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괴(삿2:19)’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없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인들의 약 5%는 〈한글개역성경,1961년〉을, 나머지는 대부분 〈한글개역개정성경,1998년〉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번역된 〈한글개역성경〉은 대부분 중국어성경을 대본으로 하여 번역되었다. 최초의 한글 번역자들이 이 중국어성경을 모방하여 번역하는 바람에 어려운 한자어가 많아, 일반 대중들은 이 성경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 어려운 한자어들을 종류별로 나눈다면, 먼저 일반인들이 보고 들어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가 약 100군데, 다음으로 듣기에는 알기 쉬우나 읽기에는 매우 어려운 한자어가 약 50군데, 그 다음으로 듣기에는 알기 어려우나 보고서는 알기 쉬운 한자어가 약 20군데가 있다(박사성경, 부록156쪽).

또한 한글개역성경에는 우리말 국어사전은 물론이고, 중국어성경과 일본어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정체불명의 어려운 한자어들도 적지 않다. 예컨대 국한문 한글개역성경의 한자어들 가운데, ‘패괴(悖乖)’라는 단어의 한자어가 있다. 이 한자어는 구약성경 가운데 3군데에 나타나 있다. 즉 사사기 2장 19절과 욥기 9장 20절과 그리고 호세아 9장 9절에 나온다. 여기서는 이 3곳에 나오는 ‘패괴(悖乖)’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리고 한글개역성경 외의 다른 여러 성경들은 이것을 어떻게 번역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 구약성경 사사기 2장 19절을 올바로 번역한 성경들은 다음과 같다.

                                                - 다 음 -

(한글개역개정성경)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표준새번역성경) 사사가 죽으면 백성은 다시 돌아서서, 그들의 조상보다 더 타락하여 …

(공동번역성서) 그 판관이 죽으면, 그들은 다시 다른 신들을 따르고 그 앞에 절하며 섬겼는데, 그 하는 짓이 조상들보다도 더 나빴다 …

(현대인의성경) 사사가 죽으면 백성들은 옛 습성으로 되돌아가 그들의 이전 세대보다 더 부패하여 …

(나머지 한글 성경들) … 타락하다, 부패하다 등으로 번역함

(중국어성경) 可是士師死了以後，他們就轉而行惡，比他們的列祖更厲害(더 악하여)

(일본어성경) … 先祖たちよりも， いっそう 墮落して(타락하여)

(흠정역영어성경) that they returned, and corrupted(타락했다) …

(NIV신국제역본성경) the people returned to ways even more corrupt(타락하여) …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가 있을 동안에는 적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사사가 죽으면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경배했다는 내용이다. 위의 모든 성경들은 밑줄 친 바와 같이 ‘타락하다’ 혹은 ‘부패하다’는 의미로 번역했음을 알 수 있다.

- 하지만 다음의 ‘한글개역성경(삿2:19)’은 잘못 번역되었다

                                          - 다 음 -

(한글개역성경)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悖乖)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겨 그들에게 절하고 그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밑줄 친 ‘패괴(悖乖)’란 단어에서, 패(悖)는 어그러질 패이며, 괴(乖)는 어그러질 괴라는 뜻이다. 그래서 한글개역성경 번역자는 ‘어그러지다’라는 의미로 ‘패괴(悖乖)’라는 단어를 개인적으로 창안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패괴(悖乖)’라는 단어의 한자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말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어성경이나 일본어성경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초로 ‘패괴(悖乖)’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본문을 번역한 사람은 우리말 국어사전과 중국어성경, 일본어성경도 확인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패괴(悖乖)’라는 단어를 창안하여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정체불명의 이 단어가 예전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사용되어 왔던 것이다. 다시 말해 1938년에 〈성경개역〉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여, 그 후에 수십 번 수정 보완을 거쳐서, 1961년에 완성된 〈한글개역성경〉이 오늘날까지 ‘패괴(悖乖)’라는 단어를 사용해 온 것이다.

- 다음으로, 욥기 9장 20절에 나오는 ‘패괴(悖乖)’라는 한자어 대해 살펴보자.

- 욥기 9장 20절을 올바로 번역한 성경들은 다음과 같다.

