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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한 방울이 모자라
김화순  |  givy4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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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4월 16일 (일) 22:56:21 [조회수 : 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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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난 지 이태쯤 지났나 생각되었는데 한 해가 조금 넘었다. 우리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던 이어령 선생님을 기억했다. 그의 생전에는 큰 관심을 두지 못했는데, 그가 떠난 후 남긴 저서들을 곁에 두고 자주 펼쳐보고 있다. 어제는 <눈물 한 방울>을 손에 들고 읽다가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이지 마음으로 꺼억꺼억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주위를 돌아보면 무엇이 보일까. 그는 삶의 작은 것 하나 무시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까지도 끌어안고 공감하고 있었다. 불과 한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 함께하면서 삶을 반추하고 죽음과 독대하며 써 내려간 이어령 선생님의 메시지는 서문에서부터 이토록 강렬하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준다... 낙타도 코끼리도 눈물을 흘린다고 하지만, 정서적 눈물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다. 로봇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 나자로의 죽음과 멸망해가는 예루살렘을 보고 흘렸던 예수의 눈물, 안회(顏回)의 죽음과 골짜기에 외롭게 피어 있는 난초 한 그루를 보고 탄식한 공자의 눈물, 길거리에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흘린 석가모니의 눈물, 그 사랑과 참회의 눈물이 메마른 사막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는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해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봤다. 딱 하나,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바로 눈물, 즉 박애(fraternité)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있다면 자유와 평등을 하나 되게 했던 프랑스 혁명 때의 그 프라테르니테, 관용의 ‘눈물 한 방울’이 아닌가. 나와 다른 이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세상 말이다.” 

눈물은 다양한 상황 가운데 기쁨과 슬픔 등을 함의하여 여러 방식으로 나타난다. 눈물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진정성을 나타낸다. 그래서 눈물이 감정을 전달하는 소통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말없이 흘리는 눈물이 또 하나의 의미를 담아,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어느덧 옛날이야기가 된 듯하지만, 정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과 슬픔만이 아니라 타인이 느끼는 고통과 슬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 고통과 슬픔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생각하고, 함께 아파하며 힘들어하기도 했다. 고통과 슬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타인의 얼굴을 보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는 것을 통해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그저 바라만 봐도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런 과정에서 기억의 수면 위로 오롯이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지금은 만날 수 없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고 내면에 잔잔한 평화가 찾아온다. 그래서일까, 가슴앓이로 고생하며 깊은 한숨에 빠진 이들에게 애정이 담긴 사랑의 마음으로 위로하고, 모두가 함께 가슴으로 보듬어 안아주는 동화 같은 세상을 꿈꾸게 된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까맣게 잊다 못해 지겨워하는 우리의 메마른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깊은 바다 한가운데서 수많은 생명을 잃은 지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눈물 한 방울의 박애가 간절하기만 한데 우리는 더 위로하고 더 사랑하지 못하는 차가운 얼음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뒤로 한 채 끝도 없는 아귀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눈물로 사람을 일으키는 동화 속 이야기는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것인가. 기억하기조차 버거워하며 한 방울의 눈물마저 아까워하는 우리 사는 세상이 서러울 뿐이다.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간 자리, 그 휑한 방 한가운데서 서러움과 그리움에 몸부림치며 아무도 두드리지 않는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 사람에게로, 그 눈물의 자리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눈물만큼 위대한 치료제는 없다. 눈물이 범람하여 세상을 삼켜버리기까지 함께 울자. 눈물이 강물 되어 굽이굽이 흐르고 흘러, 응어리가 맺히고 멍이 들었던 시간을 바다 저 한가운데로 보내고 나면, 비로소 응어리진 가슴과 한숨 보따리를 풀어 헤치고 편안한 한 줄 수평선으로 눕게 되지 않을까.

김화순∥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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