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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결핍으로 인한 상처가 디딤돌이 됐어요”
최윤희  |  youloveme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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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4월 07일 (금) 00:40:26
최종편집 : 2023년 04월 13일 (목) 02:35:32 [조회수 :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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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사 박상희 소장 이야기

 

“아빠 결핍으로 인한 상처가 디딤돌이 됐어요”

 

심리상담사로 유명한 박상희 소장. ‘심리상담사가 무슨 상처가 있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당연히 있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녀의 상처는 ‘아빠의 사랑 결핍’인데, 그것으로 인해 연애에서부터 결혼, 직업, 취미에 이르기까지 아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지금부터 그녀의 상처를 들여다보자.

글. 최윤희│사진. 박상희 소장 제공

 

눈에 띈 그녀

어느 날 JTBC ‘사건반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는데, 패널 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연예인급의 외모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궁금했다.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보니 ‘심리상담사’ 박상희 소장이었다. 다른 프로그램에도 나오는 그녀를 보면서 ‘많이 나오네’라고 무심히 생각했다.

심리상담사이기 때문에 인터뷰 거리가 있을 거란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다가 상담에 포커스를 맞춰 인터뷰를 하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그녀가 운영하는 샤론정신건강연구소에 상담위원으로 일하는 분을 알고 있어서 연결을 부탁했다. 다행히 성사됐고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사실 마음에는 ‘인터뷰 거리’가 있으면 너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원래 계획대로 하기로 하고 상담관련 질문만 잔뜩 뽑아 그녀의 사무실로 갔다. 그런데 얘기를 듣다 보니 상처에 대한 스토리가 있는 게 아닌가! 그것도 아주 많이. 와우~

 

   
 

편견

참 편견이란 게 무섭다. 심리상담사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 말이다. 심리상담사는 전문가니까 상처가 없을 거란 편견, 있더라도 원인과 치료 방법을 아니까 알아서 잘 해결할 거란 편견. 이런 편견이 하마터면 중요한 인터뷰를 놓칠 뻔했다. 박 소장도 사전에 얘깃거리가 없다고 했고 내 편견까지 보태지면서 가능성을 점쳐보지 않았다.

편견이 무섭다는 생각을 뒤로 하고 그녀의 근황부터 물었다.

“방송은 5개나 하고,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이고,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기도 합니다.”

연예인도 아닌데 방송을 5개나 한다? JTBC ‘사건반장’ MBN ‘고딩 엄빠’와 ‘해석남녀’ tvn 스토리 ‘다시 언니’ 대교 TV. 말만 들어도 되게 바쁘겠단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한 날도 녹화하고 오는 길이었는데 차가 막혀서 늦게 도착했다. 스케줄만 봐서는 연예인이었다.

 

‘걸그룹’ 출신 심리상담사

알고 보니 그녀는 실제로 연예인 출신이었다. ‘아, 그래서 그렇게 한눈에 띄었구나’하고 미모가 이해갔다. 오해는 하지 말라. 일반인도 예쁜 사람 많으니까... 그녀는 1대 걸그룹 SOS 출신이다. 한일합작 걸그룹이었는데 1년 반만에 활동을 접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그녀의 과거 이력에 대해 ‘연예인 출신’이란 말로 그녀를 옭아맨다. 그녀는 그런 시선이 부담스러운가 보다.

“제가 그때 연예인이었던 건 맞는데 재미도 있고 돈도 많이 벌고 해서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한 거지 직업개념으로 한 것이 아니어서 사람들이 ‘SOS 출신이죠?’라고 말씀하시면 제안에서 충돌이 일어나요. 그렇지만 일일이 다 구구절절 설명하기 싫어서 그냥 ‘네’라고 간단하게 대답만 하고 말아요.”

그녀는 그때 정말 화려한 삶을 살았다. 대부분 연예인이 그렇다. 그 세계는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의 세계와는 완전 딴 세계다. 뭐라고 해야 할까. 우리와 거리가 먼 달나라 같은 곳? 세계가 다르니까 ‘노는 물’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주로 가던 곳이 강남의 리버사이트호텔과 줄리아나서울호텔. 그곳은 그 당시 최고로 물 좋은 곳으로 유명하던 나이트클럽이었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그녀는 또래 친구들과 상황이 많이 달랐다. 돈도 많이 벌었고, 차도 구입했고, 친구들은 유명 연예인들이 즐비했고, 남자친구는 외제차를 타고 다니고...

