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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비폭력 저항과 십자가의 승리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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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3월 31일 (금) 14:41:29
최종편집 : 2023년 06월 18일 (일) 06:11:36 [조회수 :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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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독립운동가 마하트마 간디가 예수님에게서 비폭력 저항을 배웠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흑인의 인권을 위해 싸운 마틴 루터 킹 목사 역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 비폭력주의자였다. 

폭력적 악에 대한 일반적인 대응방법은 세 가지이다. (1) 수동적 태도, (2) 폭력적인 대응 (3) 비폭력적 저항. 폭력적 악에 직면하면 우리는 흔히 도피와 싸움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억압자와의 싸움이 먹혀들지 않으면, 다른 대안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기 일쑤다. 

폭력 앞에서 도피하는 것은 비열한 일이고 폭력에 맞서 싸우는 것은 악을 악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거룩한 목적을 위한 전쟁 역시 폭력을 행사하는 악일 뿐 아니라, 폭력은 다시 폭력을 불러온다. 제3의 길, 즉 비폭력 저항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폭력 저항에는 바르지 않은 체제에 맞서는 용기와 평화에 대한 염원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지배체제가 그의 생명을 위협할 때 도피하거나 폭력으로 저항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비폭력 저항의 모범을 보여주셨다. 복음을 위해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비폭력 저항의 본보기이며 승리의 십자가였다. 

월터 윙크가 예수님의 비폭력 저항에 관해서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과 『예수와 비폭력 저항』을 썼다. 여기서는 『사탄의 체제와 예수의 비폭력』의 7장에 나오는 <십자가의 승리>를 요약하여 소개하려고 한다.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복음을 반대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폭력 저항과 십자가의 승리를 생각해보는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다. 

*  *  * 

지배체제는 하나님의 새로운 질서의 냄새를 맡기만 해도, 자동적인 반사 작용으로 그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하여 그 질서를 억누르려고 한다. 악의 권세들은 너무도 강력하고, 반대는 너무도 약하여, 모든 근본적 변화를 위한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기성세력은 단지 이기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고, 이기되 압도적으로 이겨서 반대 세력이 추진력을 얻기 전에 사기를 꺾어버리려고 한다. 처형하는 수단에는 끔찍한 폭력, 무시하는 조롱, 협박하는 만행이 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은 그를 채찍으로 매질했다. 그들은 그에게 가시관을 씌워서 놀렸고, 침을 뱉었으며, “유대인의 왕 만세!”라고 외치며 빈정거렸다. 그들은 그를 벌거벗기고 수치스럽게 십자가에 처형했는데, 바로 이 행동이 그들의 삶 전체의 크나큰 잘못을 가려준 가면을 벗겨버리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리어 율법이, 무정부 때문이 아니라 질서를 받드는 사람들이 그를 죽였다. 거룩한 지혜를 보여주도록 태어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사람들은 짐승같이 야만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당대 최고라고 여겨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무죄였을 뿐 아니라, 참된 종교, 참된 율법, 참된 질서의 화신이었기에, 이 희생은 그들의 폭력이 악하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역설적으로, 폭력의 실패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보자. 베니뇨 아퀴노가 폭력을 거부하고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 대항하여 비폭력 투쟁을 하기로 결심하였을 때, 그는 망명을 끝내고 거의 확실한 죽음을 향하여 유유히 돌아왔다. 그는 비행기에서 채 내리기도 전에 군인들에 의해서 사살되었다. 

그의 죽음이 바꾼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마르코스는 그의 유일한 적수를 제거하고 오히려 전보다 더 강해졌다. 그러나 실상 아퀴노의 죽음은 모든 것을 바꾸어버렸다. 2년 반 후에 마르코스는 비폭력적으로 권좌에서 물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퀴노가 활주로에서 쓰려질 때 실상 마르코스도 쓰러졌다. 

예수님의 죽음도 그와 같은 것이다. 다만 그는 한 명의 지배자와 겨룬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당시의 종교적 지배체제 전체에 도전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그들을 지배하는 로마에 폭력적으로 대항하여 유대민족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대망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른 제자들 역시 예수님이 폭력으로 유대민족을 해방시킬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로마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를 붙잡아 죽이려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는 권력자들의 아성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담대하게 성전이 정화되어야 함을 외치고 권세자들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사랑의 계명을 선포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허점을 드러내는 예수님을 잡아 죽일 방도를 찾았다. 예수님은 그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도피하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붙잡히고 로마 총독 빌라도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비폭력 저항을 몸소 실천하셨다. 그 결과 예수님이 선포하신 진리가 만방에 선포되었고, 그 복음이 동방의 끝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예수님의 삶이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 그 십자가는 인류를 살리는 승리의 십자가였다. 

 * * *

이제 고난주간을 맞아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주님께 감사하자. 그리고 주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제자 되겠다고,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겠다고 다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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