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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착각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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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4월 06일 (목) 19:49:14
최종편집 : 2023년 06월 18일 (일) 06:12:48 [조회수 :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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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과 논-크리스천의 구별 방법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전자의 믿음과 후자의 믿음은 같은 것이 아니다. 같은 맥락이라는 면에서는 같지만 전적으로 같은 것은 아니다.

전자의 믿음은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후자의 믿음은 그 초점이 구원에 맞춰져 있다. 전자의 믿음은 신뢰가 바탕이요 주축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믿어 자신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전자의 믿음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믿고 그분께 나의 전존재,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맡기고 그분만을 의지하여 사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세상의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 나 자신조차도 믿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믿고 사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는 것을 역설하고자 한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 하나님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믿으면 기독교인이고 인정치도 믿지도 않으면 비 기독교인이다. 이것을 믿으면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 신화니 허구니 하는 것 같은 허튼소리가 나올 수 없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 신구약 66권의 맨 처음에 나오는 말씀으로 기독교 신앙도 이로부터 시작된다. 사실(事實)이고 사실(史實)이며 진리 중의 진리이다. 가슴 벅차도록 놀라운 진리로 인류의 진정한 소망이 이로부터 시작된다.

이 놀라운 천지창조의 사실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하신 분이시다. 전능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무엇 하나 모르는 것이 없으신 분이시다. 전지하신 분이시다. (전지는 전능의 한 부분이다. 그러니 ‘따라서’라 했다.)

그런데 이처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전지하심도 전능하심도 사랑이시고 그분 자체, 그러니까 그분의 본질도 속성도 무엇도 다 사랑이시다. 그리고 그 사랑의 주된 대상은 인간, 사람이다. 나(我)이다.

우리는, 나는 이처럼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그 전지전능하심과 사랑이신 그 모든 것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무한히 신뢰함으로 믿어 나의 전존재, 나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그분 하나님께서 가라는 길로 가며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의 보호자, 나의 아버지이신 그분 하나님께서 어떠한 상황 어떠한 역경 가운데에서도 나를 지켜 보호하시며 가장 안전하고 평안한 데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정말로 믿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천지 지은 하나님께서 나의 산성, 나의 요새가 되시고, 나의 방패, 피난처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는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을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세상과 교회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크리스천이라 할지라도 많은 이들은 무슨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를 하는 거냐는 식으로 심드렁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초 신자시절 만해도 그렇지 않았다. 지극히 당연한 말로 받아들이는 것이 보통이었다. 자신이 그만한 믿음에 이르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다. 교회들은 활기로 넘쳤다. 성장일로의 길을 걸었다.

얼마 전에 종영된 어느 TV 정치드라마의 주인공 국회의원 보좌관이 의원에게 물었다. “의원님은 왜 정치가 하고 싶으셨습니까?” 의원의 대답은 이랬다.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갔으면 해서… 말하고 보니 참 초등학생 이야기 같네.”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하기 위해 정치를 한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런 말을 되뇐다. 그러나 거짓말이다. 다는 아닐지라도 많은 부분은 자기를 위해 정치를 하는 것이다. 자기의 욕망과 영달을 위해 하면서 그것의 몇 분의1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과대포장을 하여 자신의 이미지 관리를 하려 안간힘을 쓴다. 그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리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물정을 모르는 철부지 초등학생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된 현상이다. 망국을 부르는 현상이다. 욕망이나 영달을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아니 꼭 필요한 것이다. 크리스천이라 해도 다를 건 없다.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어린 시절에서부터 젊은 시절에 걸쳐 그토록 공부에 매달려 죽을 고생을 하겠는가. 나누며 돕고 사는 것도 부자나 사회적 위치가 높으면 더 많이, 더 크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욕망이나 영달이 자기만을 위한 것이 된다면 사회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재앙이 된다.

우리 한국 교회가, 아니 지구촌의 모든 교회가 왜 이렇게 쇠퇴의 길로 접어들어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가. 지극히 당연하고 중대한,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요 핵심을 시대착오적 케케묵은 폐물 취급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일은 뭣인가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해도 결과만 좋으면 되는 일이 있지만, 우리 기독교는 그런 걸 인정하지 않는다. 서울에 못 가는 한이 있어도 모로 가면 안 된다. 서울이 십자가라면 그 서울을 푯대로 하여 한눈팔지 않고 가기만 하면 된다. 도달하면 좋지만 그러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한눈팔지 않고 열심을 다하여 가기만 하면 그만으로도 하나님께서 도달한 것으로 인정해 주시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면 완벽하게 도달하는 사람은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어 지켜 보호하시며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겠다는데, 그런 그분께 나를 맡기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크리스천이라 믿고 있는데도 크리스천이 아닌 것이다.

하기야 그처럼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그대로 100% 다 믿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니 어쩌면 한 사람도 없을지 모른다. 거듭 말하거니와 그분만을, 예수 그리스도만을,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그것을 푯대로 하여 달려가는 것만으로 족하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믿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믿는다 생각을 하는데, 착각일 뿐 사실은 믿지 못하는 것이다. 좁쌀만 한 믿음을 호박만큼 큰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우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가 그렇다. 뭐 그래도 그것이 그리 크게 문제될 건 없다. 진리의 길, 생명, 새 생명의 길을 시대착오적인 구시대적 유물이라고 하는 허튼 생각을 버리고 열심히 가기만 하면 된다. 거듭 말하여 식상하겠지만, 한눈파는 일 없이 십자가를 푯대로 하여 가기만 하면 된다. 이를 달리 말하면 이렇다.