5대째 기독교 집안의 모태신앙을 갖고 태어난 그녀지만 매일 유혹이 많은 세계에서 살다 보니 점점 그쪽 세계에 물들여져 갔다. 겉으로는 화려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가슴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마음은 점점 괴로워지고 피폐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모르겠어요. 왜 그랬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남자친구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남자친구요?) 네. (왜요?) 사람을 사귀다 보면 좋은 사람도 사귀고 양아치 같은 사람도 사귀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과 관계를 끊지 못하는 거예요. (왜요?) 제가 아빠 결핍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하고 헤어지는 걸 잘 못해요. 사람하고 헤어지면 마치 ‘생살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파요.”

 

   
 

아빠가 사랑해주지 않았어요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친구 사귀는 것과 아빠 결핍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저는 어렸을 때 아빠 사랑을 못 받고 자랐어요. 아빠가 저를 사랑해주지 않았거든요.”

그녀는 아빠가 마흔이 넘어서 난 막둥이에 늦둥이여서 사랑받을 모든 조건을 다 가지고 태어났건만 왜 사랑을 받지 못했을까?

“아빠는 늘 시름시름 아프셨고 그 당시 사업이 잘 안되고 우울증도 있으셔서 여러 가지로 저를 사랑해줄 여력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달으니까.”

늘 아빠에 대한 사랑을 갈망했다. 그래서 남자친구를 만날 때도 아빠와 같은 사람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빠의 사랑을 대신할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는데 그 사람과 헤어진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면 아빠랑 헤어지는 거랑 똑같은 거고 또 상처를 받아야 하는 거다. 그러니 생살 떨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껴서 못 헤어졌다.

얼마 전 청소하다가 약간 살점이 떨어졌는데 얼마나 아프던지... 그런데 그녀의 생살 떨어짐은 내 살점 조금 떨어지는 거랑 비교도 안 되는걸 테니 얼마나 아팠을까.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상처가 꽤 깊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예쁘고 밝게만 보이는 그녀에게 그런 고통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쓰러웠다.

 

달라진 그녀

그런 이유로 화려한 생활을 했지만 속은 괴롭고 힘들었다. 그녀의 엄마와 숙모는 신앙이 좋았다. 숙모의 추천으로 부산에 있는 작은 기도원에 가게 되었다. 다른 길로 빠져서 헤매고 있는 그녀를 보고 엄마와 숙모가 그녀를 등 떠밀어서 가게 된 기도원이었다.

“그곳에서 정말 성령 불을 받았어요. 얼마나 뜨겁던지... 회개 기도를 시키시는데 회개가 막 터져 나오고 방언도 받고 ‘이게 웬일인가’ 싶을 정도로 뜨거운 은혜를 받았어요.”

한 달 정도 부산에서 생활한 후 서울로 올라와 그곳 목사님의 제자가 개척하신 교회를 출석했다.

“제가 부산에서 이미 성령 불을 받았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뜨거웠겠어요? 매일 교회 가서 두세 시간씩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매일 살다시피 했죠. 친구들도 제가 매일 교회 가니까 저 있는 곳으로 찾아오고 그 당시 남자친구인 지금의 남편도 교회로 찾아와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맛있는 것도 먹고 얘기도 하고 거의 밤을 지새우다시피 하며 지냈어요.”

매일매일이 수련회였을 것 같다. 그녀는 교회가 그렇게 재미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행복했다고.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마음은 피폐해져 갔는데 교회 가서 기도하니까 언제 괴롭고 언제 힘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평안해지고 마치 초대교회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다시 5대째 모태신앙의 그녀로 돌아온 것이다.

 

   
 

아빠의 트라우마

그러나 아빠에 대한 결핍은 여전했다. 은혜는 은혜고 결핍은 결핍이었다. 그렇다면 그녀의 아빠는 왜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걸까? 이유가 궁금했다.

“저희 친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셨어요. 33인에 들지는 못하셨지만, 독립운동 인명사전에도 나올 만큼 훌륭한 분이셨대요. 그런데 독립운동을 하셨으니까 도망을 다니셔야 했을 거 아니에요. 국내에 계시지 않고 일본으로 중국으로 다니셨대요. 저희 아빠도 같이 도망자 생활을 한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불안했겠어요.

