), 윤동규 목사(일신교회), 이형노 목사(중앙교회), 우광혁 목사(안양 만안교회), 심은수 목사(은제교회), 박종헌 목사(낙원교회)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낙도선교회의 사역을 소개하는 김용태 목사

신바람 낙도선교회

신바람 낙도선교회는 본래 ‘예수사랑 낙도선교회’로 출발했다. 2003년 1월 5일 이름과 조직도 없이 고 반봉혁 장로와 김용태 목사가 여수일대 섬 지역을 시몬153호를 타고 순회선교하면서 시작됐다. 2007년 1월 29일 여수에 위치한 선교중앙교회에서 ‘예수사랑 낙도선교회 창립예배’를 드리면서 정식으로 발족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8년 6월 고 황수관 장로가 합류하면서 ‘신바람 낙도선교회’로 개명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여수를 중심으로 전남 동부지역에 있는 낙도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사랑으로 섬기고 있다.

현재 여수 근방에는 12개의 작은 섬이 있고 그중 10개의 섬에 교회가 있다. 그 교회들을 격주로 찾아가 돌아보며 필요한 부분을 지원하고 있다. 김용태 목사는 지난 20년 동안 태풍이나 짙은 안개로 인해 섬에 가지 못한 경우는 5회가 채 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동안 쉼 없이 격주로 섬 순회사역에 매진해 왔다고 소개했다. 

아래는 신바람 낙도선교회의 홈페이지에 소개된 글이다. 

낙도는 여객선이 다니지 않고 부족한 물과 전력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의료 및 문명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안타까운 곳입니다. 더욱이 교회까지도 없고 있던 교회마저 철수하여 복음을 듣고 싶어도 듣지 못하여 구원받지 못하는 소외된 주민들(할아버지, 할머니)이 있습니다. 이런 교인들과 교회를 2주일 간격으로 순회하면서 필요한 생필품과 의약품, 선교비를 챙겨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밖에 필요에 따라 이미용 봉사, 문화사역 등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태풍과 비바람으로 폐허가 되어가고 있는 가옥들을 ‘낙도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전개하여 지금까지 33채의 가옥과 교회를 수리해 외롭고 힘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기쁨과 소망을 전해 왔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수많은 어르신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백성으로 날로 넘치고 있습니다. 

신바람 낙도선교회의 창립 목적은 교회가 없고 문명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외로운 낙도에 계신 모든 분들이 100% 구원 받을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사진 정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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