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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을 것으로 심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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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4월 09일 (일) 14:10:29 [조회수 : 2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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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을 것으로 심어도
고전 15:42-44
(2023/04/09, 부활절)

음성으로 듣기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

∎ 가슴에 들어선 기둥 하나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문빗장까지 닫아걸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의 인사입니다. 주님은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복을 빌어주십니다. 주님을 가두었던 무덤은 빛이 부재한 어둠의 공간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온 세상을 밝히는 빛을 잉태하는 모태였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창조입니다. 말씀으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세상에 빛을 가져오신 하나님은 당신의 권능으로 주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절 이후 골방을 박차고 광장에 나온 베드로의 첫 설교는 그 놀라운 부활의 신비를 이렇게 선포합니다.

“여러분은 그를 무법자들의 손을 빌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그가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행 2:23b-24)

이전에 제자들이 보이던 나약하고 비굴하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마치 가슴에 든든한 기둥 하나가 들어선 것처럼 그들은 당당합니다. 이 놀라운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주님의 부활 사건입니다. 부활을 과학적으로 혹은 합리적으로 입증할 수는 없지만 부활이라는 사건이 일으킨 존재의 변화가 기적임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부활 케리그마의 핵심은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사실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부당하게 죽임 당한 자를 모른 척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죽음과 죽임은 다른 문제입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보편적 현실입니다. 평안하게 살다가 천수를 다하여 죽는 이들도 있고, 병들어 신음하다가 죽는 이들도 있습니다. 굶주림 속에서 죽는 이들도 있고, 난민이 되어 세상을 떠돌다가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거칠고 막막한 세상사에 멀미를 하다가 벼랑 끝에서 떠밀리듯 죽음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연재해나 각종 사건사고로 예기치 않은 순간에 죽음을 맞이한 이들도 있습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죽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생명은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존귀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억울한 죽음이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은 하나님의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참 생명은 죽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모든 것들, 즉 우리의 시간, 물질, 땀, 열정, 희생은 헛되이 허비될 수 없습니다.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 변화된 삶의 신비
주님은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화려하게 그리고 떠들썩하게 부활하셨더라면 어땠을까요? 예수를 죽음으로 내몬 이들은 벌벌 떨었을 것이고, 그를 따르던 이들은 환호작약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아주 은밀하게 이루어졌고, 부활의 목격자도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아침 주님의 무덤을 찾아왔던 여인들은 돌문이 이미 굴려졌고 주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놀랐습니다. 여인들의 증언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온 베드로와 요한도 영문을 알 수 없는 그 사건 때문에 놀랐습니다. 부활을 현실로 인식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전대미문의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건의 파장은 컸습니다. 제자들은 더 이상 죽음의 세력에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산헤드린 공의회에 잡혀가 심문을 당하고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경고를 받았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한 대답은 얼마나 장엄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인가를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행 4:19-20)

그들은 이미 죽음을 넘어선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이 땅에 오신 까닭을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요 10:10).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주님의 생명 안에 머무는 이들의 소명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누군가의 가슴에 짙은 그늘과 상처를 준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길 잃은 양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은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이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 절망의 심연으로 내몰리고 있는 이들, 세상에서 설 자리를 박탈당한 사람들 곁에 다가서고, 그들의 목소리가 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이들의 당연한 책무입니다. 기후 재앙이 현실이 되고 있는 세상에서 기후 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우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부활을 믿는 이들의 변화된 삶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나는 삶,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나는 삶,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나는 삶, 자연적인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는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 마지막 인간의 끈
우리는 망가진 세상을 고치시고, 속화된 세상을 거룩하게 바꾸려는 하나님의 은혜에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소명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련한 사람입니다. 불의한 세상은 정의를 요구하는 이들을 미워합니다. 부활을 믿는 이들은 그런 세상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영국의 사제 시인인 제라드 맨리 홉킨스(1844-1889)는 결코 절망에 굴복하지 않겠다면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 안의 이 마지막 인간의 끈을─비록 느슨할지라도─풀지 않겠다,
아니 아무리 지쳤어도, ‘더는 못한다’고 울부짖지 않겠다. 난 할 수 있다,
무언가 할 수 있다, 희망하고, 낮이 오기를 바라고, 죽음을 선택하지 않겠다.”
(제라드 홉킨스 <홉킨스 시선> 중 ‘부육腐肉의 위안’, 김영남 옮김, 지식을 만드는 지식, p.170)

이런 확고한 다짐이 필요합니다. 부활절 아침 멕시코 속담 하나가 제 귀에 쟁쟁하게 울려옵니다. “그들은 우리를 땅에 묻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씨앗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김진영, <조용한 날들의 기록>, p.441) 진실은 그리고 정의는 땅에 묻어서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수천수만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서 일하십니다. 이것도 일종의 부활의 몸이 된다는 말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힘겨운 나날이지만 부활의 믿음을 가슴에 품고 썩을 것을 썩지 않을 것으로 바꾸는 삶의 기쁨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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