게다가 아빠는 도망만 다닌 게 아니라 여러 가지 고난도 겪으셨대요. 아빠가 일본에서 학교에 다닐 때 전교 1등을 했는데 일본 아이들이 아빠를 데리고 가서 막 때렸나 봐요. 돈도 뺏고 조센징이라고 이지메도 당하고... 어린 나이에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겠어요? 친할머니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를 전혀 돌보지 않으셨대요. 그러니 아빠도 엄마 결핍, 아빠 결핍, 불안 등이 겹치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삶을 사셨던 것 같아요.”

그런 환경과 상황에서 어린 시절을 겪었으니 아빠의 심리상태는 굉장히 불안정했을 것이다. 아마 그때 그녀의 아빠 상태가 안 좋아진 게 아닌가 싶다. 어렸을 때의 안 좋은 경험은 커서도 오래 지속이 되는데 평범한 경험도 아니고 불안한 생활을 해야 했던 환경은 트라우마로 남기에 충분했다.

“어렸을 적 아빠에 대한 기억은 무능하고 아픈 할아버지 같은 아빠였어요.”

그녀의 엄마는 ‘교통사고 후유증’이라고 했는데 그녀의 해석은 달랐다. 마음의 질병이었던 것. 어린 시절의 불우한 기억이 아빠로 하여금 우울증을 앓게 했고 사고도 당하면서 육체적, 심리적 고통이 무기력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아한 아빠

“저희 아빠는 그 당시 드문 ‘유럽발’ 고고학자셨어요. 골동품 사업을 하셨는데 사업이 잘돼서 유복하게 살았어요. 집에 정원도 있었어요. 아빠는 고고학자에 걸맞은 취미생활을 하셨어요. 정원에는 탑이 있고 집안에는 전축이 있어서 클래식을 들으셨어요, 그림도 엄청 많았는데 그림을 보실 때는 담배를 피우시면서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보듯 그렇게 보셨어요. 도기 세트도 있었고, 그 당시 웬만한 가정에는 없었던 커피까지 있어서 정말 고상하고도 우아한 생활을 하셨죠.”

그녀 얘기를 듣다 보니 탑도 클래식도 그림도 도기 세트도 커피도 전부 혼자서 즐기는 일이었다.

“원래 조용조용하시고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런데다 사업이 어려워지고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은 몸대로 아프고 어린 시절 겪은 마음의 병까지 합해져서 그녀의 아빠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점점 늙어만 갔던 건 아닐까. 그래서 늦은 나이에 낳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예쁜 막내딸이었지만 사랑을 주지 못한 건 아닐까. 사람은 육체적인 질병 때문에도 아프지만 마음의 병도 무섭다. 그것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큰 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그녀의 아빠는 그걸 감당할 만큼의 능력이 없었던 거다.

그녀가 이런 아빠의 능력을 나중에야 이해했지만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 젊은 이십 대 시절에 이해할 수 있었겠나.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빠 찾아 삼만리’를 했다.

“아빠 같은 사람을 찾았어요. (아빠를 싫어했는데 아빠 같은 사람을 찾다니요?) 그게 아니라 아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은 거예요. (아, 네...) 그래서 아빠처럼 나이 많고 자상하고 말수도 적고 따뜻하고 나를 토닥토닥해주고 옆에 오래 같이 있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았죠.”

 

스물다섯에 결혼하다

그런 사람을 찾아 그녀는 스물다섯이란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남편은 저와 아홉 살이나 차이가 났어요. 남편은 말 없고, 자상하고 제가 원하던 이상형에 아주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우리 집은 5대째 기독교 가정이고 남편의 아버지는 경상도 불교협회 임원을 역임하신 분이셔서 종교적으로 맞지 않았어요. 저희 엄마는 처음에 반대하셨어요. 나이 차이도 많고 종교도 달라서... 그러나 남편이 저를 따라 교회 다니면서 열심히 믿게 되자 엄마도 허락하시게 됐어요.”

남편이 그녀가 원하던 이상형인 걸 보면 하나님이 그녀의 기도 제목을 제대로 들어주신 것 같다. 올해로 결혼한 지 25년째. 여느 부부들이 그렇듯 결혼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도 많았고 지금도 그러한 고비를 지나고 있지만, 그녀가 전도한 남편은 신앙 면에서 그녀를 앞서가며 교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충성스러운 장로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도 올해 성인이 돼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녀는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그녀의 남편이 아빠의 결핍과 관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심리상담사가 되어서야 ‘아빠를 대신해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것’과 ‘남편에게 아빠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짓’이란 것을 깨달았어요.”