 

 

자기의 아성을 쌓는 것이 논-크리스천이라면 허무는 건 크리스천

 

진리의 길, 생명, 새 생명의 길은 십자가를 푯대로 하여 가는 길을 의미하는데, 이는 자기 변화―. 내면, 속사람의 변화를 가져온다. 나를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다. 주인이 나였던 나를 주인이 하나님인 나로 바뀌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나를 죽이는 것,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이라 하는 사람도 있는데, 표현이야 어떠면 어떤가.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성의 인간적인 나,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나를 나의 내면에서 몰아내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나의 주인. 주(인)님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우리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하는 것이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고,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가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근간, 핵심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면에 자기를 성주(城主)로 하는 아성(牙城)을 쌓는다. 자기가 자기의 주인으로서의 위치를 견고히 해 가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당연하지 않다. 세상 사람들이라면 당연하지만 크리스천들에게는 당연하지 않다. 크리스천들은 예수님을, 성삼위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 주인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종이 되어 기뻐하며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

종은 주인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 뜻을 거역하면 멍석말이요 심하면 죽음이 따른다. 그러나 그럴 염려는 없다. 뜻에 순종하면 종이 아니라 아들딸로서 지켜 보호하여 가장 좋은 것으로 먹여 주시고 입혀 주시는데 굳이 거역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니 아성 같은 건 필요치 않다. 필요 없는 게 아니라 있는 것도 허무는 것이 크리스천이다. 아성을 쌓는 것이 논-크리스천이라면 허무는 건 크리스천이다. 환언하면 아담으로부터의 죄성의 인간적인 나, 육체적이고 세상적인 나를 죽이는 것이 아성을 허무는 것인데, 이를 다시 달리 말하면 못된 자아를 죽여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러는 것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이다.

 

 

자존심은 자만심의 어머니

 

사람들은 자기의 아성에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면 자존심이 상하여 못 견뎌한다. 그러니 아성이 허물어진 사람은 물론 자존심 상할 일도 없다. 자존심이라면 흔히들 긍정적인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남에게 굽힘이 없이 자기의 몸이나 품위를 스스로 높이 가지는 마음’이 자존심의 사전적 의미이니 나쁘다 할 순 없다. 그런데 아니다. 자기가 자기의 길을 가는데,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데 굽히고 말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거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냥 자기 길로 가며 자기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에 대해 ‘스스로 높이 가지는 마음’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런다고 해서 자기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글자를 놓고 보면 스스로 자(自) 자에 높을 존(尊) 자, 마음 심(心) 자를 써서 자존심(自尊心)이라 하는데, ‘스스로 잘난 체 하거나 자기를 높이는 것’ 또는 ‘자신의 인격을 존중하며 긍지를 가지고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는 것’이 ‘자존(自尊)’이고, 그런 마음이 ‘자존심(自尊心)이다.

스스로 자(自) 자가 앞에 오는 말로는 자존심(自尊心) 외에도 자존감(自尊感), 자신감(自信感), 자긍심(自矜心), 자부심(自負心) 등 많은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다 거기에서 거기 갈만하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강화되면 자만심이 된다. 하나님께서 크게 싫어하시는 교만이 되고 거만도 된다. 따라서 자존심 하나만 버려도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사랑의 길을 가기에 훨씬 수월해진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인 문제라서 죄송하지만, 나는 요즘 그 자존심을 버리는 데에 온힘을 다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죽으면 죽는다는 각오로 하는데도 어렵기만하다.)

누가 됐건 높아지는 것은 자기를 스스로 높은 존재로 여기는 마음이 있어 그리되는 것이 아니라 남이 그렇게 여겨 인정하게 됨으로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남을 깎아내리거나 제 자랑이 아니면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높임을 받는 예가 있는가.

결론적으로 다시 한 번 말한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안에서 자기를 버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그 자리에 성삼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 자기 안에 자기는 필요치 않다. 하나님으로 채우면 된다. 자존심도 필요 없고 인격도 필요 없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5)”라 했는데,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나의 안에 품는 것이 곧 나의 안을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인격이 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인격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고 기쁘게 하는 피조물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 인간, 나를 지으셨다. 지으신 목적이 여기에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끄는 강령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신앙생활의 근간이요 핵심이다. 그러니 이를 아니라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시대착오적 케케묵은 생각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철부지 초등학생 취급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왜인가. 성경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 탓이다. 자기를 크리스천이라고 믿고는 있지만, 크리스천이 아닌 것이다. 또 다시 말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재, 운행, 관리하시고 계시는 분으로 그 자체가 사랑이시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신뢰함으로 믿어 섬기는 사람들이다.

자기를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을 사실로 믿게 해 주시라고 기도드려야 한다. 성경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해 주시라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처럼 지금도 그런 역동적으로 그 천지를 주재, 운행, 관리하시며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게 해 주시라고 기도드려야 한다. 그것이 기도의 본령이다. 기도로 터를 다져 신앙이라는 집을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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