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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출신 피아니스트’에서 ‘카페 처치’를 하기까지삼청동 카페 ‘보드레 안다미로’ 대표 김지영 목사 풀스토리
최윤희  |  youloveme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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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5월 04일 (목) 19:12:24
최종편집 : 2023년 05월 09일 (화) 13:31:21 [조회수 : 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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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삼청동 카페 ‘보드레 안다미로’ 대표

김지영 목사

‘박사 출신 피아니스트’에서 ‘카페 처치’를 하기까지의 풀스토리

 

‘연예인 인터뷰 카페’로 유명한 삼청동의 ‘보드레 안다미로’의 대표 김지영 목사. 피아노로 독일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김 목사가 낫는다는 보장이 없었던 허리병을 고치고 목사가 되고 카페 처치를 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하는데 사연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 최윤희 / 사진. 안호성(STUDIO 0319)

 

‘연예인들의 인터뷰 카페’된 ‘보드레 안다미로’

지난 5월 10일 새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기자는 김지영 목사를 만나러 그녀의 카페인 삼청동의 ‘보드레 안다미로’로 향했다. 카페로 들어서자 연예인 인터뷰 카페로 유명한 곳인 만큼 곳곳에 연예인들의 흔적이 있었다. 연예인들과 찍은 사진, 연예인들의 사인이 담긴 머그컵 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김 목사는 핫하다는 삼청동에 그것도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카페거리건만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에 머리는 질끈 하나로 묶고 흰 남방에 청바지를 입고 수수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너무나 내추럴한 모습이었다. 꾸밈없는 김 목사의 모습에서 ‘인터뷰 카페’라는 선입견은 사라졌다. 그리고 김지영, 그녀만이 남았다. 사진을 찍을 때도 연예인들의 사진 포인트를 안다면서 일반인치고는 사진 찍는 것을 어색해하지 않고 오히려 사진기자를 리드하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도대체 목사가, 그것도 가난한다는 인식이 가득한 목사가 어떻게 비싸디 비싼 금싸라기 땅에 핫하다는 삼청동의 카페 주인이고 이곳이 연예인들이 많이 찾는 인터뷰 카페가 된걸까?

“어느 날 이순재 선생님이 영화 ‘덕구’ 홍보를 하기 위해 저희 카페에 인터뷰를 하러 오셨다가 홍보사에 저희 카페 이미지가 너무 좋게 보여서 그다음에 하는 영화 홍보 인터뷰도 저희 카페에서 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인터뷰 카페가 된 거예요.”

 

   
 

 

영화 홍보사가 오히려 홍보해주는 ‘이상한’ 카페

그다음 영화 홍보 인터뷰가 바로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 1편’이었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얼마나 화려했나? 하정우를 비롯해 지금은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선 이정재, 차태현, 주지훈 등. 이렇게 톱배우들이 이곳을 찾다 보니 그다음부터 개봉되는 영화 홍보 인터뷰는 대부분 이곳에서 하게 되면서 카페는 순식간에 유명해지게 된 것이다. 이후로도 전지현, 정우성, 이영애 등 톱배우들의 인터뷰가 줄줄이 이어졌다.

어떤 전략(?)으로 다가간 걸까 궁금했다.

“저는 대관료도 없이 기자들 음료값만 받고 인터뷰 장소를 내드렸어요.”

이렇게 희생(?)하는 김 목사의 모습이 좋아 보였나보다. 홍보사에서 언론매체에 인터뷰를 할 때 꼭 카페 이름을 써달라고 하면서 카페는 널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카페 초창기라 홍보가 필요했던 김 목사로서는 거저 홍보가 돼버린 것이다.

 

카페 주인이자 목사

그런데 김 목사에 대해 한두 가지 궁금한 점이 있는 게 아니었다. 김 목사는 카페 주인이기도 하지만 호칭에서도 알 수 있듯 목사이다. 그것도 비싸디 비싼 금싸라기 땅인 삼청동에 카페 주인이라니.. 이것이 실화란 말인가? 자고로 목사란 가난함의 상징 아닌가? 그런데 한 달에 억 단위를 넘어가는 곳이 있을 정도로 비싼 이곳 삼청동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니..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카페 주인인줄 몰랐다. 그러다가 코로나 얘기를 하면서 요즘 모든 장사들이 다 어려운데 타격은 없었냐고 물어보면서 카페 주인인 줄 알게 된 것이다.

“코로나 타격이요? 전혀 없었어요. 제가 주인이니까요. 저는 오후 12시에 카페 문을 열어서 오후 5시면 문을 닫아요.”

아, 그래서 코로나 타격이 없었고 이렇게 시간 활용도 자유로울 수 있는 거구나 100퍼센트 이해가 갔다. 그러면 목회는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이곳에서 주일에 30-40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려요.”