                                               - 다 음 -

(한글개역개정성경) 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온전할지라도 나를 정죄하시리라

(공동번역성서) 나 비록 죄가 없다고 하여도 그는 나에게 죄가 있다고 하시겠고, 나 비록 흠이 없다고 하여도 그는 나의 마음 바탕이 틀렸다고 하실 것일세.

(표준새번역성경) 강한 쪽이 그분이신데, 힘으로 겨룬다고 한들 어떻게 이기겠으며, 재판에 붙인다고 한들 누가 그분을 재판정으로 불러올 수 있겠느냐?

(현대인의성경) 내가 의롭다고 해도 내 입이 나를 죄 있는 자로 단정할 것이며 내가 흠 없이 온전하다고 해도 하나님이 나의 악함을 입증하실 것이다.

(바른성경) 비록 내가 의롭다고 해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할 것이며, 내가 순전하다 해도 그분이 나의 악함을 선언하실 것이다.

(우리말성경) 내가 아무리 나를 정당화해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할 것이요, 내가 아무리 스스로 온전하다해도 내 입이 내 죄를 증명할 것이네.

(쉬운말성경) 설령 내가 아무런 흠이 없다고 해도, 그분께서는 내 입으로 나를 비난하게 할 것이네, 설령 내가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해도, 내 입술이 스스로 내 죄를 입증할 것이네.

(흠정역한글성경) 비록 내가 스스로 의롭다 해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할 것이요, 비록 내가 온전하다 말한다 해도 그것 역시 나의 패역(悖逆)함을 증거하리라

(중국어성경) 即使我有理，我的口還是定我有罪；即使我完全，我的口還是判我乖謬(나의 잘못을 입증함)。

(일본어성경) … たとい 私が 潔白でも， 神は 私を 曲がった 者とされる(내가 결백해도, 하나님은 나를 틀린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흠정역영어성경) If I justify myself, mine own mouth shall condemn me: if I say, I am perfect, it shall also prove me perverse(나의 잘못을 입증할 것이다).

위의 성경들은, 번역자들이 본문을 번역함에 있어서, 직역과 의역을 통해서 나름대로 본문의 원래 의미를 나타내고자 노력했음을 엿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본문의 번역 내용이 서로 약간씩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본문의 주된 내용들은, 욥 자신이 아무리 의롭다고 해도 자신의 입이 자신을 정죄할 것이며, 또 자신이 아무리 온전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잘못을 입증하실 것이라는 말씀이다.

- 다음의 한글개역성경(욥9:20)은 잘못 번역되었다

                                                  - 다 음 -

(한글개역성경) 가령 내가 의로울찌라도 내 입이 나를 정죄하리니 가령 내가 순전할찌라도 나의 패괴(悖乖)함을 증거하리라

이처럼 한글개역성경은 다른 번역 성경들과 의미는 상통할지 모르지만, 우리말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패괴(悖乖)’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본문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했다.

여기 나오는 ‘패괴(悖乖)’라는 단어는 서두에 언급했듯이, 우리말 국어사전뿐만 아니라 중국어성경이나 일본어성경에도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이 본문을 읽은 독자들 가운데는 ‘패괴(悖乖)’가 무슨 말인지, 우리말 국어사전을 찾아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말 국어사전에, 이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냥 지나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한편, 한글개역성경 이후에 나온 10여 종의 한글성경들의 번역자들은, ‘패괴(悖乖)’라는 단어가 우리말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앞서와 같이 개역성경의 ‘패괴(悖乖)’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번역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였다. 이를테면 ‘패괴’를 대신하여, ‘흠’과 ‘죄’와 ‘악함’과 ‘잘못’과 ‘패역’ 등으로 번역해 놓았음을 볼 수 있다.

우리말 국어사전에 ‘패괴(悖乖)’라는 한자어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패괴(敗壞)’라는 한자어는 나온다. 이 패괴(敗壞)’라는 뜻은 ‘부서져 무너짐’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국어사전에 ‘패역(悖逆)’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 뜻은 ‘인륜에 어긋나고 불순함’으로 나와 있다. 또 위에서 흠정역한글성경은 ‘나의 패역(悖逆)함을 증거하리라’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패’(悖)’는 ‘어그러지다’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패역(悖逆)’이라는 번역은 무난해 보인다. 그런데 한글개역개정성경은 개역성경의 ‘패괴(悖乖)’라는 단어 대신에, ‘나를 정죄하시리라’고 두루뭉술하게 번역했다. 나의 무엇을 정죄하신다는 말씀인가? 이 무엇에 해당하는 목적어를 빼고 번역했으므로, 다른 번역 성경들에 비해 번역 수준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 그 다음으로, 호세아 9장 9절에 나오는 ‘패괴(悖乖)’라는 한자어 대해 살펴보자.

