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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 (Colorful, カラフル, 2010)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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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4월 10일 (월) 23:27:56
최종편집 : 2023년 04월 10일 (월) 23:29:21 [조회수 : 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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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풀》 (Colorful, カラフル, 2010)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영화 《컬러풀》은 일본 나오키문학상 수상 작가인 모리 에토의 1998년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다. 원작소설은 일본에서 무려 누적 100만부를 돌파한 베스트셀러였으며 이 소설로 작가 모리 에토는 산케이 아동출판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짱구는 못말려》의 연출로도 유명한 하라 케이이치 애니메이션 감독은 이 베스트셀러 소설에 7년간의 작업을 거쳐 시각적 생명을 불어넣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영화가 바로 《컬러풀》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일본 애니메이션은 그 역사와 깊이와 폭이 상당하다. 다양한 소재와 작화, 기술과 상상력의 조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할까? 영화 《컬러풀》은 이 다양성과 탁월성에 충분히 자신의 이름을 더할 만한 작품이다.

큰 죄를 짓고 죽은 영혼인 주인공은 일명 ‘만물의 아버지’로부터 다시 한 번 세상으로 내려 갈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이 기회는 한시적인 여행이다. 다음 삶을 위해 주인공은 6개월 내에 반드시 자신의 지난 죄를 기억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 표현처럼 지상에서의 6개월은 말하자면 6개월 동안의 홈스테이인 셈이다. 이 홈스테이 기간 동안 그를 도울 천상의 존재는 안내자겸 감찰자인 프라프라다. 프라프라는 주인공이 임시로 들어가게 될 몸의 주인인 코바야시 마코토에 대해, 그리고 그의 주변에 대해 필요한 정보들을 전해준다. 중학생인 코바야시 마코토는 막 자살을 감행한 참이다. 그의 몸속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그의 몸으로 생활하면서 자신의 죄를 기억하는 임무를 수행해나간다.

여기까지의 설정만 들으면 영화는 전형적인 판타지물이나 스릴러물이 될 것 같으나 영화의 정체는 그런 종류와 거리가 멀다. 단지 외양만 빌려 왔을 뿐, 영화는 상처와 치유에 대한 드라마다. 주인공이 몸을 빌린 마코토는 과연 자살을 결심할 만한 최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무능한 아버지는 바람난 엄마와 살고 있고, 짝사랑의 상대는 원조교제를 하고 있는데다가 학교에서는 심지어 왕따를 당하고 있다. ‘뭐 이따위 몸이람.’이라는 기분으로 주인공은 경멸과 조소로 마코토 주위의 사람들을 대한다. 특히나 불륜을 저지른 마코토의 엄마에게는 더욱 모질게 행동한다. 그러나 그는 얼마지 않아 뜻밖의 사실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마코토뿐 아니라 그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깊게 베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영화의 후반은 모든 사람들이 치유로 향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치유의 키워드가 바로 ‘컬러풀’이다. 사람들은 저마도 모두 다르고, 내 안에조차 너무나 다른 ‘나’들로 가득 차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하나님 당신의 쉴 곳이 없다고 노래했던 하덕규 시인의 말처럼 말이다. 진정한 치유는 이 다른 ‘나’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나 아닌 나가 되려 애쓰지 않고, 싫은 나를 몰아내려 애쓰지 않고, 내 안의 모든 모습과 타인의 모든 모습을 다양한 색깔 ‘컬러풀’로 그저 받아들이는 것, 치유는 결국 상처 내기를 멈추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모든 헛된 애씀이 멈출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처럼. 감정이 깨끗이 씻기는 느낌이랄까? 영화는 신비하게도 이 치유를 돕는다.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천상의 안내자인 프라프라는 새로운 삶 앞에 불안해하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껏해야 몇 십 년의 인생, 조금 긴 홈스테이가 다시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기껏해야 조금 긴 홈스테이, 인생에 대한 정의로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또 있을까? 성경은 이 홈스테이라는 말을 조금 다르게 표현했다. “여러분은 나그네 삶을 사는 동안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벧전 1:17)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나그네와 거류민 같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적 정욕을 멀리하십시오.”(벧전 2:11) 신앙인의 삶은 어차피 이 땅의 나그네 삶, 기껏해야 수 십 년의 홈스테일 뿐이다. 정녕 그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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