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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
이진경  |  jinkyung.lee@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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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3월 27일 (월) 23:30:32
최종편집 : 2023년 03월 27일 (월) 23:33:08 [조회수 : 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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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

   
 

미국의 영화감독 테렌스 맬릭은 50년 경력에 비해 연출한 영화는 몇 편 되지 않는 과작(寡作)의 감독이지만 철학적이고 탐미주의적인 작품들로 인해 소위 ‘영상시인’으로 불리는 감독이다. 그런 그가 본격적인 신앙의 성찰을 영상의 주제로 담은 작품이 바로 《트리 오브 라이프》다. 신앙이 배경이 되는 영화로서는 그가 제작자로 참여했던 《어메이징 그레이스》(2006)라는 영화도 있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저 유명한 노래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영국의 노예제도 철폐에 관한 영화로, 이를 위해 일생의 노력을 바친 국회의원 윌리엄 월버포스의 감동적인 실화를 다룬 영화다. 그때는 단지 제작자 중 한 명으로만 참여했던 테렌스 맬릭이 《트리 오브 라이프》를 통해 본격적으로 신앙의 본질을 탐구하게 된 것이다. 그가 관심을 둔 주제는 무려 신정론, 즉 악의 현존 앞에서 신의 선함과 전능함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고통의 의미라는 신학적 난제에 이 철학자 출신의 감독은 정면으로 몸을 부딪친다.

영화는 다음과 같은 욥기의 한 구절로 시작한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새벽 별들이 기뻐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을 때에 말이다.”(욥 38:4,7) 욥기가 어떤 책이던가? 선한 이에게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 악의 존재에 대한 신앙적 해답을 찾기 위한 치열한 물음을 다룬 책이 아니던가? 둘째 아들의 이른 죽음을 둘러싼 한 가정의 상처를 중심에 놓으면서 영화는 내내 이 주제의 줄기를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주제는 그것뿐이 아니다. 첫 장면의 독백에서 여인은 인생에는 선택해야 할 두 가지 길, 즉 본성을 따라 사는 삶과 은총을 따라 사는 삶에 대해 말한다. 그 여인은 어머니가 되고 은총을 따라 사는 삶을 택한다. 지독히도 가부장적이며 세속적인 아버지는 본성을 따라 사는 삶을 택한 사람이다. 이질적인 부모 사이에서 갈등하는 큰 아들은 결국 인간의 내면 안에서 갈등하는 두 선택과 그로 인한 비극을 상징한다. 영화는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존재하는 악의 문제로 괴로워하는 욥, 동생 아벨을 시기하고 증오했던 가인, 내가 원하는 것은 행치 않고 정작 원하지 않는 것은 행한다며 탄식했던 바울... 인간의 안과 밖에 존재하는 악과 그로 인한 인간의 내적 갈등을 묘사하는 영화적 방식은 무척이나 새롭고 흥미롭다. 오직 마음 속 독백의 소리와 자연의 소리만이 두드러질 뿐, 그 밖의 모든 실제의 소리나 대화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소리로 처리된다. 결국 인간의 내면이 영화의 주인공인 셈이다. 영화는 소설보다는 시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이 시적인 영화는 당해 미국 영화 평론 사이트 중 하나에서 평론가가 뽑은 최고의 영화 1위로 선정되었으며 칸 영화제에서는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영화의 제목 ‘The Tree of Life’의 우리말 번역은 다름 아닌 ‘생명나무’다. 나무라는 모티프를 놓고 성경을 바라보자면 성경은 결국 세 나무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의 타락과 죄의 근원이 되었던 나무 선악과, 그 죄악을 씻는 구원의 나무 십자가, 마지막으로 세상의 끝에 나타날 세 번째 나무인 ‘트리 오브 라이프’, 즉 생명나무(계 22:2). 그런데 이 생명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이미 세상의 시작에도 선악과와 함께 있었던 나무였다. 이처럼 생명나무는 역사의 시작과 끝에 나타난 신비의 존재, 생명의 근원이다. 아련한 태초 낙원의 기억과 다가올 종말의 소망을 함께 지닌 나무, 태초와 종말이라는 두 시간 사이에서 인간은 그 나무를 그리워하고 소망하며 불완전한 존재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창조자와 피조물의 간극은 얼마나 큰가? 영화는 우주의 신비와 자연의 장대함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결국 이 간극에 대한 사색인 것이다.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하늘이 땅보다 높듯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사 5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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