- 호세아 9장 20절을 올바로 번역한 성경은 다음과 같다.

                                               - 다 음 -

(한글개역개정성경) 그들은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부패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공동번역성서) 기브아 사건이 터지던 시대 못지않게 이 백성은 속속들이 썩었다. 하느님께서 이 백성의 악행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새번역성경) 기브아 사건이 터진 그 때 못지않게, 이 백성이 더러운 일을 계속한다. 주님께서 이 백성의 죄악을 기억하시고, 그릇된 행실을 다 벌하실 것이다.

(현대인의성경) 그들이 기브아 시대처럼 몹시 타락하였으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에 대하여 그들을 벌하실 것이다.

(나머지 한글 성경들) … 타락하다, 부패하다 등으로 번역함

(일본어성경) 彼らは ギブア の 日のように， 眞底まで 墮落した(타락했다)．

(중국어성경) 以法蓮深深敗壞(부패하여)，如同在基比亞的日子一般。

(흠정역영어성경) They have deeply corrupted(부패했다) themselves, …

(NIV신국제역본성경) They have sunk deep into corruption(부패), …

본문은 사사 시대 말기에,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 지역의 불량자들이 한 레위인의 첩을 윤간하여 죽게 했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발단이 되어, 동족 간에 내전이 발생하여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이 거의 멸절되다시피한 매우 비극적이고 타락한 사건이 되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히 부패했다고 언급했다. 그래서 위의 성경들은 모두 다 밑줄 친 바와 같이 ‘부패 혹은 타락’의 의미로 번역되었다.

- 하지만 다음의 한글개역성경(호9:20)은 잘못 번역되었다.

                                              - 다 음 -

(한글개역성경) 저희는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패괴(悖乖)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이처럼 한글개역성경 번역자들은 ‘패괴(悖乖)’라고 번역하였다. 이 번역자들은 ‘어그러지다’는 의미의 한자어를 창안하여 ‘패괴(悖乖)하다’라고 했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이 단어는 한글사전은 물론이고 중국어성경과 일본어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한자어이다.

한편, 생명의말씀사에서 발간한 현대인의성경은 1970년에 처음 번역되었다. 당시 이 성경은 이해하기 어려운 한글개역성경(1961)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현대인의성경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한 책이므로 모든 사람들이 다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취지에서 시작된 〈현대인의성경〉은 가능한 한 쉬운 말을 선택하고, 문장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였다.

그 이후에 나온 10여 종의 한글 성경들도 대부분 바른말과 표준말을 사용하여, 누구나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였다. 하지만 한글개역성경과 한글개역개정성경은 다른 성경들과는 달리 어려운 한자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려운 성경이다. 한글개역개정성경은 발간 당시, 한글개역성경을 약 7만 곳을 수정 보완한 성경이라고 했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 성경에도 여전히 잘못 쓰인 단어나 문장이 약 1만 곳이 있다고 한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한글개역성경〉에는 우리말 국어사전은 물론이고, 중국어성경과 일본어성경에도 나오지 않는 한자어들이 수두룩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약성경 3군데에 나오는 ‘패괴(悖乖)’라는 단어의 한자어도 그 가운데 일부분에 속한다. 성경 번역자들은 성경을 번역하면서 창의력을 발휘하여, 우리말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를 임의적‧자의적으로 번역해서 사용해 왔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정체불명의 단어들을 함부로 만들어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또 성경번역위원회는 그러한 자들에게 성경 번역을 맡겨서도 안 된다. 성경 번역자들은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그 뜻을 명확하게 전달되도록 성경을 번역해야 한다. 그러므로 대한성서공회는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말 국어사전에 나오지도 않는 패괴(悖乖)라는 단어들을 없애고, 국어사전에 나오는 단어로 문맥에 맞게 올바로 고쳐서 번역해야 할 것이다.

권영문 / 전 경성대 교직원, 현 기독교 칼럼니스트 / 「성경 번역과 해석 올바른 설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