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안중근을 소환하는 까닭

(<하얼빈>, 김훈, 문학동네, 2022년)

교회 도서관에서 <하얼빈>을 발견하고 행여 누가 먼저 대출할까 봐 바로 빌려왔다. <하얼빈>은 소설가 김훈이 ‘더 이상 미루어 둘 수가 없다는 절박함‘으로 써내려간 안중근의 ’빛나는 청춘‘ 이야기다. 일찍이 <남한산성>에서 역사적 업적에 가려졌던 인간 이순신의 요동하는 내면을 묘사했던 김훈의 글쓰기는 <하얼빈>에서도 여전하다. 영웅 안중근의 그늘을 걷어내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혼란스러웠을 시간 곧, ‘역사적 운명’을 마주한 인간 안중근의 내면을 소설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그의 몸은 대의와 가난을 합쳐서 적의 정면으로 향했던 것인데, 그의 대의는 후세의 필생이 힘주어 말하지 않더라도 그가 몸과 총과 입으로 이미 다 말했고, 지금도 말하고 있다” (306쪽)

안중근을 다룬 다른 책들이 그의 일대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는 데 주력한 것과 달리,김훈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과 그 전후의 짧은 나날에 초점을 맞추어 안중근과 이토가 각자 하얼빈으로 향하는 행로를 따라간다. <하얼빈>에서 차례에 앞서 안중근이 이동한 도시들의 이름이 새겨진 지도가 소개된 이유다. 이로써 소설은 안중근의 삶에서 가장 강렬했을 마지막 7일간의 일들을 극적 긴장감을 지닌 채 선명하게 묘사한다.

구한말 쇠약해져 가는 조국을 바라보기만 할 수 없었던 청년들의 순수한 결기가 들끓고, 세상의 흐름에 맨몸으로 부딪친 민중들이 공허하게 스러지던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안중근이 좇는 대의와 그가 느끼는 인간적인 두려움은 더욱 효과적으로 대비를 이룬다. 동양의 평화를 위해 자신과 타인의 희생을 불사하면서도, 집안의 장남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며 천주교에서 세례 받은 신앙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수시로 머뭇거리는 그의 모습은 <하얼빈>이 보여주는 또 다른 소설적 덕목이다.

“총구를 고정 시키는 일은 언제나 불가능했다. 총을 쥔 자가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총구는 늘 흔들렸다. 가늠쇠 너머에 표적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지만, 표적으로 시력을 집중할수록 표적은 희미해졌다. 표적에 닿지 못하는 한줄기 시선이 가늠쇠 너머에서 안개에 가려져 있었다. 보이는 조준선과 보이지 않는 표적 사이에서 총구는 늘 흔들렸고,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는 방아쇠를 거머쥐고 머뭇거렸다” (159쪽)

김훈은 ‘작가의 말’에서 안중근의 삶을 소설로 써보려는 것은 ‘내 고단한 청춘의 소망’이었다고 고백한다. 안중근 역시 고단한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기 때문이리라.

“한국 청년 안중근은 그 시대 전체의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사적 규모의 폭력과 야만성에 홀로 맞서 있었다. 그의 대의는 ‘동양 평화’였고, 그가 확보한 물리력은 권총 한 자루였다. 실탄 일곱 발이 쟁여진 탄창 한 개. 그리고 ‘강제로 빌린(혹은 빼앗은)’ 여비 백 루블이 전부였다. 그때 그는 서른한 살의 청춘이었다” (305쪽)

최근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와 일제 강제징용 배상 해법안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그동안 피땀으로 지켜온 민족의 자존심과 정당한 권리가 하루아침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오늘 다시 안중근을 소환하는 까닭이다.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