 

독일 가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온 사람이 갑자기 목사?

주중에는 카페이고 주일에는 교회인 카페 처치인 것이다. 요즘 카페 처치를 많이 하고 있어서 그중의 한 곳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카페 2층에는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후배들을 위한 발표회를 열어준다. 그런데 독일까지 가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온 그녀가 그 아까운 이력을 내려놓고 목사가 된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제가 허리가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분당 서울대병원에 갔는데 거기서 한번 수술로는 힘들다고 했고 세 번 정도는 수술을 해야 된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것도 낫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허리가 아픈 이후로 김 목사는 걸어 다닐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몸은 다 휘어져있고 걸어 다닐 수가 없으니까 거의 기어 다니고 누워도 아프고 앉아도 아프고 서있어도 아프고 어찌할 줄을 몰랐다. 그런데 이럴 때도 사역하고 있던 분당 만나교회는 꼬박꼬박 주일마다 나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김 목사는 음악감독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감독으로 있었기 때문에 지팡이를 짚고서라도 교회는 갔어요. 제가 음악감독이라 예배 때는 무전기를 귀에 꼽고 예배를 진행했는데 아프니까 본당 2층 예배당에 있지 못하고 4층 자모실의 따뜻한 바닥에 누워서 주일 사역을 했어요.”

 

   
 

 

100일 기도, 기적이 일어나다!

김 목사의 허리는 점점 더 아파갔다. 김 목사는 ‘100일 기도’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곰이 기도를 해서 사람이 되듯이 저도 인간이 덜 돼서 그런가 보다 하고 100일 동안 기도를 해서 인간으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나야 되겠다고 생각을 해서 100일 기도를 시작하게 됐어요.”

밤 9시부터 자정 12시까지 매일 3시간 동안 기도를 했다. 찬양도 하고 말씀도 읽고.. 그런데 그때 놀라운 경험을 했다.

“환상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제가 엎드려서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제 몸에서 귀신이 나가는 걸 봤어요. 그리고 제 하혈도 멈추고. 몸도 몸인데 하혈을 계속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99일째 되는 날이 주일이었는데 그때 또 귀신이 나가는 걸 봤어요. 그리고 교회를 갔는데 전도사님들과 부목사님들이 저를 보고 난리가 난 거예요. (왜요?) 저보고 똑바로 걷는다고요.”

100일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이다. 그러면서 김 목사의 기도방향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하나님, 이런 피아니스트가 되게 해 주세요’, ‘이런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였다면 병이 낫고 나서는 ‘하나님, 제가 세상적으로 유명하게 되려고 한다든지 돈을 추구한다든지 세상적으로 빠지게 되면 아픈 허리를 생각나게 해 주세요’라고.”

김 목사는 그 당시 피아노로 아주 잘 나갈 때였다.

“독일 유학 갔다 와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에 들어왔는데 승승장구를 할 때잖아요. 연주도 엄청 많이 잡혀있고 최고의 박사학위를 받고 제 사랑하는 남편과 물질에 대해서도 걱정 없고.. 레슨 하는 학생들도 굉장히 많아서 돈도 되게 많이 벌 때였거든요.”

 

“나 목사되면 안되는데...”

그렇지만 기도로 고칠 수 없는 병을 낫고 나서는 마음도 바뀌고 기도방향도 바뀌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때 ‘수련목 시험’(감리교의 목사 되기 위한 시험)을 준비하던 때인데 너무 아파서 시험준비를 거의 못하고 있을 때였다. 아파서 교회도 주일 빼고는 거의 못 가고 있을 때라 아무런 준비도 못하고 있을 때인데 동기 전도사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그때 수련목 시험을 준비하던 전도사님들이 7명이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 ‘너희들 한 명이라도 떨어지면 수련목 연금 이런 혜택 하나도 없어’라고 하시는데 제가 제일 걱정이 되는 거예요. 저만 빼고 나머지 전도사님들은 다 젊고 열심히 준비하니까 제가 제일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래서 저를 챙기라고 그랬대요.”

동료 전도사들이 김 목사의 수련목 서류들을 다 준비해서 제출해줬다.

“어느 전도사님이 제 서류를 다 준비해줬어요. 도장까지 파갖고 와서 찍어서 제출해줬고 어느 전도사님은 시험공부를 해야 하니까 요약본으로 20장 정도 만들어서 온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것도 많다고 하니까 10장으로 줄여줬어요. 각 과목마다. 그렇게 해주니까 제가 한 번만 읽어도 되었어요. 우리 때는 구약이 어렵고 신약이 쉬웠어요. 그런데 제가 100일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었다고 했잖아요. 성경이 어디부터 시작되죠? 창세기부터 시작되잖아요. 제가 구약을 다 읽은 거예요. 저는 공부를 한 게 아니고 그냥 성경을 읽은 거예요. 시험을 치는데 정말 ‘와, 어떻게 이렇지?’ 막 술술 답이 써지는 거예요. 제가 막 시험 끝나고 나서 전도사님들이 제가 제일 걱정이 되니까 전부 저한테 와서 ‘누나, 어떻게 됐어?’라고 물어보는데 제가 막 울면서 ‘나 합격할거 같아. 큰일났어. 나 목사 되면 안 되는데 어쩌지?’ 그렇게 말했어요.”

