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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요한계시록 19장1절~10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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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3월 10일 (금) 22:10:02 [조회수 :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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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요한계시록 19장1절~10절

 

 

1. 천국, 하나님의 통치

 

① (1절~2절)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하고”

▶ ‘이 일 후에’ 일곱 대접의 재앙이 마친 후이자, 바벨론에 대한 최후심판이 마친 후에 벌어질 구원의 광경이다. 하나님의 심판대를 통과한 후에 비로소 천국에 들어가게 되듯, 심판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구원이 완성되는 과정이다. 다시 말해 심판은 구원으로 나가는 과정이다. 이는 성경이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시종여일하게 전하는 심판과 구원의 양면성이다. 실제로 요한계시록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까지의 전 과정을 통해 재앙 이후에 나타날 구원의 광경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다.

▶ (메시지성경) ‘나는 하늘에서 큰 합창단이 부르는 노래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권능은 하나님의 것, 그분의 심판은 참되고 그분의 심판은 정의로우시다. 그분이 큰 음녀, 음행으로 땅을 타락시킨 그 여자를 심판하셨다. 그분의 종들이 흘린 피를 그분이 갚아주셨다’ 본문에서 주목할 단어는 ‘할렐루야’다. 할렐루야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이다. 영어로 주를 찬양하라(Praise the LORD)로 번역된다. 본문이 전하는 핵심은 최종적인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 고백을 담은 찬송이다. 앞서 살펴본 새 노래들처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성도들이 누리는 마침내 누리는 의의 최후승리를 선포한다.

 

② (3절~4절) “두 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 (메시지성경) ‘다시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할렐루야! 그 여자를 불태우며 나는 연기가 하늘 높이 굽이쳐 올라간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창 19:20)” 연기는 창세기에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로 심판 받은 바벨론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8~30)” 예수께서 심판의 날에 벌어질 일에 관해 예언하신 말씀과도 일치한다. 이 장면은 4장과 5장(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께 드리는 천상예배)에서 이미 기록된 광경이고, 7장과 14장(인 치심을 받은 십사만 사천이 부른 새 노래)에서도 이미 보았던 구원의 광경과 맥을 같이 한다. 삼대칠중재앙이 완결되는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대적하던 적그리스도의 멸망과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킨 성도들의 최후승리를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의 찬송으로 재차 확인한다. 요한계시록이 이를 계속해서 거듭 확언하는 이유는 뭘까? 의의 최후승리와 구원의 영광을 보고도 믿지 않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③ (5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 본문은 19장의 핵심구절인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심판과 구원을 행하시는 목적이 무엇인지 증거 한다. 큰 음녀 바벨론의 멸망은 심판의 본보기다. 순교한 성도들의 최후 승리는 구원의 본보기다. 4장부터 18장까지 기록된 모든 심판과 구원의 전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될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나님께서 징계와 저주를 내리시는 목적과, 하나님께서 기적과 축복을 베푸시는 목적은 하나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나타내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돌리시길 원하신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이처럼 뚜렷한 하나님의 목적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내 영광으로 가로채면 안 되고 하나님이 하신 일을 사람에게 영광 돌려서도 안 된다. 나의 삶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축복하신 유일한 목적이다. 바벨론을 심판하신 이유는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을 망각하고 상실한 까닭이다.

 

 

2. 어린양의 혼인 기약

 

① (6절)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 (메시지성경) ‘또 나는 거대한 폭포소리, 우렁찬 천둥소리 같은 합창단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주권자이신 우리 하나님께서 다스리신다!’ 요한계시록의 핵심주제는 천국이다. 우리말 천국은 헬라어로 ‘바실레이아(Βασίλεια)’인데 왕국 곧 하나님의 왕권과 주권을 뜻하는 단어다. 따라서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다. 예수그리스도가 전하신 복음의 핵심주제도 천국이다. 예수께서 전하신 천국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의미한다. 천국복음이 전하는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선 ‘무엇이 세상을 다스리는가, 우리의 삶을 다스리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순간 뚜렷해진다. 하나님 나라가 전하는 본래적인 메시지는 물질이 다스리는 세상, 사람이 다스리는 세상, 교만과 탐욕이 다스리는 세상이 끝장나고, 이제 만물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세상의 도래를 선포하는데 있다. 천국을 교회에 적용하면, 돈이 다스리는 교회, 사람이 왕 노릇하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이 다스리시는 거룩한 교회로 거듭남을 뜻한다. 천국을 개인의 삶에 적용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 들이고 주님이 다스리는 삶으로 거듭남을 의미한다.

 

② (7절~8절)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은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권세를 위임받으신 예수그리스도’의 심판과 구원을 나타내는 은유(메타포, metaphor)다. 마태복음 22장에 나오는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그 뜻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 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 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님을 보러들어 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2:1~13)”

▶ 어린 양에 혼인 잔치에 합당한 예복이 무엇인지 적시한다.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옳은 행실은 착하고 정직한 행위나 윤리와 도덕적 선행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옳은 행실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의로운 삶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이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죄와 대비된다. 죄는 욕심을 좇아서 내 뜻대로 사는 삶이고, 의는 말씀을 좇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이다. 누가 말씀대로 준행하는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은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믿음과 행함’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경외와 준행, 믿음과 순종도 하나로 연결된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합당한 예복은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산상수훈의 결론과 일치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3. 청함을 받은 자의 복

 

① (9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가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 마태복음 22장에서 혼인 잔치의 비유가 전하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청함을 받았는데 택함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본문은 이 질문을 푸는 열쇠다.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천국 잔치에 초대를 받았지만 오기 싫어하고 돌아보지도 않고 종들을 잡아 능욕하여 죽인 이유는, 청함을 받은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또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상관없이’ 천국 잔치에 초대 받았지만 쫓겨난 이유는, 천국 잔치에 초청된 것이 복인지 몰랐기 때문에 합당한 예복을 준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와 몽매도 무거운 죄다. 앞서 살펴본 마태복음 22장 혼인잔치의 비유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마 22:15)” 바리새인들은 혼인잔치의 비유를 듣고 왜 이런 반응을 했을까? 청함을 받았지만 택함을 받지 못한 주인공이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던 자신의 자화상이었기 때문이다. 주목할 점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누군가에게는 잔치 날이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제삿날이라는 사실이다. 청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구원의 날이지만 청함을 받았으나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인 까닭이다.

 

② (10절)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 (메시지성경) ‘이러지 마라, 나도 너처럼 예수를 증언하는 너의 형제자매들과 같은 종일뿐이다’ 오직 하나님만 경배해야지, 위대한 업적과 신비한 권능을 행한다고 해서 종을 주님으로 받들고 섬기면 안 된다.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던 바리새인처럼 예나지금이나 주인 행세를 일삼는 종들이 많다.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며 기적을 행하며 ‘나를 본받으라, 나를 따르라!’ 현혹시킨다. 문제는 이와 같은 혹세무민이 단지 이단사이비교주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추락하는 것은 다 날개가 있듯, 타락하는 종교지도자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놀라운 은사와 온갖 권능을 행하던 자들이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스스로 높아진 자칭 메시아를 경배해선 안 된다. 오직 ‘사도신경’에 고백하는 예수님만 경배해야한다.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고 성령의 빛을 좇아 말씀 따라 살아야 한다. 종은 어떠한 경우에도 주인노릇하지 말고, 직분이나 연조, 자기 의나 특권의식 버리고 삼가 경계해야 한다. 자기 의에 사로잡힌 오만은 천국에 들어가는 길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자 적그리스도가 되는 첩경인 까닭이다. 우리가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서 입어야할 세마포는, 겸손의 옷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골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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