 

그녀는 어떻게 심리상담사가 된 걸까

앞서 그녀는 결혼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많았다고 했는데, 결혼하자마자 위기가 찾아왔다.

“남편이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결혼하고 한 달 만에 IMF가 터진 거예요.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경제적 어려움이 찾아왔어요. 저는 어린 나이에 준비도 없이 결혼한 터라 이런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었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누구한테 말할 사람은 없고 신랑이 힘들어하니까 저도 힘들고... (엄마한테 말하지 않았나요?) 엄마한테는 얘기할 수가 없었어요. 가뜩이나 반대한 결혼을 했는데 그런 얘기했다가 좋은 반응이 나올 리 없잖아요. 그리고 엄마는 제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미국에 있는 언니네 아이 보러 가셔서 한국에 안 계셨어요. 언니 둘도 미국에 있어서 전혀 얘기할 상황이 아니었고, 친구 중에도 결혼한 친구가 없어서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어요.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했죠.”

 

   
 

상담학을 마주하다

많이 외로웠겠다 싶었다.

“저는 괴로우면 방법을 찾아요. 의식적으로 찾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뚫고 나가는 성격이에요.”

진퇴양난에 빠지자 그녀가 선택한 것이 공부였다.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기독교학과를 선택했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해 1, 2등급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선택한 것이 자연스러웠다. 이대를 선택한 것은 이대 출신 엄마와 둘째 언니의 영향이 컸다. 그녀도 결혼한 여자가 남녀공학보다는 여대 다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남편 역시 여대를 원해서 그렇게 결정한 것이었다.

 

웬 기독교학과?

홍익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연예인을 했던 그녀에게 기독교학과는 좀 낯설고 생뚱맞아 보였다. 기독교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때 제가 신앙이 너무너무 좋을 때였어요. 개척교회 가서 맨날 기도할 때니까 자연스럽게 생각이 든 거예요. 목회자가 된다거나 사명자가 되고 싶어서 기독교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생각처럼 공부가 재미있지 않은 거다.

“제 성향이 신약, 구약, 조직 신학, 교육학 이런 걸 파는 성향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안에서 상담학을 만났어요. 제가 신난 거죠. 사람 얘기를 하지, 희로애락이 있지,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주는 액션이 있지, 저랑 딱 맞는 거예요. 운명처럼 하는 공부는 재미없는데 상담학은 재미있기 시작했어요. 제가 원래 옛날부터 잡지를 보면 앞에 있는 패션과 뷰티 기사는 잘 안 보고 뒤에 있는 인터뷰 기사를 좋아했거든요. 누가 어쩌고 저쨌다더라, 연예인이 누구랑 살았고 이혼했다더라... 하는 스토리 말이에요.”

그녀는 기독교학과에서 목회 상담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심리학 베이스가 필요해서 스탠퍼드대학교 사회학과 연구학자로 가서 연구도 하고 박사 논문도 ‘잘못된 하나님의 표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심리 상담으로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로 박사학위를 받는 등 목회 상담과 심리학을 병행해서 공부했다.

 

손가락 세 개

그녀는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심리학을 잘 선택했고 잘 공부한 것 같다. 무엇보다 아빠를 이해하게 됐으니까.

“저는 제 몸 중에 손가락 세 개가 없는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죠?) 멀쩡하게 태어났지만, 나 스스로 많이 치유해서 이제는 손가락 세 개 정도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팔 하나가 없는 것 같았단다. 기자가 해석하기로 한쪽 팔은 엄마, 한쪽 팔은 아빠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한쪽 팔이 없었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상담학을 공부하고 이유와 원인을 알고 아빠를 이해하면서 한쪽 팔이 아니라 손가락이 세 개만 없는 것 같다는 표현을 쓴 것 같다. 얼마나 아팠으면 그렇게 표현했을까? 얼마나 상처가 컸으면 팔 한쪽이 없는 것 같은 심리적 장애인으로 살았을까? 육체적 장애만 장애가 아니다. 심리적 장애도 장애다. 많은 사람이 큰 상처든 작은 상처든 안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그녀처럼 고쳐서 사는 사람도 있고 영원히 못 고쳐서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아빠를 어떻게 이해하게 된 걸까?