 

하나님의 강권적인 ‘목사 행’

김 목사는 100일 기도의 응답을 받아서 못나을 것 같던 허리병도 낫고 기도 방향도 바뀌고 수련목 시험도 봤지만 목사 안수받는 것이 되게 싫었다고 한다. 인간인지라 그런 기적을 체험하고도 여전히 마음속에는 예전의 욕망들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명품도 되게 좋아하고 핫하게 돌아가는 거 되게 좋아하고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리고 그것도 진득하게 예술하는 사람도 아니고 제 스타일이 있으니까.. 예를 들어 음악도 바흐나 모차르트나 이런 고전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신학 하면 무게도 있고 좋을 텐데, 저는 라흐마니노프를 잘 치는 사람이기 때문에 화려하고 빠른 걸 잘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목사 안수를 안 받으려고 했죠. 그런데 하도 제가 목사 안수를 안 받으려고 하니까..”

목사 안수를 받기 5일 전인가, 6일 전에 강원도 평창을 간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엄청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귀신들이 때거리로 있는게 보였어요. (어떻게 보였어요?) 그냥 사람처럼 보여요. 그들을 쫓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셨어요. 기도와 말씀으로.. 그래서 ‘나는 이 길로 가야 되나 보다’ 하고 생각했죠.”

그래서 김 목사는 되게 싫었던 목사 안수를 받게 된 것이다.

 

   
 

 

예술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 ‘보드레 안다미로’

그럼 카페는 어떻게 차리게 된 것일까?

“제가 사역하던 교회를 사임하고 쉬고 있었는데 그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첼로 하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저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지금은 유명하게 됐는데 그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목사님이 하시는 일을 계속하셨으면 좋겠어요.’, ‘예술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그래 그렇게 하자. 그러면 나 목사니까 여기서 교회를 하자’ 이렇게 된 거예요.”

그녀는 분당에서 삼청동으로 사역의 자리를 옮기면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녀가 목사가 되면서 포기했다고 생각했던 음악일도 계속하게 해 주시고 또 다른 놀라운 일들을 펼쳐나가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었으니까.

 

새로운 사역이 펼쳐지다!

“제가 여기를 왔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제가 모르던 세상을 알게 하시는 거예요. 어떤 거냐 하면. 여기서 콘서트도 하고 갤러리도 하고 브레드 브런치도 하고 그랬는데 어느 날 제가 사역하던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기자가 자기네 신문에 기사를 3개 정도를 써준 거예요. 그랬는데 그 기사를 보고 KBS 방송국에서 그 기자한테 연락이 왔대요. 저를 라디오에 출연시키고 싶은데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종교와 인생’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찬송가가 클래식에서 나온 게 많으니까 바흐나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을 설명해달라고 했어요. 작가가 원고를 썼는데 작가는 클래식 전공자가 아니잖아요. 제가 밤을 새워서 다 교정시켜줬어요. 그랬더니 그 작가가 감동을 한 거예요. 그 프로그램을 일주일 동안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PD가 고정으로 가자고 해서 매주 토요일과 주일 이틀을 고정으로 1년 동안 했어요.”

이후에도 김 목사는 새로운 지경을 계속해서 넓혀나갔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승승장구하게 하셨다.

“그러고 나서 전에 같이 사역했던 목사님 한분이 카페로 찾아온 거예요. 지금은 사역을 내려놓고 서울시에서 청소년센터 상담 선생님으로 계시는데, 어느 날 문득 찾아와서는 ‘학교 밖 청소년’(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 있죠? 그 아이들 직업교육으로 커피 좀 가르쳐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이들 커피 레슨을 시작했어요.”

 

연예인 매니저, 연예부 기자들의 멘토가 되기도..

게다가 인터뷰 카페가 된 계기로 알게 된 연예인 매니저와 연예부 기자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사역도 하고 있다.

“연예인들이 이곳에 와서 인터뷰를 하면서 옆에 있는 매니저들의 삶을 보게 되잖아요. 매니저들이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사는 것을 알게 됐어요. 힘든 일을 하면서도 월급은 엄청 적어요. 월급이 50만 원, 60만 원 정도밖에 안돼요. 매니저들은 여기에 대한 아픔과 자존감이 많아 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그들을 상담하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근처에 오면 들리더라고요. 그렇게 케어를 하면서 라포가 형성됐고 대화를 하면서 복음을 전하기도 했어요.

