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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주 목사님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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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4월 16일 (일) 00:14:59
최종편집 : 2023년 04월 16일 (일) 00:39:02 [조회수 :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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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종종 듣는 부고(訃告)이지만, 부활주일을 맞은 지난 주간에 특별한 빈소에 다녀왔다. 계간 <성실문화> 애독자로서 그 책에 담긴 연재물 ‘기록하여 기억하다’ 필자의 부음을 듣고 방문한 것이다. 물론 뵙고 지낸 지 이십 년이 가깝지만, 워낙 대선배님이니 평소에 친밀감 있게 대하지 못하였다. 그런저런 연약하신 소문을 듣던 차에 벼락 돌아가시니 참 안타깝고 서운하다. 

  올 사순절-부활절에 발간된 <성실문화>(114호)에 첫 연재를 시작하신 참이었다. 글 제목은 ‘나의 목회 45년-1’이다. 앞으로 3년 아니 5년을 이어갈 수 있는 좋은 출발이었는데, 너무 빨리 막을 내린 듯하여 가팔랐던 기대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다섯 꼭지 중 첫 번째는 ‘1. 첫 임지로 가던 날 신발을 잃어버림’이다. 

  1963년 2월, 부름 받은 젊은 목회자의 삶은 이렇게 출발한다. 난생 처음 서울 염천교 근처 구두방에서 아버지가 사주신 구두를 신고, 하인천 어업연합조합 부두에서 배를 타고 첫 목회지 강화도 화도면 사기리교회로 부임하는 길이었다. 분오리 종점까지 몇 차례 배가 들러 들러 가던 중 그새 새 구두가 없어졌다. 아뿔싸, 누군가 탐낸 모양이다. 결국 종점에서 승객이 다 내리길 기다려 발에 맞지도 않은 헌 신발을 끌고 뒤축뒤축 교회를 찾아갔다.

  마치 곁에서 이야기를 듣는 듯 얼마나 실감 나고 구수한지, 책을 받아 읽자마자 흥분이 식기 전에 필자에게 전화를 드렸다. 아마 코로나 기간 내내 소식을 못 드렸으니, 삼 년 만의 일이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작고 나즈막 하셨다. 그럴수록 내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얼마나 글을 즐겁게 읽었는지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앞으로 5년쯤 장기 연재를 바란다는 덕담까지 드렸더니, 차차 목소리에 생기가 돌며 흐믓하게 웃으셨다. 

  아마 “하나 더, 하나 더”를 외치며 옛이야기를 조르는 손주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재미가 있는 이유가 있다. 우리 세대에서 듣지 못하던 아득한 생소함이 신비한 거리감을 좁히면서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게다가 필자의 타고 난 기억력과 찬찬한 입담 그리고 이야기 끝에 사설처럼 붙인 교훈은 격조를 높였다. 행여 당시의 기억을 한시(漢詩)로 남긴 경지는 시차를 두고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다.

  듣자니 필자가 목회하신 7교회 중 다섯 교회는 무려 100년을 헤아릴 만큼 연륜이 깊은 교회들이라고 한다. 그런 속절 많은 얘기를 듣다 보면 거인 위에 올라탄 난장이가 멀리 보듯 하고, 뿌리 깊은 나무 곁에서 깊은 샘을 마시는 기쁨이 든다. 게다가 가슴 뜨거운 이야기도 꼬리를 문다. 맹인 청년 이남례에게 점자(點字)로 한글을 가르쳤다. 이어 점자성경도 공부하였다. 필자가 물어보았다. “꿈에라도 눈을 떠 본 일이 있느냐?” 돌아온 답은 “꿈에서라도 한 번만 떠봤으면 좋겠어요!”였다. 

  그 대답을 듣고 홀로 돌아서서 흐느껴 울었다는 눈물 속에서 목회자 다운 진정성이 든 것은 자칫 가벼운 감성 때문이 아니었다. 60년 후까지 전해오는 잃어버린 신발 한 켤레를 깊이 묵상한 그의 한시는 엄연한 지성의 범주에 속한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이른 각성은 독자로서 젊은 영성가의 기록에 두고두고 기대감을 갖게 된 연유다.

  <푸른바다>는 필자가 자신의 호 벽해(碧海)를 딴 축사(祝辭)모음집이다. 생전에 낸 것이 모두 3집에 이른다. 평생 쓴 축사, 찬하사, 추모사, 권면사 등이 천 편 이상이라고 들었다. 그가 도맡은 이유는 그만큼 품격 높은 축하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말솜씨나 글재주가 아니라, 모두가 탄복해 마지않는 한 이치로 꿰뚫는 능력이었다. 요즘 말의 지조와 언어의 문격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는 마침내 오랜 박물관 하나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그런 풍요로운 기억과 애닯은 삶의 기록을 앞으로 어디에서 들을지 서운한 심정이 든 까닭이다.

  오세주 목사님(1937-2023)은 아내를 무척 사랑하여 애틋한 연서를 두루 남겼다. 첫 목회지 사기리교회로 시집온 아내에게 ‘백합화’(百合花)라는 별호를 붙여 준 대목은 그 옛날 연분치고는 너무 간지럽다. 그는 자신의 호를 ‘소향’(小鄕)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아내의 작은 고향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후 자신이 작은 고향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아내가 그의 대향(大鄕)이었다고 회고한다. 참으로 눈부신 일생이었다.

  행여 목사님의 기력이 빠르게 쇠하실까 염려하여 회갑 축장(祝章)을 앞당겨 졸랐는데, 소중한 선물을 받고도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다. 너무 송구스러워 미련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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