“아빠가 나를 미워하거나 사랑하지 않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럴 능력과 자기 문제가 너무 심해서 저를 사랑하지 못한 거예요. 아빠는 늘 여기저기 아프셨어요. 그래서 누구를 사랑한다는 게 버거우셨던 것 같아요. 아빠는 저를 사랑하지 않은 것도 미워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던 거예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어요.”

 

아빠를 이해하다

만약 상담학을 하지 않았다면 아빠를 이해하지 못할 뻔했다. 끝까지 아빠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살았을 거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딱 일주일만 슬퍼하고 그 이후에는 보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고 하는데 영원히 아빠를 원망하며 아픈 마음을 짊어지고 살았을 것이다. 다행이다. 그게 풀려서. 모든 매듭은 풀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꼬인 채로 살아가며 꼬인 마음으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한다.

“병든 고래한테서 나온 오일이 가장 비싸대요. 병든 소한테서 우황청심환이 나온대요. 상처 난 조개에서 진주가 나오잖아요. 히말라야 어디 가면 가장 위에 수목 임계선, 그러니까 더 이상 나무가 살 수 없는 임계선에 나무들이 있대요. 그런데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세차게 불 거 아니에요? 높은 곳이니까. 그러면 나무들이 이기려고 움츠러든대요. 나무로서는 가치가 별로 없는 거죠. 그러나 그 나무에서 억대 바이올린이 나온대요. 저도 아빠 결핍 때문에 하나님을 만났고 방송도 하고 박사학위도 받고... 지금은 오히려 감사해요. 아빠 덕분인 것 같아서요.”

아빠 결핍으로 인해 아빠를 미워하며 원망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치유돼서 진주가 된 박상희 소장. 그녀는 상처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도 잘 묵상해보시라.

“상처를 신앙 안에서 극복하면 진주인 것이고, 상처가 계속 남아있으면 상처를 넘어서 흉터가 되겠죠?”

 

비와 그림

그녀는 아빠가 좋아하던 그림도 좋아하게 됐다. 비도 좋아하게 됐다.

“제가 원래 똥손인데다 미술성적은 안 나오고 미술이 제일 싫었고 미술 전공하는 사람이 100번 이해가 안 됐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림을 보면서 그 안에서 평온함을 느끼는 거예요. 심지어는 그림 속에 들어가 제가 그 안에서 놀고 있는 거예요.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나고 그 안에 있는 나무와 바다와 산이 저와 함께하는 거예요. 그림을 입체적으로 보게 된 거죠. 아빠가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 보듯 보셨다고 했잖아요? 저도 아빠처럼 보는 거예요.

비도 어느 날부터인가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삼십 대 중반쯤에 박사논문 쓰고 애를 키우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감정이 다운돼있을 때였어요. 비가 오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되게 센티해지고 조용한 여자처럼 가만히 비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내가 빗속에 혼자 들어가서 모든 게 다 나를 보호해주는 느낌이랄까? 폭우가 쏟아져도 비가 나를 모든 것에서 막아주고, 그 안에 보호해주는 느낌?”

어느 화가가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숲을 많이 그려서 “왜 숲을 많이 그리느냐?”고 했더니,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숲이 나를 보호해주는 것 같아서 숲을 많이 그린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녀도 그랬나 보다.

 

시작과 결론이 아빠

아빠 결핍이 빗속으로 들어가게 했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게 해서 그 안에서 보호와 평온함을 느끼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빠가 좋아하던 그림을 좋아하게 됐고... 아빠가 느꼈던 그 느낌을 똑같이 느끼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녀는 말했다. 아빠 결핍에 고착돼서 평생 연애부터 결혼, 직장, 취미까지 아빠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심지어 그녀 이메일 주소도 ‘my God papa’(나의 하나님 아버지)다. 모든 게 아빠로 시작해서 아빠로 끝난다.

그녀는 아빠를 미워한 게 아니고 아빠를 무의식 가운데 사랑했던 것이다. 그리워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빠 같은 사람을 만나려고 했고, 아빠가 좋아하는 미술을 취미로 삼고 있고, 아빠 생각에 ‘my God papa’(나의 하나님 아버지) 이메일 주소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는 계간 ‘치유’ 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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