기자들도 똑같아요. 월급이 굉장히 적어요. 제가 목사란 걸 알게 되면서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 자기들의 삶을 얘기하고 상사들 얘기하고 그러면서 자기 안에 치유가 일어나겠죠. 다른 데서는 말을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해서 7명 정도가 모임을 갖는데 근처에 오면 4-5시간 정도 머물다가 가요. 기사도 쓰고 힐링도 하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그런’ 공간이 됐다고 한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또 있다.

“여기 있으면서 ‘청와대 합창단’을 만드는데 많이 도와줬어요. 청와대 직원들 합창단인데 장관도 있고 국장도 있고.. 그들을 케어해주면서 인맥을 쌓게 됐어요. 그리고 저희가 핸드드립 커피가 맛있다 보니까 여기 근처의 대표님들이 많이 오세요. (어떤 대표님들이세요?) 갤러리 대표님들이나 회사 대표님들. 예를 들어, KT나 현대, SK 대표님들이요. 그분들이랑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제가 목사란 걸 알게 됐고 목사가 운영하는 카페란 걸 알게 되면서 그분들이 저희 카페 홍보를 하고 다니시는 거예요.”

 

“포기했는데 하나님이 다 하게 하셨어요”

김 목사는 새로운 지경이 열려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은 본업이었던 피아노를 계속하게 해 주시는 은혜를 주셨다.

“그 얘기를 꼭 해드리고 싶었어요. 전 다 포기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하나님께서 다 하게 해 주셨어요. 제 친구들은 레슨이 없어서 난리거든요 정말. 저는 지금 고3 레슨 여섯 명하구요, 8월에는 비엔나로 해외 연주도 가요. 청와대 합창단도 하고,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감사원에 계신 분이 오셔서 합창단을 만들려고 하는데 도와달라고 하셨어요.”

마침 감사원에 계신 분들이 카페로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김 목사는 어느 손님보다 반갑게 맞이한다.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서 평소 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김 목사는 카페일만 해도 굉장히 바쁘다. 평일에는 혼자 일하고 주말에만 사람이 와서 도와주는데 기자가 수시간 동안 앉아서 인터뷰를 하면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혼자 커피 내리고 혼자 주스 만들고 혼자 팥빙수 만들고 혼자 파이 잘라서 주고.. 2층에서 내려오시는 연세 드신 분들이 계시면 얼른 뛰어가 쟁반을 받아오기도 하고 손님이 가시면 행주랑 소독제로 쟁반과 앉았던 테이블을 다 소독하고... 한마디로 정신이 없었다.

“저는 정말 열심히 살아요. 정말 개미같이 일해요. 토요일이랑 빨간 날은 여기 정말 사람이 많이 오거든요. 근데 개의치 않고 일해요.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바쁘지만 우리가 어차피 주의 일을 하다가 주님이 미소 짓고, 미소 짓는 삶을 살다가 죽어야 하잖아요.”

 

사회적 기업을 꿈꾸며...

그래서 김 목사는 앞으로도 개미처럼 일할 것이라고 한다. 벌써 3년 후의 계획이 잡혀있다.

“3년 후에 사회적 기업을 하려고 준비 중에 있어요. 교육사업인데.. 저소득층 아이들 클래식 레슨을 해주려고 해요. 학교를 보내줘야 하니까. 아무리 우리가 10만 원, 20만 원 도와준다고 해도 아이들이 스스로 일어나게 해 주는 게 좋잖아요. 거의 공짜나 다름없어요. 엄청 적게 받으면서 레슨을 할 건데 완전히 공짜면 아이들이 고마운 걸 모르기 때문에 레슨비를 적게 받으려고 하는 거예요.”

벌써 레슨 선생님들은 여섯, 일곱 명 섭외를 다 끝낸 상태이다. 그리고 땅도 알아보러 다니고 있다.

김 목사의 삶은 너무 많이 펼쳐져있었다. 피아니스트로 성공을 꿈꾸던 때보다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전의 목사 안수받기 싫어하던 세상에 젖어있던 김 목사는 어디론가 가버리고 하나님만 고백하는 그녀만 남아있다.

“하나님이 포기한 만큼 다 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게 너무 은혜예요”라고 말하는 김 목사의 얼굴에서 평온함마저 느껴진다. “제가 세상적으로 타락할 때 하나님이 이 아픔 생각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를 지금도 하고 있다는 김지영 목사. 그녀가 하루 종일 바쁜 가운데에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찬양을 틀어놓고 ‘그래 맞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지’라고 말하는 한, 그녀의 기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 같다.

 

<이 기사는 계간 ‘치유’ 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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